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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미궁

the 미궁

[ 반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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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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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년 09월 04일
판형 반양장?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666g | 188*257*20mm
ISBN13 9791162490907
ISBN10 116249090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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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고목과 고목 주변을 유영하는 새떼를 검은 실루엣으로 포착하는 바람에, 고목과 새떼가 변별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된 사물처럼 느껴지면서, 마치 고목 가지들이 하나씩 하나씩 독립적으로 뜯겨져 나가 제각각 한 마리의 새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기실 모든 새는 하나의 나뭇가지에 앉지만 결국 그 나뭇가지를 떠난다는 점에서, 어쩌면 새란 약간 더 자유로운 나뭇잎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는 동시에, 하늘을 유영하던 새들이 나뭇가지로 돌아와 앉으면 모든 게 다만 한 그루의 고목으로 시미치 떼듯 돌변하지 않을까? 터무니없지만 터무니없지만은 않은 상상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을 수 있다. 고사목 주변을 어지럽게 배회하는 새떼들의 음습하고 귀기롭고 신비한 기운들이 사진을 보고 있는 내 미소를 통해 현실로 스며나올지 모른다.

가령 창문은 담쟁이에 휘감겨 폐가처럼 음습한 동시에 풍성해 보이는데, 그 앞에 서 있는 소년 같기도 하고 소녀 같기도 한, 어린이 같기도 하고 청소년 같기도 한, 멈춰 있는 것도 같고 걷고 있는 것도 같은 사람은, 그 눈빛만이 지나칠 만큼 날카롭게 어딘가를 응시하는 바람에 귀기스럽기까지 하다. 과연 나머지 신체 부분은 그림자에 묻혀 환영처럼 희미한데 반해, 담벼락에 비친 그의 그림자만큼은 석불 도안처럼 선명한 질감으로 음각되어, 벽 앞에 그가 서 있는 게 아니라 벽 앞에 석불이 놓여 있고, 그 석불 속에 그가 들어 있는 환영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의 내면의 불성이 그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불상의 형태로 가시화 되어 그를 감싸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이러한 혼란과 연상과 환상을 『the 미궁』 연작들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경험하다 보면 그동안 내가 놓치거나 눙친 각각의 경험들 속에는, 이러한 빛과 그림자, 대비와 착시, 간섭과 혼란, 연상과 환영으로 낯설거나 기이하거나 기괴하거나 음습하거나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신비한 순간들로 가득하지 않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영원이란 무수한 순간들의 총합이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각각의 순간들 그 자체가 이미 무한한 모습들로 가득한 것이지 않을까.
- 이만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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