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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 교수의 시창작을 위한 명상록

허형만 교수의 시창작을 위한 명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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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9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153*225*20mm
ISBN13 9788968179259
ISBN10 8968179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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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언령言靈’이란 말이 있습니다. 말에도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말이지요. 옛시조에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 말을 것이/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할 것이/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했습니다. 말로써 말이 많다 함은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니라는, 말 씀씀이에 대한 경계인 셈이지요. 저는 어렸을 적 어른들로부터 “말이 씨 된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러니 함부로 혀를 놀리지 말라는 경종이었던 거지요.

시인이 시를 쓸 때 언어에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단어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토씨 하나 있음과 없음의 차이가 그 시를 살리고 죽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바로 말이 씨가 되는 격이기에 시를 쓸 때에도 말을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 되는 법, 어떤 시상이 떠오르면 곧바로 내뱉는 게 아니라 자중하고 삭히며 다시금 가장 필요한 언어를 선택하는 발효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럼 시가 누룩입니까?” 이 물음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신 정지용 선생께서 문인들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불쑥 내던져 좌중을 웃긴 일화입니다. 물론 정지용 시인도 언어 선택과 사용에 최선을 다하신 분입니다.

또 하나. ‘시안詩眼’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소동파의 시에서 최초로 보입니다만 그 후로 시가 창작의 핵심 이론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한때 시전문 계간지 ??시안??이 발간되어 한국 시단의 최고 문예지의 영광을 누리기까지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시안’이란 글자 그대로 시의 안목을 이릅니다. 단순히 언어 하나하나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시 한 편 전체의 뜻과 시다움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이지요. 그래서 모름지기 ‘시안’을 갖고 있는 시인과 그렇지 않은 시인의 작품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고사를 기억할 겁니다. 예전 장승요란 사람이 금릉 안락사安樂寺 벽에 네 마리 용을 그렸는데 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 눈동자에 굳이 점을 찍으려 하지 않았지요. 그 이유를 물으니 점을 찍으면 용은 그 즉시 하늘로 날아올라 가버릴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비웃자 그는 네 마리 중 한 마리 용의 눈에 점을 찍었습니다. 그 순간 천둥 벽력이 치면서 벽이 쪼개지더니 용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점을 찍지 않은 나머지 세 마리만 그대로 남아 있었구요. 이처럼 ‘시안’이란 바로 시 한 편의 눈동자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1. 진솔한 글쓰기를 위하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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