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예요?”
인희는 자기 목소리가 이렇게도 멍청하게 들릴 수 있는가 경악했다. 매가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늘어지는 음성. 아무리 아팠어도 이렇게 축 처지는 목소리를 낼 수는 없는 거다. 나름 아나운서를 꿈꾸는 그녀가 아닌가. 그 낭랑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는 어디 갔단 말인가?
하지만 그건 인희 혼자만의 생각인 듯, 그녀가 목소리를 내자 주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눈물을 뿌리며 인희를 붙들고 매달렸다.
“아이구, 이년아……. 살아났구나. 죽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을 했던지…….”
‘헉, 누구보고 이년 저년 하시는 거예요? 저 아세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둘러봐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알고 지내고 싶은 사람도 하나 없었다. 어쩜 이리도 다 지저분한 사람들뿐일까? 방 안에서는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분명히 저 사람들한테서 나는 냄새겠지. 인희는 자기를 붙잡는 사람들의 손을 어떻게 하면 무례하지 않게 뿌리칠 수 있을지 재빨리 머리를 굴렸지만 그들의 울음이 하도 처절해서 차마 냉정하게 손을 거둬낼 수가 없었다.
“저기…… 누구신지요? 저 아시는 분인가요?”
조심스러운 그녀의 음성은 아까보다 나았지만 그녀를 붙잡고 있는 사람들은 다시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제정신이 아니구나. 아무도 알아보지를 못하는 게야. 실성을 한 게야. 그리도 열이 심하더니 그나마도 맹하던 년이 완전히 정신을 놓은 게야…….”
인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황토로 지은 집인 듯했지만 고급스러운 황토방과는 판연히 다른 집이다. 이건, 민속촌인가? 드라마 세트장인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드라마에 출연을 하고 있는 건가?
눈을 아래로 내려 자기가 입은 옷을 쳐다보았다. 남루한 옷. 여기저기 검댕과 음식 찌꺼기에다가 진흙 같은 것까지 더덕더덕 묻어 있는 옷. 손톱 밑에 새카맣게 낀 때. 배역을 맡아도 이런 걸 맡았어.
가장 열렬하게 그녀에게 매달리고 있는 아줌마의 얼굴을 본다. 오, 교과서에서 본 개화기 사진 이후로 이렇게 촌스러운 얼굴은 처음 보는 걸. 뻐드렁니하며, 잡티 가득한 시커먼 얼굴하며, 게다가 저 광대뼈의 윤곽이란. 이런 배우 구하기 힘들었을 텐데? 요샌 시골 아줌마들도 다 성형발이잖아.
“아줌만 누구세요?”
눈치를 살피며 묻자 아줌마가 인희를 와락 껴안으며 눈물콧물을 쏟아냈다.
“이것아……. 내가 니 젖어미 아이가. 내도 못 알아보는 기가.”
갑자기 현실감이 확 들었다. 이 아줌마는 대종상을 바라보는 연기파 감초 조연이든가 아니면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희는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순간 휭 어지러웠지만, 비틀비틀, 너덜거리는 창호 문을 열고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바깥은.
딱 용인 민속촌 같은 느낌이었는데, 문제는 그게 끝도 없이 이어지고 저 멀리 보이는 산과 그녀와의 사이에 단 한 채의 고층건물 내지는 현대식건물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공해나 스모그라고는 한 알갱이도 섞여 있지 않은 맑고 신선한 공기가 아직 쭈글거리고 있는 그녀의 폐를 쫙 펴주었다. 섬뜩하게도.
‘세트장이야. 어디 시골구석에 지은 세트장.’
마른침을 삼켰다. 죽고 싶지 않다고 부르짖긴 했지만 이런 곳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꿈을 꾸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어쩌면 혼수상태인지도 모른다. 긴 꿈이 될 텐데 좀 좋은 꿈을 꾸지 않고.
두 손으로 뺨을 좌악 잡아당겨 보았다. 아얏.
손으로 얼굴 윤곽을 살살 만져 보았다. 손에 와 닿는 느낌만으로는 어떻게 생긴 얼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거울을 보고 싶다. 거울 속에 있는 얼굴이 누구인지 확인해야만 할 것 같다. 그녀는 몸을 돌리며 거울, 이라고 큰 소리로 외쳤으나 곧 거울이 있을 리 없다는 걸 깨닫고 다시 몸을 틀었다.
‘어딘가 물가로 가보자.’
집에도 우물이 있다는 생각 같은 건 인희의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그녀는 분명히 가까운 곳 어디 있을 개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급히 사립문을 나섰다. 한 발 두 발, 내딛는 걸음마다 가슴을 옥죄어오는 답답한 풍경에 인희는 몸서리를 쳤다.
‘이, 길에 개똥, 말똥 봐. 드라마 세트에는 이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머리를 힘껏 저으며 뛰기 시작했다. 길은 좁고 곁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낡은 한복 차림이었다. 짐을 든 사람도 많았는데 그 짐들은 TV에 나오는 것처럼 크기만 크고 속은 텅 빈 짐은 아닌 것 같았다. 키가 작고 후줄근하며 얼굴이 거무튀튀한 사람들이 이고 지고, 들고, 힘겹게 길을 지나고 있었다. 카메라 같은 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저쪽에서 무언가 행렬이 오고 있다. 이 지저분한 거리에 확 튀는 화려한 행차여서 인희는 그들을 붙잡고 묻고 싶었다. 이건 무슨 드라마냐고. 당신이 주연이냐고.
큰 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외치는 선두 앞으로 인희가 막 뛰어드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그녀의 목덜미를 확 낚아채 잡아당겼다. 그리고 인희는 그 정체불명의 사람과 함께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려야만 했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머리를 꾹 눌렀다.
“너 죽으려고 환장했냐? 저기가 어디라고 뛰어들어.”
중저음의 근사한 목소리에 인희가 숨을 훅 들이켰다.
살짝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그도 인희를 보고 있었다. 깜짝이야.
생각보다 훨씬, 아주 많이 훨씬,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도 잊고 멍하니 남자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남자, 라고 부르기는 사실 좀 그랬다. 열여덟이나 아홉쯤 됐을까? 낮은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게 소년과 남자 사이에 있는 얼굴이었다. 눈썹이 짙고 속눈썹은 더 짙고 눈빛은 그보다도 더욱 짙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얼굴에 콧대가 반듯하고 입술이 도톰한 아름다운 젊은이였다.
추릅. 인희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닦았다.
“저렇게 안롱鞍籠 든 나졸에 권마성勸馬聲 외치는 사람까지 딸린 가마는 대감님네나 타는 거야. 그 앞에서 우리 같은 천것이 무례를 범했다가는 경을 치는 거야.”
‘너도 천것이니? 아무리 봐도 귀티가 좔좔 흐르는 얼굴인데?’
그는 중인中人들이 쓰는 작은 갓을 쓰고 있었다. 천것인 건 아니겠지만 대감님네 눈으로 보면 다 마찬가지인지도.
여전히 어리바리한, 아니, 헤벌쭉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인희 곁에서 그가 일어섰다. 하도 키가 커서 하늘을 다 가린다.
“너 아프다더니 다 나은 거야? 길거리엔 왜 나왔어?”
아……. 난 개울가에 가려고 나왔지. 그녀는 젊은이의 팔에 매달리며 일어섰다.
“여기 개울이 어디 있어? 나 좀 가르쳐줘.”
순간 젊은이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인희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잡힌 팔을 한 번 본 그는 먼 산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그녀를 뿌리치지 않고 보폭을 맞춰 걷기 시작했다.
“아프면서, 흠, 아, 정신이 없어진 모양이구나? 맨날 빨래하는 냇가가 생각이 안 나?”
남자가 친절한 걸 보니 아마 내 얼굴이 이쁜 편인가 보다고 인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동서고금, 남자란 다 똑같은 거지. 그나마 다행이야. 박색보단 살기 편하겠네. 어찌됐든 이 젊은이는 나를, 아니지 걔를, 아는 모양이지.’
냇가에 도착한 그녀는 좌절했다.
물이 콸콸 흐르고 양옆으로 둔덕이 펼쳐진 산수화 같은 풍경이었음에도, 가슴이 콱 막혀왔다.
이건.
맑고 찬 물이 흐르는 냇가에서는 줄잡아 서른 명도 넘어 보이는 아낙네와 댕기머리 처녀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꾀죄죄하고 궁상스런 얼굴. 하나같이 갈라지고 터진 손. 깔깔거리며 떠드는 모습에서조차도 생활의 고단함이 더덕더덕 묻어나는 추레하고 갑갑한 장면이었다.
‘이건, 드라마가 아니야. 드라마일 수가 없어.’
그렇다. 사실은 아까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드라마이기엔 너무 우중충했고 그녀는 죽었었다.
‘환생한 거지. 죽기 싫다고 떼를 썼더니 과거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게, 아니, 죽은 사람의 몸에 대신 깃들게 해준 거지. 목숨을 관장하는 그 누군가가.’
황망하고 어이없고 앞일이 막막해 다리에 힘이 풀렸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어차피 과거로 올 거면 좀 좋은 신분으로라도 태어날 일이지, 이 꼴이 무언가. 이제 나도 저들과 함께 손발이 닳도록 빨래하고 물 긷고 양반님네들 시중들며 일생을 보내야 하는 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명백하게 현실이 된 이 상황을 그녀는 뜨거운 눈물로 인정했다. 더럽고 짧은 치마 아래 드러난 자신의 허연 종아리를 내려다보았다. 노비를 창두적각蒼頭赤脚이라 하지 않던가. 이 보수적인 조선 사회에서 다리를 드러내는 신분은 단 하나, 계집종인 것이다.
인희의 눈물에 당황한 젊은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녀 어깨 쪽으로 손을 들었다 내렸다 했다. 인희는 코를 훌쩍이며 걸어가 냇물 위로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얼굴은 봐둬야 하겠기에 그녀는 눈물을 닦아내고 그늘진 쪽을 골라 엎드렸다.
놀랍게도, 반갑고 다행스럽게도, 거기에는 너무나 익숙한 서인희 본래의 얼굴이 있었다. 화장기가 없고 좀 더럽고 눈물범벅이 되긴 했지만 물에 비친 여자는 작은 얼굴에 이목구비 또렷한 서구적 미인인 인희 바로 그녀였다. 물속에서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물 밖을 보고 있다. 촌스러운 귀엣머리로도 가릴 수 없는 우아함을 뽐내며.
‘이런 얼굴로 종이었단 말이야, 이 여자는? 아님 환생하면서 내 몸을 갖고 온 건가? 하지만 다들 날 바로 알아보던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난 이름이 뭐지?”
젊은이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빤히 보았다.
“이름도 생각이 안 나? 너 진짜 많이 아팠나 보구나. 넌 언년이잖아.”
쳇.
그녀는 조막만 한 얼굴을 찌푸렸다.
언년이가 뭐야, 언년이가. 노비는 이름도 참 천편일률적일세.
하긴, 쪼끄만년이나 끝년이보단 나은 거 같기도 하다. 그나마 추노의 언년이가 떠오르잖아? 내가 이다해보다 못할 것도 없지. 이다해보다 좀 더럽긴 하지만.
한숨을 푹 쉬며 그녀가 다시 물었다.
“니 이름은?”
젊은이가 반듯한 콧등에 주름을 잡으며 나무랐다.
“너가 뭐냐. 민이 오라버니라고 불러야지.”
그래, 니 이름은 민이. 난 너보다도 어린 십대.
젊어졌다고 기뻐해야 할 일인가. 하지만 평균 수명 24세였던 조선시대에서 난 현대로 치자면 원래 나이보다 더 늙은 셈 아닐까? 아, 유아사망률을 빼고 계산하면 45세쯤 된댔던가? 그래봤자지만.
민이를 따라 터덜터덜 돌아가며 인희는 슬쩍 자기 가슴을 만져 보았다. 어떻게 환생하면서 예전의 몸을 다 가지고 올 수 있는지 이상하지만, 아니, 뭐 환생이란 거 자체가 몹시 이상하지, 하여튼 그녀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바디 사이즈도 본래 인희의 것인 듯했다. C컵. 브라 없이 출렁거리는 가슴이 얇고 더러운 한복 아래에서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었다. 앞으로 이 몸을 하고 천것으로 살아갈 일이 암담하구나, 인희는 말똥을 피해 깡충깡충 걸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인희는 고개를 한 번 흔든 후 하늘을 향해 빳빳이 쳐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여자 혼자 몸으로 유럽은 물론 호주에 남미까지 배낭여행 다니면서 세계 각국에 친구를 만들어낸 서인희가 아닌가. 출중한 외모에 어학이면 어학, 상식이면 상식, 뭐 하나 부족함 없이 꽉 채운 일류대 졸업생, 아나운서 재수생, 아니, 지망생, 남자들의 로망이며 여자들의 친구, 그게 바로 나야. 이 세상 어디 갖다놔도 난 살아갈 수 있어!’
그녀는 전의를 불태웠다.
서울서 살 수 있으면 세계 어디서든 끄떡없다고 인희의 엄마가 처음 그녀를 너른 세상으로 내보내며 말했었다. 똑같이 사람 사는 덴데 여기라고 뭐 그리 다르겠는가. 수용과 적응이 빠른 것이야말로 나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이 미모와 지성으로 무언들 못한단 말인가.
슬쩍, 곁의 젊은이, 민이 오라버니를 쳐다보았다.
‘음, 그래도 가까이 이런 미남자가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고. 고단한 종살이, 눈이라도 즐거워야 하지 않겠어. 내 어린 너에게 침 흘리기에 좀 민망한 나이긴 하다만 여기서는 내가 너보다 어리다니 딱히 잘못은 아니겠지?’
슬몃 웃음까지 나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자신은 적응력이 지나치게 좋은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찌 되겠지. 한 번 죽은 거 두 번 죽는다 생각하고 살면 무서울 게 뭐 있겠어. 여차하면 또 죽어버리지, 뭐.’
그러나 그 전의는 화장실, 여기 말로 뒷간 문을 연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웩.
꾸엑.
냄새와…… 그,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은 유충과…… 휴지 대신 쓰는 나무막대기와 짱돌, 그리고 지푸라기. 지붕도 없는 허술한 문짝과 무너질까 무서운 발받침.
이것이 과거에 태어난다는 것의 실체였던 것이다.
여기까진 양반댁 아씨로 태어났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노비인 언년이가 깨닫고야 말았던 사실은, 뒷간을 청소하고 똥을 퍼내는 것이 바로 노비의 주요업무 중 하나라는 사실이었다. 안뒷간 바깥뒷간 구분하여, 거름으로 쓸 수 있게 조심조심, 소중하게.
인희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저절로 가운뎃손가락이 들어 올려졌다.
Oh, Shit!
어쩌다가 언년이로 환생해서!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