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떠케 뺏겼는지도 모름서 멀 되찾았다고 좋아한다냐?”
안평오 선생의 그 말이 가슴을 때렸다. 그는 이내 우리에게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일제가 을사늑약을 통해 우리의 주권을 어떻게 빼앗았는지, 우리는 그때 왜 제국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제대로 힘을 써보지도 못하고 국권을 빼앗겼는지 등을 막힘없이 설명해줬다. 그가 나를 따로 불렀다.
“최정범, 니는 더 알고 싶냐?”
“예, 참말로 궁금혀 죽겠구만이라우.”
“그러믄 서당 공부 끝나고 우리 집으로 오니라.”
--- p.50, 「제2장 어지러운 해방정국」 중에서
교육은 일주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워낙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연찬(硏鑽)해 앎을 쌓아온 선각자의 가르침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히 내 가슴속에 똬리를 틀었다. 교관은 자본주의 사회체제의 기본 모순을 알려주면서,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본가계급이 임금노동자와 농민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폐단을 설파했다. 나는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내가 어렸을 적에 품었던 ‘지주와 소작인’의 불평등한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꾸 떠올랐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나라는 적어도 그런 모습이어서는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슴속에 새겼다.
--- p.58~9, 「제2장 어지러운 해방정국」 중에서
‘공산주의를 제대로 실천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이 서로 많이 갖겠다고 탐욕을 부리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가 자리를 잡으면 지금처럼 뼈 빠지게 일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적당히 일하고 평등하게 즐기면서 살 수 있을 것이며 지주도 소작인도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세상이 아니겠는가!’
--- p.59, 「제2장 어지러운 해방정국」 중에서
그런데 그들의 반응이 의외였다.
“가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여기 남겠습니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 의용경찰도 아니고 명색이 군인이 빨치산 쪽에 남겠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럼 우리하고 같이 빨치산 투쟁을 하겠다는 것이오?”
“지금 이대로 돌아가 봤자 총까지 빼앗겼으니 문책당할 게 뻔합니다. 그러니 우리를 받아주십시오.”
알고 보니 그들은 말이 군인이지, 경상도에서 징발당해 총 쏘는 요령만 속성으로 배워 군대에 편입된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빨치산 부대에 들어와 최후까지 따라다닌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최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 p.168~9, 「제5장 남조선 해방의 꿈은 멀어져 가고」 중에서
중간점검을 할 때마다 대원의 수가 줄었다. 기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도중에 낙오했다. 중화기를 들고 행군하던 대원 중 일부는 몰래 무기를 갖고 군경에 자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토벌군의 공세가 나날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사상무장이 덜 된 대원들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들의 이탈을 이해했다.
--- p.170, 「제5장 남조선 해방의 꿈은 멀어져 가고」 중에서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한쪽에서 소동이 일었다. 대원 한 사람이 급한 마음에 녹인 홍시 두 개를 허겁지겁 먹다가 그만 기도가 막혀 쓰러진 것이었다.
“엎드리게 해서 등을 두드려!”
“간호원 동무들, 어떻게 좀 해봐!”
그러나 홍시에 막혀버린 기도를 뚫을 방도가 달리 없었다. 결국 그 대원은 두어 시간 만에 맥이 끊겼다. 이북에서 내려온 인민군 출신 전사였다. 그의 고향이 어디인지, 가족은 어찌 되는지, 어떤 경로로 인민군 전사가 되었고 낙동강전투에서는 어떻게 싸웠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가 왜 후퇴하는 행렬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지 않고 빨치산 부대에 남아 지리산의 험곡(險谷)을 전전했는지,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 p.177~8, 「제5장 남조선 해방의 꿈은 멀어져 가고」 중에서
“갑시다.”
“어디로요?”
“어디든 일단 왔던 길로 다시 갑시다!”
우리는 다시 뱀사골 쪽으로 향했다. 또다시 고단한 행군이 시작되었다. 의미도 목표도 희망도 찾을 수 없이, 그저 떠밀려 가는 행군이었다.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죽지 않는 것이었다.
--- p.180, 「제5장 남조선 해방의 꿈은 멀어져 가고」 중에서
우리는 정신없이 달려서 재를 넘은 다음, 눈 쌓인 갈대밭에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그곳에는 이미 눈이 많이 쌓여 있었고, 우리가 엉덩이로 갈대를 눕히면서 내려왔기 때문에 가속도가 붙어서 기가 막히게 잘 미끄러졌다. 내 생애 그렇게 신나는 썰매를 타본 적은 없었다. 토벌대의 초소로부터 한참이나 아래쪽의 평지에 나란히 도착한 우리는 한동안 그대로 누워서 그 기묘한 썰매 타기의 여운을 느꼈다. 한참 만에 몸을 일으켰는데 이번에는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고서 쿡쿡거리며 웃었다.
--- p.183, 「제5장 남조선 해방의 꿈은 멀어져 가고」 중에서
나와 관련한 서류 일체가 검찰로 넘어가자마자 바로 결과가 날아왔다. 기소유예 결정 통보였다. 자유의 몸으로 방면된 것이다. 1953년 초가을로 기억한다. 그해 7월 말에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전선에서 총성이 사라지고 공식적으로 종전이 선언된 직후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그동안 내가 인정하기 싫어 투쟁했던 질서 속으로 온전하게 유입되었다.
--- p.230, 「제7장 좌절, 그러나 세상 속으로 당당히」 중에서
그동안 조선노동당 전북도당과 남원군당의 전사들을 위해서 보급투쟁을 해왔다면 이제부터는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예쁜 눈망울을 가진 아이의 생존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어색하고 생소했다.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소.”
“…….”
나는 그날 밤 아내를 향해 어렵사리 겨우 그 한마디를 뱉어냈다.
--- p.241, 「제7장 좌절, 그러나 세상 속으로 당당히」 중에서
한때 평등세상을 만들자고 목숨을 내걸고 투쟁했던 내가 정작 가장 평등하게 대해야 할 아내에게 남편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사실을 통렬하게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 p.243, 「제7장 좌절, 그러나 세상 속으로 당당히」 중에서
“자넨 왜 고단하게 야당에만 발을 담그고 있는 겐가? 우리 쪽으로 당적을 바꾸면 사회적 신분도 인정을 받고 경제적으로도 좋아질 텐데. 자네처럼 좌익 활동 전력이 있는 사람은 일평생, 아니 자네 자식들까지 불리한 일을 겪게 된다는 걸 자네도 잘 알잖나? 보수 쪽에 붙어야 안전한 법일세!”
나는 그 정치인을 향해서 간단하게 대답해줬다. 실제로 그게 사실이기도 했고.
“그냥 체질이 그래서요!”
--- p.255, 「제7장 좌절, 그러나 세상 속으로 당당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