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독일의 역사를 바탕으로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저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죄란 무엇일까?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 「한국어판 작가의 말」중에서
독일은 승자의 나라처럼 보였다. 독일 국방군이 유럽을 좌지우지하며, 모스크바 코앞까지 가 있었다. 영국은 베를린에 대한 공습을 중단했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은 특별했다. 미용사들까지 자기 생각을 말하는 곳이라지 않은가. --- p.39
“앉으세요.” “앉을 수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앉을 수 있음이 부끄러워 더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녀와 한없는 거리감을 느꼈다. 내 위에 드리워진 이 고독감을 어떻게 극복할까 막막해졌다. 깃발들, 높은 건물들, 다윗의 별을 착용한 사람들, 소음, 냄새, 그 모든 것이 낯설었다. 멀리서 볼 때 독일인들은 참으로 커 보였건만, 가까이에서 보니 그들은 나처럼 작았다. 겉보기에만 커다랗게 보였을 뿐이다. 무엇보다 깃발들만 커다랬다. --- p.54
외투 깃 위에서 그녀의 밝은색 머리카락 한 올을 발견했다. 나는 곧장 머리카락을 제거해 버리는 대신 이것으로 무얼 할지 반나절 동안 생각했다. 그런 다음 머리카락을 입속에 넣고는 코냑으로 머리카락을 목 뒤로 넘겼다. --- p.147
스텔라는 가족을 지키려 했다.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나는 돈과 스위스 여권이 있는 청년이었고, 이런 전쟁 중에도 전쟁과 상관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여행을 왔다. 얼마나 어리석었던지. --- p.178
그 순간 다른 사람이 정원사의 목을 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른 사람이 그의 얼굴을 갈겨 턱을 부수고, 피클드 에그 유리병 조각을 집어 그의 동맥을 그을 수 있다면…. 트리스탄이라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 p.255
나는 웃을 것이고, 취해서 그녀에 대해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마치 내 전리품이었던 양. 사실은 그 반대였다는 걸 알지만 말이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에, 내가 얼마나 사랑받았는가보다 얼마나 사랑했는가로 행복을 측정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를 잊으려 노력할 것이다. 삶은 우리를 거짓말쟁이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