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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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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가 나타났다

[ EPUB ]
이기린 | 가하 | 2013년 08월 0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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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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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년 08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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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5.13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7.1만자, 약 5.7만 단어, A4 약 107쪽?
ISBN13 9788966476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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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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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난 내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게 나빠요? 그냥…… 당신이 뭐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가슴 한쪽이 따끔따끔해서, 그게 좋아하는 건가 보다 그렇게 겨우 깨달았는데. 그게 나빠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순경 나운. 경우리 마을 주민들의 치안을 위해 밤낮 쉬지 않고 매진하는 그녀 앞에 나타난 BMW를 탄 한 마리의 야수, 아니 야수 같은 남자 안지헌! 불가항력의 충돌, 그리고 수리비. 그런데 경찰 오토바이 수리비로 받은 돈이 백만 원이네. 이제 나운은 비리경찰이 되는 것일까? 그럴 수는 없지! 마침내 나운은 지헌을 찾아가지만, 이 남자 무섭다!


“미안해요. 내가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라.”
“좋아요. 사과 접수.”
“그런데 난 지금 말보다는 다른 게 더 하고 싶은데요. 내가 옆으로 가서 앉으면 놀랄 건가요? 난 당신 옆에 앉고 싶은데.”
심장이 쿵, 하고 발끝으로 떨어졌다.
“가, 가까이는 왜요?”
“남자가 여자 옆으로 가까이 가는데 지금 당신과 내가 떠올리고 있는 것 말고 다른 이유가 또 있습니까?”
지헌의 말에 당황한 나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이 어디로 가려는지도 모른 채, 한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어…… 저기, 이러려고 술 마시자고 한 건 아니거든요. 우리 그 점은 분명히 해요.”
“알았어요.”
입술이 닿았다.

“왜, 왜 그래요? 지헌 씨가 아닌 것 같아.”
간신히 숨을 돌린 나운은 헐떡거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모든 빛을 흡수해버린 그의 눈은 깊은 어둠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그녀의 목을 물고 쓰게 웃을 것 같았다.
‘도대체 왜!’
이건 그녀가 아는 남자가 아니다.
“날 잘 안다고 생각하지 마.”
낮게 으르는 목소리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맞아요. 난, 난요. 그쪽 잘 몰라요. 그냥 난 내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게 나빠요? 그냥…… 당신이 뭐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또 그렇게 아무 때나 자꾸 생각나고 가슴 한쪽이 따끔따끔해서, 그게 좋아하는 건가 보다 그렇게 겨우 깨달았는데. 그게 나빠요? 왜 그렇게…….”
설움이 돋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엉엉 소리라도 내서 울고 싶었지만 차마 그 앞에서 추한 꼴 보이고 싶지 않아 나운은 억지로 울음을 참아냈다. 그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를 외면하며 고개를 돌리는 것뿐이었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지헌의 얼굴은 가면을 쓴 것처럼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그는 천천히 그녀의 손을 놓아주며 몸을 일으켜 운전석으로 기댔다. 거칠게 잡혔던 나운의 두 손목은 이미 화끈거리며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아프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지금은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나운은 다급히 차에서 내리기 위해 몸을 틀었다.
“그렇다고 울어요?”
등 뒤에서 들리는 그의 시무룩한 목소리에 갑자기 왈칵 화가 치솟았다. 나운은 지헌을 향해 다시 몸을 돌렸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그의 머리칼을 난폭하게 잡아당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자가 고백하는 게 뭐 그렇게 쉬운 줄 알아요? 남은 진심으로 얘기하는데 왜! 왜 자꾸 겁을 주고! 사람이 도대체 왜 그래요!”
“아야야!”
“흑, 흑. 진짜, 너무해.”
지헌은 커다란 손으로 나운의 머리를 부드럽게 감싸고 흑흑 울며 도리질하는 그녀를 쫓아와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울지 말아요.”
“갑자기 너무…… 다른 사람 같았어. 무서웠어요.”
“알아요. 그랬을 거야. 미안해요.”
그는 나운의 손목을 가볍게 쥐고 붉게 자국이 난 곳을 혀로 살짝 핥았다.
“왜 그런 거예요?
그녀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냥, 심술.”
심술이 났다. 착한 세계에 살고 있는 맑디맑은 사람에게, 그래 나는 이런 놈이다. 흙이 묻은 제 몸을 비비고 싶은 심술이었다. 그런데 나운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쿵 떨어졌다. 아차, 해서 금세 조바심이 났다.
‘나 당신하고…… 사랑해도 될까? 그냥 하고 싶다.’
촉촉한 혀로 살짝 그녀를 머금고 살며시 만지고 부드럽게 스쳤다. 진지한 그의 눈이 부딪쳤다.
“달아.”
“뭐라구요?”
느닷없는 말에 나운은 두 눈을 깜빡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뿌연 눈물 사이로 희미하게 그가 어색하게 웃음 짓는 것이 보였다.
“당신과의 키스는 달아. 맛있어. 당신과 사귀는 게 이런 키스를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당신 프러포즈에 대답은 얼마든지 예스 입니다.”
괜히 가슴 한끝이 간질간질했다. 그래서 하마터면 느닷없이 아하하, 하고 소리 내서 웃어버릴 뻔했다. 그래서 나운은 입술을 말아 깨물었다. 울다가 웃는 건 위험해.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요.”
그리고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얼굴로 두 눈을 깜빡였다.
“그래? 그럼 다시 해볼까요?”
이번엔 좀 더 농밀하고 관능적인 감촉이 오갔다. 이번에는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의 숱 많은 머리카락을 헤치고 머리를 끌어안으면서 나운은 숨이 막혀 헐떡거렸다. 차창을 통해 눈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밤 별들이 아찔하였다. 별들은 먹지 같은 새카만 하늘과 함께 빙글빙글 돌았고, 그의 입술과, 새하얀 송곳니의 뾰족한 감촉, 그리고 혀의 나른한 움직임에 모든 감각을 빼앗겼다. 지헌의 손이 나운의 허리를 감싸 안자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몸을 밀착했다.
“흐음.”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그와 단둘이 이렇게 몸을 꼭 붙이고 있다는 것은 두 사람의 이성을 차츰 앗아갔다. 창밖은 영하 십 몇도, 그쯤. 하얗게 쏟아져 나온 입김이 그대로 얼어 떨어질 만큼 춥고 건조했다. 하지만 지헌의 차 안에서 나운은 뜨겁게 그를 느끼고 있었다. 너무나 뜨거워 모든 것을 녹여버릴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내뱉는 숨결은 그대로 열기가 되어 창에 뿌옇게 서렸다. 그 사이로 경우리의 밤풍경이 검은 벨벳처럼 어둡게 내렸다.
“이번엔 어때요?”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는 낮았다. 뜨거운 기운이 뺨으로 몰려들었다.
“좋, 좋았어요.”
“착한 학생이네.”
지헌은 나운의 부풀어 오른 입술에 다시 한 번 가볍게 입을 맞추고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어두운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딱딱하게 턱에 힘을 주었다.
“멀리 도망치라고 나 기회 줬었어요. 그걸 잊지 말아요.”
“내가 도망치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건데요?”
“쫓아가서 잡아야지.”
“뭐야 그게.”
나운은 선선히 웃었다.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요?”
“조금. 아니, 어쩌면 조금 더 많을지도 모르구요. 근데 그것과 우리가 사귀는 게 상관이 있나요?”
지헌은 그녀를 보았다. 욕망으로 흐릿해진 머리는 전혀 맑아질 기미가 안 보였지만 안개에 휩싸인 가운데에도 또렷하게 나운의 얼굴이 보였다.
“당신은 너무 겁이 없어.”
“그냥 당신이 좋아.”
“당신은 호기심이 많지.”
“그냥 당신이 궁금해.”
그녀는 경우리의 새하얀 눈밭 같은 여자였다. 하지만 비린 유리처럼 맥없이 투명하지는 않았다. 살아 있는 살갗과 뜨거운 피를 가진 건강한 여자였다. 애초에 그녀가 조금만 더 세상에 익숙한 여자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적당히 닳고 닳아 자신과 비슷했다면, 그랬더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테지. 서로 줄 수 있는 것을 주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미안한 감정보다는 그녀를 만지고 싶다는 욕구가 컸다. 가지고 싶은 욕심이 그를 채웠다. 이젠 어쩔 수 없다. 돌이킬 수도 없다.
항복.
지헌은 두 손을 들어 반갑게 항복하였다. 그리고 그 손을 뻗어 조금 급하다 싶게 덥석 그녀를 안았다.
“잡았다!”
나운이 놀랐는지 깩 하고 이상한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하하.”
지헌은 웃으며 그녀를 품에 힘껏 안아버렸다. 단정하게 묶인 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끈을 풀러 어깨 위로 늘어뜨리고 새하얀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가져다 대었다. 인공적인 향수나 화장품냄새 대신 풋풋한 복숭아 향을 흠뻑 빨아들였다. 그러자 공허한 쾌락, 단순한 수컷의 욕망과는 조금 다른 것이 그의 가슴 속에 차올랐다.
“이제 절대로 못 놔. 당신은 끝이야.”
“숨 막혀요.”
“응.”
“응, 이 아니라 숨이 막힌다구요!”
“잠시만 이대로 있어요, 우리.”
답답하다고 몸을 바르작거리면서도 그녀는 쭈뼛거리며 조심스럽게 두 팔을 벌려 그를 마주 안았다. 2차선 도로의 좁은 갓길. 바로 옆으로 커다란 화물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자 그의 차가 휘청하며 흔들렸다. 잠시만 이대로 있자고 하더니, 어느새 그는 다시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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