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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서 삶을 짓다

음식에서 삶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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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0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408쪽 | 596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3525878
ISBN10 899352587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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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과의 헤어짐을 23년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쉼표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 그는 어떻게든 처자식을 자신의 존재이유로 삼으려 했고, 나는 더 이상 그의 존재이유로 남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편의 그런 오해를 만류할 수도 없었다. 그것이 오해일지언정 이제부터 혼자 살아야 할 그에게 버티는 힘이 돼준다면, 내가 더 이상 곁에 머물지 않기로 한 이상 마지막 희망의 싹까지 잘라버릴 순 없었다. 이혼 말을 꺼내면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 잠시 헤어져 있자는 말로 회유했다. “일 년만, 일 년만이라도 그동안 쓰지 못한 글 마음껏 써 봐.”
--- 「엇갈린 존재이유」 중에서

어느 날 한 부인이 찾아왔다. 딸의 혼사가 있어서 왔다는데 인사를 나누고 보니 어느 기업체,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1, 2위를 다투는 공영기업의 사장 부인이었다. (.......) 예식 끝나고 구내식당에서 하는 점심식사를 우리가 맡아달라고 했다. 점심식사를?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몇 명분이나……?” 부인은 차 한 모금을 삼키며 대수롭잖은 듯 말했다. “양가 합쳐서 천 명이요.” 맙소사, 천명 분을!
--- 「시집가는 날」 중에서

“일본어를 가르치신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하시게 됐습니까?” 어쩔 수 없이 내 이력을 간단하게나마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원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는데 어쩌다보니 대학원을 일문과로 가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일본어를 가르치게 되었고, 또 어쩌다보니 음식 일을 하게 되었노라고 했다. 그 말끝에 일본의 국민가수라는 미조라 히바리의 노래 중 ‘인생의 강물이 흐르는 대로 흐르다보니 나 여기까지 왔노라’라는 구절이 떠올라 “나가레니 마카세테(강물이 흐르는 대로)” 하자, 에구치 씨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루호도를 연발했다.
--- 「어느 일본인과 문학적 상상력」 중에서

다음날 은행에서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집문서’라는 것과 인감도장을 확실하게 챙겨왔다. 상담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 시절의 은행이란 금고에 잠들어있는 돈을 빌려주지 못해 안달할 때였으니 아파트라는 확실한 담보가 있는 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 「새 집에 미래를 들어앉히고」 중에서

참말이지 원도 한도 없을 만큼 온갖 모양의 송편을 빚고, 산자에 수를 놓고, 떡 케이크를 쪘다. 그리고 우리 팀은 대통령상을 따냈다. ……그뿐이었다. 나는 그 상을 받았다 해서 감격에 겨울만큼 기쁘지도 않았고, 상장이나 대회사진을 공개적으로 내걸 만큼 자랑스럽지도 않았다. 그저 팸플릿 한쪽에 조그맣게 상장 사진을 올렸을 뿐이다. 내 이력에 그 상이 추가되었다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서울은 지방과 달라서 누구도 그 상에 눈 하나 꿈쩍 하지 않았다.
--- 「이산도 역시」 중에서

그렇다. 나는 백화점 매장과 우리 브랜드의 직영점까지, 원하던 만큼의 판매처를 갖게 되었다. 직원도 든든한 떡기사를 비롯해 그 어느 때보다 우수한 인원들이 포진해있다. 그러는 나는 또 어떤가. 쉬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고수들의 솜씨를 익히고, ‘떡한과 지도자’ 자격증도 손에 넣었다. 착실히 실력을 연마하며 그에 걸맞은 실적도 쌓은 것이다. 그러니 탄환은 목표물을 열 번이라도 쓰러트릴 만큼 충분히 장전된 셈이다.
--- 「인간에겐 두 가지 비극이」 중에서

내 물음에 세무서 직원은 파산신고 절차와 그 후의 사태에 대해 알려주었다. 친절하고 세세하기가 보험안내를 하는 설계사 같았다. 그는 마치 보험에 들면 안락한 노후가 보장되듯, 파산신고를 하면 내 남은 생애가 더 이상 적자 구덩이에서 헤맬 일은 없을 거라는 투였다.
--- 「파산은 어떻게 생긴 물건인가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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