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유명한 경영자들이 많다. 일본에서 ‘경영의 3신’이라고 하면 파나소닉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자동차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 교세라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를 꼽기도 한다. 그런데 일본 최고 나아가서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라는 도요타의 창업자나 대표적인 경영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도요타의 명성은 창업 초기의 한두 사람의 경영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대 도요타 경영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대기업들은 산업 발흥기에 이루어 낸 창업자의 업적을 토대로 계속 발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도요타의 경우 창업 초기에 사장이 몇 번이나 바뀔 때까지도 사업이 반석 위에 오르지 못했다. --- pp. 9~10
아직도 도요타의 기업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강령에서 읽을 수 있는 키워드는 첫째, 국가에 기여하는 기업, 둘째, 항상 도전하고 창조하는 기업, 셋째, 낭비가 없는 기업, 넷째, 화(和)를 중시하는 기업, 다섯째, 사회에 감사하는 기업으로 정리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도요타의 경영사를 보면 강령의 정신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최초로 자체 승용차 엔진을 개발하는 과정을 보면 국가에 대한 기여정신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창조정신이 그 원동력이었다. TPS 개발은 낭비를 최대한으로 없애기 위한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였다. 또 노사화합이나 종신고용을 고집하는 것도, 사회공헌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도 강령에 나타나 있는 이념이다. 이러한 강령은 어느 기업에도 있을 법한 내용이지만, 놀라운 것은 도요타가 이 강령의 정신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또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다. --- pp. 13~14
지금도 도요타 내에서는 ‘자공정완결(自工程完決)’이라는 말을 잘 사용한다. 개발?생산?판매 등 각 부문에서 문제점이 발생하면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해결해 나간다는 뜻이다. 오늘날 도요타가 세계 최고 자동차 회사가 된 원점은 스스로의 기술로 개발한 소형승용차 ‘크라운’이다. “일본차의 스탠더드가 될 자동차를 주위의 의견에 휘둘리지 말고 만들어 보자”라는 것이 당시 ‘크라운’ 개발에 열중했던 사람들의 의지였다. 포드와의 제휴를 생각한 기이치로와 자주 개발을 결심한 에이지. 이 두 사람의 차이는 창업자와 창업자의 의지를 계승한 사람의 입장의 차이일 수도 있다. 기이치로는 퇴진 후 2년간의 공백으로 인해 그 사이 도요타 내의 기술 사정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도요타가 독자적으로 구미 자동차 제조업체에 대항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고 포드와의 제휴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에이지는 그동안 포드사에서의 연수를 통해 ‘포드가 해내는 것을 도요타가 해내지 못할 것이 없다’라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포드 연수에서 돌아온 이후로는 필사적으로 공장의 근대화를 추진했다. 도요타 내에서 소형승용차를 개발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고, 만약 창업자가 복귀하면 독자적으로 개발해 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