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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의 아내

비용의 아내

: 다자이 오사무 단편선

북노마드 일본 단편선이동
리뷰 총점4.0 리뷰 1건 | 판매지수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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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9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56g | 110*183*11mm
ISBN13 9791186561676
ISBN10 118656167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다급하게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떴는데, 남편이 늦은 밤 만취해서 귀가했다는 의미이므로 그냥 조용히 누워 있었습니다. 남편은 옆방에서 불을 켜고 헉헉, 하고 심하게 거친 숨을 뱉으며 책상과 책장 서랍을 열면서 뭔가를 찾는 듯했습니다. 이윽고 털썩, 하고 바닥에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후로는 그저 헉헉대는 거친 숨소리만 들리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저는 누운 채로 “왔어요? 저녁은 먹었어요? 찬장에 주먹밥 있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어, 고마워” 하고 전에 없던 상냥한 말투로 대답하더니 “아이는? 열은 좀 어때?” 하고 묻는 겁니다. 이 또한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 「비용의 아내」중에서

그런데 그날 밤은 무슨 영문인지 갑자기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며 열은 어떻느냐는 둥 안 하던 소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쁘기보다도 뭔가 무서운 예감이 들어서 등골이 오싹해져 차마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잠시 남편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오는 상황이었는데, “계세요?” 하고 어떤 여자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려왔습니다. 누군가 전신에 찬물을 들이부은 듯 소름이 끼쳤습니다. “계세요? 오타니 씨!” 이번에는 소리가 조금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동시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오타니 씨, 안에 계시죠?” 누가 봐도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비용의 아내」중에서

그때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선생님, 제법 간이 크시군요. 네놈들이 올 곳이 아니라고요? 내 참, 말이 안 나오네. 다른 일도 아니고 남의 돈을 그렇게 해놓고? 여봐요, 농담도 정도가 있는 법이요. 지금까지도 우리 부부가 당신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까? 그런데도 오늘 밤처럼 한심한 짓을 저지르다니요, 선생님, 제가 사람을 한참 잘못 봤나봅니다.”
“지금 협박하는 거요?” 남편은 한껏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 음성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공갈하는 거야? 당장 나가! 불만 있으면 내일 얘기하시오!”
“큰일 날 소리를 하시네요, 선생님. 이제 완전히 악당이 다 되셨습니다. 그러면 진짜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겠군요.”
그 목소리의 울림에는 전신에 소름이 돋을 만큼 엄청난 분노가 담겨 있었습니다.
--- 「비용의 아내」중에서

남자가 먼저, 그리고 여자가 뒤따라서 남편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썩어들어가고 있는 바닥, 성한 곳이 없는 장지문, 무너져 내린 벽, 종이가 떨어져 나와 뼈대가 보이는 맹장지문, 한쪽 구석에 놓인 책상과 책 보관함, 그러나 텅 빈 보관함… 황량한 방 풍경을 보고 두 손님은 놀란 모습이었습니다. 찢어진 틈으로 솜이 삐져나온 방석을 두 사람에게 건네며, “바닥이 조금 지저분해서요, 방석이 낡았지만 여기 앉으세요.” 저는 두 사람에게 다시 인사를 드렸습니다.
“처음 뵙는 거죠? 남편이 그동안 엄청난 민폐를 끼친 모양인데, 조금 전에는 도대체 왜 그런 무서운 물건을 휘두른 건지…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
그만 말문이 막히고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 「비용의 아내」중에서

저는 생각지 못하게 여기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서둘러 입을 틀어막고 아주머님 눈치를 살폈는데, 아주머님도 살짝 웃으며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사장님도 별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아니, 이게 절대 웃을 일이 아니에요. 너무 기가 막혀서 웃음도 안 나옵니다. 사실 그 정도의 수완을 다른 제대로 된 방향으로 썼다면 장관도 될 수 있고 박사든 뭐든 됐을 겁니다. 저희 부부뿐만이 아니고, 그 사람한테 걸려서 빈털터리가 되어 이 차가운 하늘 아래 울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 「비용의 아내」중에서

“저희는 그저 약한 입장의 장사꾼이에요. 부부가 힘을 합쳐서 힘겹게 오늘 밤 이 집까지 찾아내고, 참기 힘든 감정을 잘 억누르면서 돈을 돌려달라고 조용히 말씀드린 것뿐인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칼이라니요? 칼로 찌른다고 하다니, 이게 무슨 일이냔 말입니까.”
또다시 이유를 알 수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와 저는 그만 소리를 내어 웃고 말았습니다. 아주머님도 얼굴을 붉히며 살짝 웃더군요. 좀처럼 웃음이 멈추지 않아 사장님께 죄송한 마음도 들었지만, 너무 우스워서 계속 웃다가 눈물이 나왔습니다. 남편이 쓴 시 중에 ‘폭소는 문명의 열매’라는 것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비용의 아내」중에서

10일, 20일 정도 가게에 다니면서 저는 쓰바키야에 술을 마시러 오는 손님이 한 명도 빠짐없이 죄다 범죄자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남편은 참 착한 사람이더군요. 가게 손님뿐만 아니라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죄다 뭔가 더러운 범죄를 숨기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잘 차려입고 쉰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이 쓰바키야 부엌문으로 술을 팔러 와서는 한 되에 삼백 엔이라고 하더군요. 요새 시세로 보면 싼 편이었기에 쓰바키야 아주머님이 바로 사들였는데 물을 잔뜩 탄 술이었
습니다. 그런 곱상하게 생긴 여자조차도 이렇게 잔꾀를 부려야 살아남는 세상이니, 켕기는 것 하나 없이 살아가기란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드놀이처럼 마이너스를 전부 모으면 플러스가 되는 일이 이 세상의 도덕으로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요? 신이 있다면 제 앞에 나타나보세요!
--- 「비용의 아내」중에서

사랑을 했다. 그런 감정은 난생처음이었다. 예전에는 내 왼쪽 옆얼굴만 자랑스레 내보였고, 남성적인 면을 내세우고 싶어 안달했으며, 상대방이 1분이라도 망설이면 바로 당황한 모습을 숨기지 못하다가 질풍처럼 도망쳤다. 하지만 그즈음의 나는 모든 부분에 있어서 야무지지 못했다. 거의 내 몸에 장착된 줄 알았던 현명하고 상처가 적은 처세술조차 유지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거침없이 무절제한 사랑을 했다. 사랑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쉰 목소리의 중얼거림이 내 사상의 전부였다. 스물다섯 살. 나는 지금 태어났다. 살아 있다. 끝까지, 살 것이다. 진심이다. 사랑하니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동반 자살이라는 케케묵은 개념을 서서히 몸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매정하게 거절당했고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상대는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 「다스 게마이네」중에서

올해 초봄에 그 단술집에서 이상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아침부터 맑은 날씨가 이어졌다. 나는 프랑스 서정시 수업을 듣고, 정오 즈음에 단술집으로 갔다. ‘매화는 피었느냐, 벚꽃은 아직이냐’ 하며 금방 배운 프랑스 서정시와는 전혀 다르고 상관없는 시구에 멋대로 가락을 붙여서 반복하여 흥얼거리며 말이다. 그때 먼저 온 손님이 한 명 있었다. 나는 놀랐다. 그 손님의 모습이 아주 기괴했기 때문이다. 상당히 마른 체형이고 키도 보통이었으며 입고 있는 양복도 검은 모직의 평범한 옷이었는데, 그 위로 걸친 외투가 일단 괴상했다.
--- 「다스 게마이네」중에서

하지만 그 이후로도 우리는 그 단술집에서 매우 자주 부딪쳤다. 바바는 여간해서 죽지 않았다. 죽기는커녕 살이 조금 쪘다. 청흑색에 가까웠던 양쪽 뺨은 복숭아처럼 탱글탱글해졌다. 바바는 이게 다 술살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살이 찌면 슬슬 위험하다고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나는 점점 더 그와 친해졌다. 왜 나는 이런 남자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가까워진 걸까. 바바의 천재성을 믿었기 때문일까? 작년 늦가을, 요제프 시게티라는 부다페스트 출신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일본에 와서 히비야日比谷 공회당에서 세 번 정도 연주회를 열었다. 세 번 모두 지독히도 사람이 모여들지 않았다.
--- 「다스 게마이네」중에서

“쳇, 또 설교로군. 난 당신 소설을 읽은 적은 없지만, 서정성과 위트, 유머, 인용, 기본자세 같은 걸 제거하면 아무것도 안 남는 통속소설을 쓰실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난 당신에게서 정신을 못 느끼고 세속을 느끼오. 예술가의 기품을 못 느끼고 인간의 위장을 느끼오.”
“압니다. 하지만 나는 살아가야 합니다. 잘 봐달라고 부탁하며 고개를 숙이는 것이 예술가의 작품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지. 나는 요새 처세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소. 취미로 소설을 쓰지 않아. 어느 정도 신분이 있고 오락거리로 쓸 거라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겠지. 일단 시작하면 이게 잘 될지 안 될지 판단이 서. 하지만 시작하기 전에 이 소설이 지금 쓸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사방팔방으로 생각하다가 음, 음, 야단스럽게 시작할 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르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지.”
--- 「다스 게마이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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