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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뎐

삼성뎐

: 전직 중앙일보 기자의 내가 겪은 삼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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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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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년 07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474g | 155*210*20mm
ISBN13 9791195067107
ISBN10 119506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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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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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초대회장 홍진기와 삼성의 인연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아버지 홍진기 초대회장은 일제 강점기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경성제국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41년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다. 창씨개명을 한 홍회장의 일본 이름은 도쿠야마 신이치. 일제시대에 전주지방법원 판사를 지냈다. 8.15 광복 후 친일파가 다시 득세하자 사법부 서기관으로 임명돼 장차 독립국가의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 기초 작업을 맡았다.
1958년 이승만 정권하에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었다가 1960년 3.15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최인규의 후임으로 내무부 장관에 발탁됐고, 4.19 혁명 때 발포 명령의 책임자로 지목되어 기소됐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 이후 부정선거 원흉 처단이라는 군사정부의 방침에 따라 다시 구속되어 사형판결을 받았다.
홍진기는 복역 2년여 만인 1963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출소 뒤 홍진기는 이병철 회장과 절친한 신현확 전 부흥부장관의 천거로 라디오서울 사장을 거쳐 TBC방송 사장에 취임한다.(홍진기와 신현확은 감방에서 인연을 맺은 사이다.) 이병철과 홍진기는 애초부터 사업가와 관료로서 가는 길이 달랐으나, 1959년부터 의기투합하여 각별하게 지내왔던 터다. 홍진기는 1965년 중앙일보 창간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1967년에는 이건희를 맏사위로 맞아들여 이듬해 2월 중앙일보 대표이사 사장으로 나선다.--- p.58 「중앙일보 초대회장 홍진기의 삶」

중알보의 도움으로 지켜낸 삼성의 무노조 원칙

노조 설립을 주도해온 삼성의 일부 근로자들은 노동단체들과 연대해 노조 설립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삼성계열사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포착되면 중앙일보 취재팀장이 나서서 경찰의 지원까지 받아가며 사전 차단에 나섰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7개 계열사의 노사분규가 격화되고 있을 때, 인근 울주군 삼남면 가천리에 있는 삼성전관(현 삼성 SDI) 울산공장에서도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있었다. 근로자 42명이 발기인으로 나서서 삼성전관 노조 설립 결의에 나섰다. 삼성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다급해진 공장장은 현대중공업을 취재 중이던 나에게 달려와 긴급지원을 요청했다. ‘삼성맨’으로서 소방수 역할을 자임할 수밖에 없던 나는 즉시 울산경찰서장을 찾아가 ‘백골단’의 출동을 요청했다. 하나같이 하얀 헬멧을 쓴 사복경찰들은 삼성전관 노조 설립 발기인 42명을 모조리 울산경찰서로 연행해버렸다.
(……)
급박하게 돌아가는 대우조선의 노사분규 상황에 대한 취재와 기사 송고도 미처 다 하지 못한 채 나는 우선 삼성조선 대책에 매달려야 했다. 즉시 거제경찰서의 옥모 서장을 만났다. 옥 서장은, 서울에서 내려온 재야단체와 노동자연맹의 핵심 멤버들이 거제지역 해고근로자들을 동원해 삼성조선으로 침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데다 삼성조선의 일부 과격한 근로자들이 여기에 동조해 전체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노조 설립을 선동하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삼성조선에서도 대우조선과 공조해 노동쟁의 움직임을 보인다고도 전했다.
그들은 다른 대기업 노조들이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 등을 내세우는 것과 달리, 근로자들의 권익옹호를 위한 노조 설립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석규 사망 사건으로 마산에서 지원 나온 경찰병력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거제경찰서 병력을 투입하느라 삼성조선에 집어넣을 병력이 없다는 거였다.
대우조선은 이미 재야단체와 근로자들이 점령한 상황이었고 사망한 이석규의 장례절차에 대한 논의 때문에 노동쟁의는 소강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여기에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직접 협상에 나서면서 노사 대결도 점차 수그러들고 있었다.
옥 서장은 이런 틈을 이용해 대우조선에 배치했던 경찰병력 중 1개 중대를 빼내 삼성조선 정문 입구와 주변에 배치하는 등 특별히 신경을 써줬다. 옥 서장은 거제 출신 토박이었다. 대우조선이 있는 거제군 장승포읍 옥포리 남려산 기슭에는 그의 일가가 80여 가구나 모여 사는 집성촌이 있었다고 했다. 이 마을 옥씨들 중에는 삼성조선에 취업해 있는 사람만도 100여 명에 달했다. 이런 이유들로, 옥 서장은 개인적으로도 삼성조선에 ‘불순분자’들이 감히 근접도 못하도록 하겠다고 나한테 다짐해주는 거였다. 이처럼 옥 서장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삼성조선은 이병철 회장의 ‘무노조, 무쟁의’라는 지상명령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후 대우조선의 노사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됐고 이석규의 장례도 무사히 치르면서 거제 옥포만은 평온을 되찾아갔다.--- p.138 「중앙일보의 도움으로 지켜낸 삼성 무노조 원칙」

삼성가 정치 보험의 역사

홍진기 회장은 자유당 말기 정치범으로 수감된 신도환과 감방동기로 만나 의형제를 맺었다. 먼저 풀려난 홍회장이 중앙일보 사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1969년 4월, 신도환이 찾아왔다. 그는 자신을 탄압한 박정희 정권에 맞서기 위해 야권에 몸담고 정치에 다시 투신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
나는 대구지사에 걸려온 홍진기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이 군! 자네 신띠를 잘 알지?”
“네, 창범 선생 말씀입니까?”
그동안 눈칫밥만 먹고 살아온 나는 홍 회장이 ‘신띠’라고 별명을 부를 때 이미 눈치를 채고 그의 아호를 둘러댔다. 언론사 전화마저 도청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자네한테 누굴 보낼 테니까, 자네가 신띠를 한번 만나보게. 그리고 잘 좀 도와줘.”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것으로 전화통화는 끝났다. 나는 얼마 전 선거유세장에서 신도환 후보를 만나 “홍 회장이 혹시 나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귀띔을 받은 터여서 그 정도 통화로도 홍 회장의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개인적으로도 신도환 후보를 잘 알고 있었다. 유도 9단으로 대한유도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8·15 광복 이후 유도 명문인 모교(대구계성고)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그러다 6·25 전쟁 때 신성모 국방부 장관을 만난 인연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었고, 자유당 정권 말기인 1959년에는 대한반공청년단 단장을 맡았다가 4·19 혁명 당시 고대생 습격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홍 회장의 전화를 받은 그날 저녁, 아니나 다를까 본사에서 자금담당 이사가 대구로 내려왔다. 나는 그와 함께 신도환 후보를 찾아 선거유세장으로 갔다. 신 후보는 마침 봉덕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막 단상을 내려오는 참이었다. 그에게 다가가 “봉덕시장 입구 경일약국 지하다방에서 기다리겠다”고 하고 나는 유세장을 먼저 빠져나왔다.
경일약국 지하다방은 내가 미리 점찍어둔 장소였다. 주로 봉덕시장 상인들이 드나드는 곳이어서 그 시간엔 한산했다. 나는 신문기자였기 때문에 아무리 감시망이 심해도 그를 만나는 데 거리낄 이유가 없었다. 지하다방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한숨을 돌리는데 신 후보가 불쑥 나타났다.
“고생 많으시죠?”
“으음, 이 기자 덕분에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뛰고 있다네.”
나는 먼저 본사 자금담당 이사를 소개하고 그에게서 건네받은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손 끝에 닿는 감촉으로는 현찰이 아니라 수표뭉치 같았다. 물론 세탁한 수표였을 것이다. 그 길로 우린 바로 헤어졌다. 남의 눈치도 있고 신 후보 입장에서는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홍진기 회장은 이런 식으로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삼성의 보호막이자 이병철 회장의 후견인으로서의 구실을 해왔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장차 삼성의 경영 대권을 이어받을 사위 이건희를 보호하기 위해 미리 보험을 들어놓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홍 회장과 달리 이병철 회장은 정치권과 불가근불가원의 원칙을 고수했다고 하지만 실은 말장난에 불과했다. 그 엄혹한 시절 이 회장의 로비는 홍 회장 외에도 이종기 중앙일보 사장이 도맡았다. 특히 그는 TK의 학연으로 청와대와 정권실세에 상당한 로비자금을 뿌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제때 기름을 치지 않으면 삼성이라는 거대한 기업집단이 순리대로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p.104 「홍진기와 신도환-삼성가 정치 보험의 역사」

중앙일보는 삼성 관련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나

YS(김영삼)의 문민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인 1993년 3월 28일. 이날 낮 12시 45분 승객 620명을 태우고 서울역을 출발하여 부산으로 가던 제117호 무궁화호 열차가 오후 5시30분쯤 경부선 하행선 구포역을 700여 미터 앞둔 지점에서 갑자기 철도 노반路盤이 내려앉으면서 전체 9량 중 기관차와 발전차 및 6호, 5호 객차 등 4량이 탈선,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기사가 그 이튿날인 3월 29일자 중앙일보 1판 사회면에 머리기사로 나갔으나 웬걸 2판부터 사이드로 밀리고 속보도 연일 머리기사로 취급하는 경쟁타지에 비해 지면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정부 당국의 사후수습책에만 치중하기 시작했다. 위기에 처한 삼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검경합동수사반은 현장수사 결과 열차 전복사고의 근본 원인이 한국전력이 발주한 고압전선 지중화사업을 수주한 삼성종합건설에 있다고 판단했다. 원청元請시행업체인 삼성종합건설은 이 공사를 직접 시공하지 않고 이른바 시공관리계약 형태로 한진건설에 하도급을 주었으나 한진건설은 이를 다시 지하터널공사 전문업체인 세창지질과 동명기술공단에 하청을 주어 공사를 시행해왔다고 했다. (……)
우선 사고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들을 동원, 사고대책본부에서 입수한 사망자의 주소지와 부상자들이 입원가료 중인 병원까지 샅샅이 파악하여 삼성에 제공했다. 부산에 내려온 삼성 비서실과 각 계열사의 홍보팀들은 내가 제공한 사망자 및 부상자 리스트를 받아 유가족들과 보호자들을 일일이 찾아 나섰다. 그들은 빈소에서 조문하려다가 멱살잡이에다 뺨따귀에 불이 나도록 얻어맞아가며 용서를 구했다. (……)
그렇게 일이 원만하게 진행되는가 했더니 웬걸 이번에는 구속대상 제1호로 경찰에 신병이 확보된 삼성종합건설 남정우 사장을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중앙일보가 앞장서 불구속으로 처리하라”는 이건희 회장의 특명이 떨어진 게 아닌가. 삼성 비서실 경리 출신인 남 사장은 평사원 때부터 선대 이병철 회장이 금쪽같이 아낀 인재라고 했다.
삼성그룹에서 오너의 특명은 왕조시대 어명을 방불케 하는 지상명령이었다. 때문에 중앙일보에서 법조출입기자단의 캡으로 20여 년의 관록을 쌓아온 법통法統 정천수 국장이 좀체 움직이지 않던 관행을 깨고 부산지검의 로비스트로 급파되고 그동안 경찰 수사팀과 접촉해온 나는 경찰 로비를 전담하게 되었다.
--- p.251 「삼성 관련 사건은 덮어라 묻어라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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