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대에는 의례상정소를 중심으로 조선왕실의 음악을 새롭게 제정하여 써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였다. 음악이란 예악정치의 핵심 가운데 하나이며 정사(政事)를 알 수 있도록 하는 지표와 같은데 당시의 음악은 삼국시대 말기의 음악을 이어받은 고려조의 음악을 그대로 쓰고 있으므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 p.25
왕실의 연향은 ‘백성들과 함께 더불어 즐긴다’라는 여민동락의 정신에 기반하여 베풀어진다. 연향은 오례 중의 가례와 빈례에 속하여 행해졌는데, 왕이나 왕비의 생신, 세자의 탄생, 왕의 즉위 기념, 책봉, 존호(尊號), 양로연(養老宴), 음복연(飮福宴), 정월 초하루나 동짓날, 단오와 추석 등을 위한 의례는 가례로 행해졌고 외국 사신의 영접과 그들을 위한 연향은 빈례로 행해졌다. --- p.42
제례에서 연행되는 일무는 그 기거동작의 의미가 고도의 상징체계를 가지고 설명된다. 물론 그 상징체계는 유가 예악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유가적 설명체계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제례의식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악대의 위치라든지 악기의 위치와 색깔, 일무를 추는 무원의 숫자와 위치, 춤추는 동작의 의미 등은 유가 예악론 안에서 하나의 소우주처럼 질서정연하게 설명된다. --- p.75
조선왕실의 춤과 음악은 각종 의례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예와 악의 외부적 구현태로 드러났다. 따라서 왕실의 의례에서 연행되는 춤과 음악도 일정한 기준에 맞는 것이 아니면 안 되었다. 건국 초반에 왕실의 의례를 행할 때 쓰일 음악이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해 예조를 중심으로 다양한 논의가 오고 갔던 것이 그러한 정황을 잘 알려 준다. --- p.91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여러 의례들이 왕실의 행사로서 연행되었지만 지금 이 시대의 시각으로 본다면 모두 중요한 공연 작품이기도 하다. 다양한 방식의 공연예술 작품이 궁궐의 각 공간에서 다양하게 연행되었다는 시각으로 볼 수 있다. … 이처럼 궁궐의 여러 공간은 ‘공연 공간’이라는 의미가 이미 부여되어 있었다. --- p.127
악기는 예와 악이 아울러 수행되는 의례의 온전한 형식과 내용을 갖추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도구이다. 따라서 궁중의 주요한 의식 절차 과정에서 악이 빠지면 예가 흠결된 것으로 생각하였다. 악을 제대로 연주하려면 해당 음악 연주에 필요한 악기의 틀을 모두 갖추어 놓아야 했다. --- p.151
조선왕실은 조선 전 시기를 통해 음악지식 집성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는 전문 악서 및 악보는 물론 각종 의궤, 법전 등에 집중적으로 혹은 산발적으로 정리되었고 그 성과가 시기별로 집적되기에 이르렀다. … 특히 「악고」의 완성은 그 이전 시기의 성과에 비해 대규모 음악지식 집성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p.197
즉, 귀를 스쳐 지나간 후에는 없어진다는 음악의 특수성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악학궤범』에는 당시 사용하고 있는 음악, 악기, 복식을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중요한 음악 내용을 모두 기록하였다. … 여기에는 당시의 악·가·무에 대한 정보가 총체적으로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악기, 음악제도, 복식, 악현 등에 이르기까지 섭렵하고 있어 궁중음악 기록의 모범이 된다. --- p.238~239
음이란 인심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정이 마음속에서 움직여 성으로 나타나고, 그 성이 질서를 이루어 음을 만든다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잘 다스려지는 나라, 어지러운 나라, 망해 가는 나라의 음악이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치세의 음은 편안하면서 즐거우니 그 정치가 화평하기 때문이다”라는「 악기」의 설명은 아마도 모든 통치자에게 결코 쉽게 넘길 수 있는 대목은 아닐 것이다. 그 시대에 연행되고 있는 음악이 자신의 통치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 p.250
세종은 지극한 사랑으로 만백성을 기르고자 했다. 그리고 그 사랑이 후대로 영원히 이어지기를 원했다. 그 마음을 회례악무 〈보태평〉·〈정대업〉에 고스란히 담은 것이다. 세종이 만든 이 음악은 1464년(세조 10)에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어 지금도 매해 5월이면 종묘에서 들을 수 있다. 백성과 더불어 즐기고자 하는 세종의 마음이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있다. --- p.270
예와 악에 대한 중요성은 강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악인에 대한 대우는 열악했고, 악이 육예(六藝)에 포함되어 그 위상이 높았음에도 악인의 신분은 낮았던 것은 조선왕실의 음악과 음악인들의 이율배반적 존재 현실을 알려 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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