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대학교 공연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서 「해방 전 한국 사실주의 시나리오 작법 고찰」로 박사학위 받았다. 저서로는 『총체예술의 이해』『영화예술 입문』『한국영화감독론 I, II, III』 등이 있고, 공저로는 『영화란 무엇인가』『아세아영화의 이해』(영문판) 등이 있다. 역서로는 『제3호 쾌거인생』『따블맨』(희곡)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영화기호학」「스크린쿼터의 문화적 의미 고찰」「조선 무성영화 변사의 기능적 고찰과 미학 연구」 등 100여 편이 있다. 2005년 현재, 청주대학교 공연영상학부 교수, 한국영화학회 회장, 한국영화문화정책연구소 소장이다.
서울대학교 영화연구회 ‘얄라셩’(1979년)은 집단창작체제로 운영되는 본격적인 독립영화의 활동을 모색한 선발그룹으로 현재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홍준, 박광수, 송능한, 홍기선, 황규덕 등이 참여하였다. 얄라셩은 집단창작체제로 공동체적 의식을 추구하여 새로운 사회적 삶을 주장하는 현실참여의 영화제작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순수 작은영화의 성격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서울영화집단’(1982년)으로 다시 태어나 집단제작과 개인제작을 병행하면서 다양한 작품으로 현실에 참여하는 역할을 넓혀갔다. 그들은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영화에 관심을 갖고 영화운동을 통한 사회개혁을 시도하는 ‘민중영화’를 제창하였다. 이즈음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은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를 전국적으로 폭발시켰고 급변하는 사회 정세 속에서 대학영화는 사회운동으로서 그 역할이 확대되고 있었다. 소형영화의 대중화 그리고 전문화를 시도한 ‘장산곶매’의 「오! 꿈의 나라」(1987년)는 한국 작은영화의 장편영화 시도라는 큰 업적도 있었지만 당시 금기시하던 광주민중항쟁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진정한 작은영화의 역할을 대내외적으로 알렸다. 상계동 철거민들의 애환을 다룬 비디오 다큐 「상계동 올림픽」(1988년)과 작은영화의 질적 전환을 이룬 장산곶매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노동자의 투쟁을 그린 「파업전야」(1990년)는 1990년대의 노동영화운동으로서 민중영화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