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편지를 먼저 읽고, 두 통의 긴 편지와 한 장의 엽서를 보고 나니 제법 부피가 있는 원고처럼 보이는 봉투가 남았다. 원고를 읽어달라고 미리 부탁하는 편지를 받지는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갑자기 원고를 보내오는 일은 자주 있었다. 대부분은 장황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원고였다. 암튼 요시코는 제목만이라도 봐두자 싶어 봉투를 뜯고 안에 든 종이 뭉치를 꺼냈다. 예상대로 원고용지를 철한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제목도 서명도 없이 느닷없이 ‘사모님께’라는 말로 시작하는 원고였다. 음? 편지였나? 요시코는 별다른 생각 없이 두세 줄 읽다가 편지에서 뭔가 기이하고, 묘하게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았다. 타고난 호기심 탓에 요시코는 계속해서 다음 줄을 읽어내려갔다.
--- 「인간 의자」중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가 느닷없이 이렇게 무례한 편지를 드리는 죄를 부디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아마도 깜짝 놀라시겠지만, 저는 지금 사모님께 제가 저질러온 세상에서 가장 희한한 죄악을 고백하려고 합니다. 저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세상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그야말로 악마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물론 이 넓은 세상에 누구 하나 제 소행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아무 일도 없었다면 저는 그대로 영영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최근 제 마음속에서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업보로 가득한 제 인생을 참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만 말씀드리면 여러모로 수상하게 여기시겠지만, 부디 이 편지를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 「인간 의자」중에서
제 전문은 의자를 만드는 일입니다. 제가 만든 의자는 아무리 어려운 주문을 한 손님이라도 무조건 마음에 들어 하기 때문에, 많은 거래처에서 저를 잘 봐주고 좋은 일만 안겨주었습니다. ‘좋은 일’이라 하면 등받이나 팔걸이에 어려운 조각을 넣는 등 여러 가지 까다로운 주문이 있기도 하고, 쿠션의 종류나 각 부분의 치수 등에 세세한 취향을 반영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런 특별 주문 의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초보 직공은 상상하지도 못할 고민을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고심하면 할수록 의자가 완성되었을 때 얻는 유쾌함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이 커집니다. 감히 비유하자면, 그 느낌은 예술가가 훌륭한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기쁨에 견주어야 할 정도입니다.
--- 「인간 의자」중에서
드디어 완성된 의자를 보고 저는 이전까지 느껴본 적 없는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만들었지만, 넋을 놓고 볼 만큼 훌륭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의자였습니다. 저는 언제나처럼 네 개가 한 세트로 구성된 의자 중 하나를 해가 잘 드는 마루로 가지고 나가서 편안히 앉아봤습니다. 그 느낌이 얼마나 좋던지! 부드럽게 몸을 감싸주며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너무 부드럽지도 않은 쿠션의 탄력, 굳이 염색하지 않은 회색빛 원단을 이어붙인 가죽의 감촉, 적당한 경사를 유지하여 가만히 등을 받쳐주는 꽉 찬 등받이, 섬세한 곡선을 그리며 볼록 솟아 있는 양측의 팔걸이, 그 모든 것이 신기한 조화를 이루며 혼연일체가 되었습니다. 마치 ‘안락함’이라는 단어가 형태를 갖춰 눈앞에 나타난 것만 같았습니다.
--- 「인간 의자」중에서
저는 서둘러 네 개의 의자 중 가장 완벽하게 완성된 팔걸이의자 하나를 모조리 해체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의자를 저의 이상한 계획을 실행하기에 알맞은 모습으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커다란 팔걸이의자였는데, 앉는 부분이 바닥에 닿을 법한 지점까지 가죽이 둘려 있고, 등받이나 팔걸이가 상당히 두꺼웠습니다. 그 안에 사람이 한 명 숨어 있어도 바깥에서는 절대 모를 정도로 커다란 동굴이 있는 셈이었지요. 물론 의자 안에는 튼튼한 나무틀과 많은 스프링이 있었는데, 저는 그것들을 적절히 손봐서 사람이 앉는 부분에 무릎을 집어넣고 등받이 안에 상반신을 끼워서 사람이 정확히 의자 형상으로 앉으면 그 속에 숨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 「인간 의자」중에서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제가 행한 이 기묘한 행위의 첫 번째 목적은 사람들이 없는 틈에 의자에서 빠져나와 호텔 안을 돌아다니며 도둑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자 안에 사람이 숨어 있다니, 그런 멍청한 짓을 누가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저는 그림자처럼 자유자재로 이 방 저 방을 헤집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질 즈음이면 의자 속 비밀 공간으로 도망쳐서 숨죽이고 그들이 도둑을 찾는 멍청한 행동을 지켜보면 되는 것이죠.
--- 「인간 의자」중에서
저의 정열은 매일같이 격렬히 불타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아, 사모님, 결국 저는 제 분수도 모르고 엉뚱한 바람을 품게 되었습니다. 단 한 번만,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대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사모님, 물론 이미 눈치채셨겠지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실례를 용서하십시오. 실은 바로 당신입니다. 부군께서 Y시의 골동품점에서 제 의자를 사들이신 이후로 저는 당신에게 가닿지 못하는 사랑을 바쳐온 가엾은 남자가 되었습니다. 사모님, 제 평생소원입니다. 단 한 번만 저를 만나주실 수 없을까요? 그리고 한 마디만이라도 이 불쌍하고 못난 남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주실 수는
없을까요?
--- 「인간 의자」중에서
“그럼. 다 끝나면 늘 지나가는 그 가게에 가자. 갖고 싶은 걸 사주마.”
가쿠지로도 들뜬 마음으로 감행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지금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늙은이가 열여덟 살 아가씨에게 푹 빠져서 할 짓인가’ 생각하면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고 싶을 만큼 창피했다. 일단 저지르고 나니 뭐라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속이 울렁거리고 덧없으며 적적한,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또 한편으로는 그 창피한 쾌락을 심지어 본인의 돈도 아니고 훔쳐낸 더러운 돈으로 얻으려 한다는 한심함과 비참함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죄책감으로 이어졌고, 오후유의 사랑스러운 모습 너머로 보이는 아내의 신경질 난 얼굴, 열두 살 난 첫째부터 세 아이의 그림자,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서 무한한 소용돌이를 그려댔다. 더 이상 어떠한 판단을 내릴 기력도 없었다. 난 이제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는 듯 가쿠지로는 갑자기 크게 소리쳤다.
“기계실 선생님! 신나게 목마 한 번만 돌려주십시오! 이놈들을 한번 타보고 싶어졌소. 오후유, 너도 괜찮다면 타렴. 거기 아주머니, 아, 미안합니다. 오우메 씨도 타세요. 악단 여러분. 한 번만 나팔 없이 연주해주시겠소?”
--- 「목마는 돌아간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