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문턱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지만 행복의 면에서는 아직도 후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나라의 경우 오직 겉으로만, 총량적으로만 행복의 역설이 적용될 뿐이라는 것이다. 굳이 말한다면 오직 소수의 부유층에게만 적용되고 나머지 대부분의 국민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한국형 행복의 역설’이 관찰된다고 할 수 있겠다. 선진국의 경우 행복의 역설이 대부분의 국민 개인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에 소득수준이 높아져도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아지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설령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소득 재분배를 통해서 단순히 저소득계층의 소득수준을 높여주기만 하면 국민의 행복지수를 많이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므로 빈부격차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서울은 더 행복한 도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빈부격차의 완화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닌가.--- p.23
소득수준의 향상이 지속적인 행복이 아닌 일시적인 행복만 가능하게 하는 이유는 늘어난 소득으로 구매하는 대부분의 상품에 우리가 쉽게 물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동차, 가구, 가전제품 등의 대량생산 상품에는 빨리 적응하며 그만큼 쉽게 물린다. 이렇게 우리가 빨리 적응하고 쉽게 물리는 것들은 일시적으로만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뿐이다. 그래서 행복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두 가지 다른 유형의 행복을 얘기한다. 그 하나는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요, 다른 하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혹은 돈으로 사기 어려운) 행복이다. 맛있는 음식과 술, 예쁜 옷, 각종 대량생산 상품 등은 우리에게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을 가져다준다.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사람은 먼저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을 즐기기 시작한다. 기본 생계 수준을 넘어서 소득수준이 계속 높아지면 사람은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을 누린다. 선진국에서는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 넘쳐나면서 국민이 이제 이런 행복에 물린 상태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행복의 역설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p.40
대체로 남과 나를 비교할 때 가장 손쉽게 이용되는 잣대는 금전이다. 어떤 사람이 얼마나 정직하고 얼마나 의리가 강한지는 잘 알기 어려워도 그가 부자인지 아닌지 혹은 돈을 많이 쓰는지 적게 쓰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소득이나 지출은 다른 것에 비해서 상당히 가시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질만능주의자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금전적인 측면에서 사람과 사람을 비교한다. 그러다 보니 주로 남과 자신을 비교할 때에도 금전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따라서 상대적 박탈감이나 열등감을 느끼고, 불만이 쌓이고 불행해진다. 요컨대 물질만능주의자는 자신과 남을 자꾸 비교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p.46
적응이 빨리 이루어진다는 것, 쉽게 물린다는 것은 구매 당시에 생각한 만족감이나 행복감이 구매 후 급속도로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오직 구매 당시의 느낌에 따라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전형적인 쇼핑 행태이다. 이렇게 쉽게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것은 일시적으로만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뿐이다. 금방 싫증이 나서 행복감이 짧은 소비를 ‘적응성 소비’라고 한다. 사람들이 상품에 빨리 적응하기 때문에 구매 당시의 느낌에만 의존해서 구매 결정을 하면 실제로 얻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치른다. 그만큼 돈을 낭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응성 소비는 낭비로 끝난다. 그리고 개인의 낭비가 누적되면 에너지 위기, 전력 대란, 자원 고갈, 환경오염 등의 큰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고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p.54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다. 이제부터는 경쟁의 강화로 인한 득보다 실이 더 커지는 단계로 들어설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생산성 제고와 경제성장을 위해서 경쟁의 강화가 필요해도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국민이 행복해지지 못하고 우리 도시가 행복해지지 못한다면 그런 경쟁이 무슨 소용인가? 결국 중요한 것은 국민 개개인의 행복이다.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지 못하는 경쟁은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관련 업계의 사람들이나 경제학자들은 경쟁의 격화가 구조적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는 측면을 무시한 채 돈벌이에 기여하는 측면만 강조해대고, 그러다 보니 과잉경쟁과 무모한 경쟁이 만연해졌다. 이제부터는 경쟁의 강화를 통해 우리가 얻을 득과 실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p.82
사람들은 돈을 초월한 것과 돈에 팔린 것을 용케도 잘 구별한다. 그리고 돈을 초월한 것을 순수한 것으로 높이 사고 돈에 팔린 것은 저질이라고 폄하한다. 사랑, 우정, 존경, 화목한 가정, 사회적 지위 등과 같이 사람이 가장 얻고 싶어 하면서도 돈으로 사기 어려운 것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모두 공통적으로 좋은 인간관계, 따뜻한 인간관계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래서 행복의 첫째 원천으로 좋은 인간관계가 꼽힐 수밖에 없다. 결국 깊고 영속적인 행복의 원천은 사람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각종 자생적 공동체가 큰 의미를 갖는다. 혈연 공동체, 지연 공동체, 학연 공동체, 시민 공동체 등 각종 자생적 공동체는 행복의 원천으로서 좋은 인간관계를 조성하고 유지하고 확산시키는 온상이기 때문이다.--- p.88
아주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2002년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우리나라에서는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 만들기 운동이 일어났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청소를 자주 해줘야 하는데, 특히 남자 화장실의 소변 흘리기가 골칫거리였다. 소변 흘리기로 야기되는 악취와 불결을 막기 위해서 감시체계를 강화하고 인력을 더 많이 배치할 수 있겠지만 돈이 많이 든다. 그러나 아주 손쉽고 획기적인 방법이 있었다. 남자용 소변기 가운데에 파리를 그려넣는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 파리를 조준하고 소변을 보기 때문에 소변 흘리기가 크게 줄어든다. 실제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이 방법을 실시해본 결과 소변 흘리기가 80%나 줄어들었다. 굳이 공권력을 동원하지 않고 돈도 많이 쓰지 않으면서 그야말로 조용히 소변 흘리기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아주 사소한 사례이지만 새 시대의 정부는 이 사례에 담긴 정신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p.109
미국식 생활양식과 도시화는 미국인의 끝없는 물질적 욕망으로 추동된다. 흔히 이 욕망을 천민자본주의 욕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로 그 욕망이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를 초래했으며 세계경제위기의 요인이 되었음을 미국의 지성인도 인정한다. 이제 미국인의 그 욕망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인류의 미래를 위협한다. 바로 이 점을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깊이 인식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매우 어두울 것이다. 그런데도 서울 역시 미국식 생활양식과 도시화가 지배하는 곳이 되어가면서 정체성과 지속가능성을 잃었다. 새 시대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선 과거와 현재에 대한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 이 반성을 바탕으로 앞으로 서울이 한국의 정체성을 담은 지속가능한 행복도시로 다시 태어나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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