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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은 시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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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9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139쪽 | 129*205*20mm
ISBN13 9788994645612
ISBN10 899464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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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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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컴퓨터가 없으면 이제 일상이 어렵다. 모바일이나 태블릿에 밀려 비중이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중요한 작 업은 아직도 데스크탑이다. 컴퓨터를 곁에 두고 산 지 벌써 30여 년이 돼 간다. 속도가 느린 286으로 한글 프로그램을 이용해 글을 썼으니 초컴퓨터를 제대로 활용 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세월은 오래다. 다른 기능을 쓰지 않아도 새로운 버전이 나오면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것이 컴퓨터다. 프로그램들이 향상이 되니 기존의 용량으로는 작업이 힘들어져서다. 워드프로세서만 쓰던 내 컴퓨터도 버거워 했다. 어쩔 수 없이 386 으로 올려야 했는데, 그때 그 일을 맡아 해준 사람이 바로 고故 이선용 시인이다. 1993년 2월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고창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교 옆에서 신혼살림을 하고 있었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회에 가담해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선용이가 작업하던 날에 고부봉 기 기념행사가 있어 뒷일을 아내에게 맡기고 나는 행사장으로 갔었다. 나중에 들으니 선용이 작업은 순조로웠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내가 학교에서 복사해온 한메타자 프로그램 디스켓을 넣고 구동하는 순간 컴퓨터가 멈춰버린 것이다. 그 디스켓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것이다. 대도시도 아닌 지방 소읍에 서 정말 막막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선용은 이선용이었다. 수소문한 끝에 컴퓨터 수리업체를 찾아 복구를 한 것이다. 후에 들으니 일을 끝내고 어둔 밤길을 톺아 자 신의 프라이드 승용차를 몰고 부산으로 갔었다고 한 다. 누구 결혼식이 있었던 모양인데 일행을 만나기 위 해 쉬지 않고 달린 철인다운 행군이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그때 선용이는 내가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친해지고 싶은데 내가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여겼던 모양이 다. 사실 그 전에 이대의 시인과 일행이 돼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 선용이의 존재는 별로 드러나지 않았었 다. 컴퓨터를 잘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가 마침 기회 가 돼 작업을 맡겼는데, 고생을 많이 했다는 아내의 말 을 듣고 미안하고 고마워서 전화를 했고, 그 일 이후 선용이와 가까워졌다.

2. 그 시절 나는 방학이면 서울에 올라와 이대의 시인 집에서 일주일 정도 기거하며 글을 썼다. 낮 동안 북한산에 올랐다가는 시를 쓰고, 저녁이면 이대의 시인이 근무하는 대학로로 달려가 연극을 보거나 저녁 식사를 같이 한 후 돌아와 밤새 문학 이야기를 했었다. 누워 서도 잠들 때까지 시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참 뜨거웠던 시절이었다. 문학청년으로 회귀하는 순간이었고, 그만큼 풍요로웠다. 선용이는 나와 이대의 시인의 관계를 부러워했다. 그 만큼 친해지려고 나에게나 이대의 시인에게 정성을 기울였다. 내가 부탁하는 일은 정말 뭐든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종종 선용이가 이야기했다. “형님하고 정말 친 해지고 싶었어요.”라고…… 이대의 시인은 문학 이외에 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선용이는 그야말로 만물 박사였다. 촌놈인 나는 선용이에 기대어 서울 공부를 했다. 세운상가도 그를 통해서 알았고, 황학동 중 고시장에서 카메라 플레쉬도 그의 도움으로 샀다. 선용이는 모르는 것이 없었기에 그만 곁에 있으면 서울이 든든했다. 한번은 나를 남대문 도깨비시장으로 데려갔다. 도깨비시장의 유래를 이야기하는데 너무 신기했다. 구경을 하다가 글 쓰는 사람들의 꿈인 몽블랑 만년필 을 거금을 주고 구입했는데, 그해 가을 단풍 구경 갔다 가 그만 잃어버렸다. 너무 낙심해 하는 선배가 안쓰러웠는지, 겨울방학 맞아 상경했더니 그가 만년필을 선물이라고 내놨다. 프랑스제 자주색 워터맨이었다. 그 만년필은 지금도 갖고 있다. 가끔 그걸 보면서 마음 따뜻했던 이선용을 생각하곤 했다. 정이 많고 남 돕기를 좋아했던 선용이는 정작 자신 이 어려우면 지인들과 연락을 안 한다. 그야말로 두문불출이다. 그만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이대의 시 인과는 또 다르게 선용이가 서울의 친구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힘들 때 보이지 않는 자리가 컸다. 그래서 집으로 찾아가 그를 만나곤 했는데, 같이 식사 하는 것도 그는 어려워했다. 누구한테 의지하는 것을 스스로 못 견뎌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의 주머니 에 용돈을 넣어줄 때 계면쩍어 하던 얼굴이 떠오른다. 이렇듯 선용이는 남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지만 자 신이 궁하면 남에게 손을 벌리지 못했다. 자기 주머니 가 두둑해야 사람을 만나고, 또 베풀어야 편한 듯했다. 그건 아마 그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랬을 것이다. 내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선용이의 삶은 드라마틱했던 것으로 안다. 무슨 게임장에서 일할 때 수입이 꽤 좋 았는데, 그 돈으로 후배들 학비를 보태주었다고 한다. 그 인연이 여수 병원으로 이어진 것이다. 또 어떤 여행사와 인연으로 외국여행도 폭넓게 했다고 들었다. 한 때는 이정훈 감독이라는 사람과 가산디지털단지에서 IT 관련 일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열정 페이이자, 노동력 착취였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정훈 감독을 미워하기도 했 다. 너무 혹사시킨다는 생각에서였다. 장래가 불투명 하니 그만 두라고 채근하기도 했었다. 나는 어느새 그의 형으로 삶에 조언을 넘어 간섭하는 사람이 돼 있었던 것이다. 그때 방향을 잘 잡아 나갔으면 아마 벤처 창업자로 우뚝 섰을 것이다. 그만한 능력도 있고, 또 에너지도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만년필 을 선물했을 때도 아마 그 시절이 아니었던가 싶다.
3. 그가 어느 날 여수로 내려갔다. 선용이가 여수로 내려오자 괜히 든든했다. 촌놈에게 서울은 좀 불편했지 만, 같은 호남이고 또 전라선을 타면 내가 사는 전주역 을 경유해야 하니 한 동네에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 시 선용이는 어렵게 서울살이를 접었던 것으로 기억한 다. 전셋집까지 털어서 정리하고 빈 몸으로 후배가 병원장으로 있는 여수 돌산의 현대가정의원으로 내려온 것이다. 여수에서 선용이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성실했고, 또 진지했다. 아는 것이 많은 만큼 호기심도 깊어서 돌 산 토박이들보다 지역을 더 많이 알았다. 타지 사람이 지만 별 저항감 없이 지역의 인심을 얻고 있었다. 그만 큼 베풀었고, 또 글을 쓰는 사람인 만큼 그의 능력을 인정해줬기 때문일 것이다. 2002년 여름, 이선용 시인이 우이시 동인들을 초대 했다. 여름시인학교를 여수 돌산에서 연 것이다. 시인 들이 내려오기 일주일 전부터 병원 승합차에 행사 현수막을 달고 다니며 홍보를 했다고 한다. 행사 당일 조용 하던 섬이 시끌벅적했다. 서울에서 대거 시인들이 내려 온 것 자체가 큰 사건이 된 것이다. ‘언덕의 바람’이라 는 바닷가 까페에 간이 무대를 만들고 시낭송도 하고, 음악 공연도 가졌다. 나도 이대의 시인 기타 반주에 맞춰 하모니카를 연주를 했었다. 시인들이 모이면 밤새 술을 마신다. ‘일출민박’은 선용이와 여수 친구들이 몰려와 안주를 만들고, 술을 따르느라 분주했다. 파도 소리에 맞춰 시를 낭송하고, 또 달빛을 벗 삼아 노래도 불렀다. 선용이의 헌신이 아니 면 갖기 어려운 자리였다. 그후로 시인들은 여수에 자 주 내려왔던 것으로 안다. 서울에서 받은 피로와 상처를 여수에 내려와 씻었다. 그때마다 선용이는 손님들 을 극진히 대우했다. 그가 있는 여수는 도시인들에게 힐링의 바다였다. 나도 그 대열에 끼었다. 민폐를 끼친 것이다. 당시 전 주아중중학교 교감으로 있었는데 우리 직원들에게 선용이를 자랑하고 싶었다. 아닌 선용이보다 내가 이런 후배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고 싶었던 것 이다. 그래서 부장교사 연찬회를 여수 돌산으로 잡았 다. 궁벽한 섬의 작은 병원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선용 이 역시 교감으로 있던 형님의 낯을 세워주고 싶었던지 내 제의에 기꺼이 초대를 했다. 그날 일행이 열다섯 명 정도였다. 얼마나 준비를 했는지 모두 감동에 또 감동했다. 선용이는 여섯 번이나 상차림 시물레이션을 했다고 한 다. 임석기라는 친구를 시켜 잠수를 해 돌멍개, 해삼 등 을 잡으라고 했고, 생선 중개업을 하는 김영재 친구를 통해 횟감을 구하고, 정균이한테 갓김치와 각굴도 가져오게 하고…… 그야말로 쩍 벌어지게 상을 차렸다. 같이 갔던 직원들이 지금도 이야기한다. 그런 상차림 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노라고…… 이튿날 선용이 의 치밀함은 바다낚시로까지 이어졌다. 배를 빌려서 일행이 낚시를 즐기도록 한 것이었다. 아마 큰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두 달 지나서 선용이와 여수의 친구들을 전주로 초대했었다. 잠자리부터 식사까지 우리 직원들 이 책임을 졌으나 여수에서 받은 호의에는 턱없이 부족 했다. 눈이 없는 여수 친구들에게 덕유산의 상고대를 보여주고 싶었다. 바다의 은혜를 산으로 갚으려 한 것 이다. 마침 눈이 내려 길이 위험하니 대형버스를 대절 하자고 했다. 여수의 다섯 손님을 모시겠다고 관광버스까지 불렀으니 낚싯배에 대응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 후에도 부모님 모시고 찾아가기도 했고, 우리 가 족들과 향일암 일출을 보겠다고 찾기도 했다. 그때마다 자기 가족처럼 선용이는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한 번은 수학능력시험을 망치고 실의에 젖어 있는 아들 녀석을 데리고 무작정 가기도 했었다.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선용이 삼촌’이라 부르며 잘 따랐기에 위로 가 됐으면 해서였다. 선용이 사고 소식을 전하자 아들 녀석은 정말 서럽게 울었다. 선용이는 그냥 가족의 일원처럼 가까워진 것이다.

4. 나는 학교에 출근하면 매일 아침 커피를 갈아서 선 생님들과 만난다. 그날도 이야기를 나누다가 걸려온 전화 몇 통 놓쳤다. 자리를 정리하고 나니 다시 전화가 울렸다. 고창에서 근무하는 후배 교장이었다. 대뜸 뭐 하냐고 묻더니 선용이 소식을 전했다. 무슨 이야기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그냥 소리로만 들렸다. 그가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여수 선용이가 사고로 갔다는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전화를 끊고 정신을 좀 차리려고 했다. 그런데 무엇을 해야 할지 잡히지 않았다. 믿기지도 않았다. 직접 확인을 하려고 여 수의 후배들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 실이었다. ‘아~ 우리 선용이가 가다니……’ 이제 정말이 란 말인가?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또 있을까? 김대중 대통령께서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 자신의 반쪽을 잃은 느낌이라고 하셨는데 선용이의 사고는 내 게도 그런 느낌이었다. 이제 힘들고 답답할 때 누구에 기대어 파도소리를 들을까? 때에 맞춰 굴을 보내고, 전복을 보내던 그 따뜻한 사람! 그는 단순히 글을 쓰는 시인만도 아니고, 또 병원에서 환자들을 보살피는 단순한 사무장만도 아니고, 또 귀촌해 여수에 사는 원래 서울 사람만도 그 는 아니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규정할 수 없는 존 재였다. 그가 떠나고 정말 많은 지인이 아파하고, 또 그리워하는 이유이다. 지난 해 5월, 서울에서 이대의, 이무근 시인이 내려오 고, 여수에서 이선용 시인이 올라와 전주에서 만났다 지인의 한옥에서 묵고 다음 날 새벽에 오봉산에 올라 가 촬영을 하기로 한 것이다. 산에 오르는 선용이의 배낭은 엄청 크고 무거웠다. 우리는 그 안에 카메라 장비 가 가득한 줄 알았다. 일출과 구름 속에서 드러난 마이산의 신비로운 풍경 을 촬영하고, 아침 식사로 라면을 끓이려 하는데 선용 이 배낭에서 뭔가가 쏟아져 나왔다. 고기와 양념 소스, 후라이팬 등등…… 산 정상에서 선용이는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그 다음 요리는 꼴뚜기 숙회, 그후 오징어를 썰어 라면을 끓였다. 산에서의 진수성찬, 나는 커피를 즉석에서 드립해 같이 마셨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조찬이었다. 선용이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이벤트이기도 했다. 산에서 내려와 장구목으로, 또 하루 찻집 에서 차를 마시며 여정을 마무리했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만나자고, 같이 가을 산을 오르자 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선용이가 가버린 것이다. 그의 시도, 그의 사진도 아직 목마른데 그는 떠났다. 서울 토박이인 그가 여수에서 17년을 살더니 절반은 전라도 사람이 돼서 “행님!” 하고 부르던 그 사투리의 호칭이 그립다. 그는 저승에서도 또 남에게 베풀 고 있을까? 이제 자신을 위해 좀 이기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야 가정도 꾸리는 것인 데 그는 베풀다가 혼자의 몸으로 승천했다. 모든 걸 털고 혼자 가는 그의 길은 가벼웠을까? 이제 살아남은 자들이 그를 그리워하며 예의를 갖춰야 할 차례이다. 그게 그에게 진 마음의 부채를 조금이라도 갚는 길이니까..... 가끔 이선용 시인이 남해 저 끝 여수 돌산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시를 쓰고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 다. 그의 바다는 이제 하늘로 바뀌었다. 이선용 시인이 남 긴 시편을 읽으며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그가 너 무 보고 싶다. 만인의 가슴속에서 시보다 더 뜨겁고, 살갑게 살아 있는 사람, 고故 이선용 시인의 명복을 빈다.
--- 「김판용(시인), 시보다 뜨겁고, 더 살가운 삶의 행장 - 고故 이선용 시인을 추억하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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