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평화체제 구축 의제를 역이용, 아주 파격적인(또는 후안무치한) 제안을 한다.
“내 생각은 이번에 모처럼 마련된 수뇌회담에서 조금 희망을 주고, 적대 관계를 완전히 종식시킬 데 대한 공동의 의지가 있다, 보인다 하는 것을 하나 보여주자 하니까 서해 군사경계선 문제, 이 문제를 하나 던져놓을 수 있지 않는 가 난 이렇게 생각합니다.”
대화록을 읽어보면, 김정일은 노무현을 평양으로 오게 하여,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무력화에 합의하도록 하는 것을 회담의 제1 목적으로 삼은 것을 알 수 있다. 노무현이 美北(미북)관계 개선 필요성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강조하니 ‘그렇다면 서해의 군사적 긴장 문제를 같이 해결하여 적대 관계 종식의 의지를 보여주자’고 걸고 나온 것이다.--- p.22
김정일의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 또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이것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는가”라는 제안은 날강도 식이고 후안무치하다. 김정일이 말한 바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이란, 1999년 북한정권이 일방적으로 NLL 남쪽에 그은 선이다.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의 우리 쪽 섬들이 그 선 안으로 들어가 북의 허가를 받아야 출입할 수 있게 만든, 실효성도 없는 환상의 경계선이다. 북이 멋대로 휴전선 남쪽 수원 부근에 ‘우리의 군사경계선’이란 것을 긋고, 그 선과 휴전선 사이, 즉 수도권을 남북이 평화지대로 공동관리하자고 나온 꼴이다. 더 쉽게 표현하면 강도가 부잣집 안방을 ‘내 것’이라고 선포한 다음 부자에게 선심을 베푸듯 이렇게 제안하는 것과 비슷하다.
“서로 싸우는 모습 보이지 맙시다. 안방에서 현관을 지나 정문까지는 나와 귀하의 공동관리 지역으로 설정, 평화롭게 관리합시다.”--- p.24-25
노무현은 국군 장병이 피로써 지켜낸, 수도권 방어의 생명선인 NLL을 괴물에 비유하여 비하한 다음 서해평화지대 안을 내어놓는다. 북한정권이 수시로 도발하는 서해안과 NLL 수역 위에다가 평화지대를 설정한다는 것은, 읔에다가 신도시를 만들자는 것만큼 거의 공상에 가까운데 이를 열심히 설명한다. 김정일은 그 제안에 넘어가는 척하면서 NLL 남쪽에 공동어로수역을 만들자는 자신의 제안을 집요하게 밀어붙인다.--- p.33
나중에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은 NLL을 기준으로 남북한 등면적의 공동어로수역 설정을 제안하는데, 북한측은 김정일-노무현 사이의 합의와 맞지 않는다고 거절한다. … 남북한 합의의 기준이 되는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엔 ‘등면적’이나 ‘등거리’라는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게 중요하다. NLL을 기준으로 한 남북 등면적 공동어로수역도 결국은 NLL 무력화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線(선)을 지키기도 어려운데 面(면)을 만들어 놓으면 반드시 분쟁이 늘어난다. 특히 공동어로수역에서 군대를 빼고 경찰을 넣어 관리하자는 주장은 북한군을 이롭게 하려는 반역적 주장이다. 북한군이 경찰로 위장하여 들어오는 걸 어떻게 막는가? NLL에서 해군을 물리고 경찰이 막도록 하겠다는 발상, 그것이 NLL 포기이다.--- p.45
김계관은 ‘全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용어를 갖고서, 북한의 비핵화뿐 아니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 및 남한의 비핵화까지 요구하고 있다. 북한정권은 한반도의 비핵화 속에 남한의 비핵화를 집어넣고는, 한국의 원자력 시설을 사찰하고 미군기지를 들여다보고 그래도 믿을 수 없다면서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려 할 것이다. 이런 전략에 대해서도 노무현은 “예, 잘 알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고 지지를 표명한다. 그 자리에 대한민국 대통령은 없었다. 김정일과 반역자, 또는 부하가 있었을 뿐이다.--- p.56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에서 맨 정신으로 읽기가 힘든 대목은 마지막 부분이다. … 민족반역자-테러지령범-전쟁범죄자에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 좀 자주 들락날락 할 수 있게 좀…”, “다음 여행권까지 다 놨으니까…”, “내가 받은 보고서인데 위원장께서 심심할 때 보시도록 드리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있다.--- p.64
김정일에게 노무현이 한 말은, NLL 포기, 북핵 비호, 한미동맹 비방, 차기정부에 쐐기박기, 그리고 굴욕적인 아부성 발언들이다. 하지 않은 말은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요구, 북핵 폐기 요구, 북한인권 개선 요구, 개혁개방 요구이다. 敵(적)에게 영토와 국익을 상납하고 받아낸 것은 없다.
--- p.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