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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0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56쪽 | 602g | 146*210*22mm
ISBN13 9791130817095
ISBN10 1130817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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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벨리가 추구하던 것은 알바니아 전체를 하나의 통치권으로 묶어서, 그 세력으로 이스탄불의 술탄과 한판 싸움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알바니아가 그리스와 이웃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등을 아울러 하나의 제국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 거대한 꿈이 염소 몇 마리를 양식으로 구하기 위해 산적 동네 놈들의 칼날에 잘려 나가고 만 것이었다. 그것은 남녀를 가릴 것이 아니라, 한코나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소명과 같은 것이었다. 알리가 보기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부간이라기보다는 동지 사이였다. “말이다, 제국을 건설하는 마당에, 이 어미가 산적이면 어떻고 해적이면 또 어떻겠느냐. 하늘이 이를 허용할지는 모르겠다만, 너는 이 에미가 이어가려는 네 아버지 꿈을 저버리지 말아라. 내가 이 일을 이루지 못하면 너의 대에서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너는 이미 사람을 칼로 찔러본 놈이다. 한번 칼에 피를 묻힌 놈은 평생 피냄새 맡으면서 살아야 하는 게 이 나라 법도다. 너는 이미 네가 갈 길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다. 한눈팔지 말고 일로매진하기를 부탁한다.”
--- p.127

나는 내 생애가 거세된 남자로 끝장이 날 것이라는 점을 예감으로 안다. 부모들은 나를 나로 키운 게 아니라 아버지의 그림자처럼, 그림자놀이 인형처럼 키운 게 사실이다. 가히 사육이다. 그렇게 사육당한 나는 이미 내가 아니다. 나는 거세당한 인간이다. 교황청은 처음부터 길이 멀어서 아득하고, 아이보리 타워는 이미 동록이 잔뜩 낀 장마당으로 변하고 있다. 거세된 인간의 앞길에 주단을 깔아줄 멍청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은 좋았다. 항용 하는 말이, 아무 걱정 말고, 공부만 해라 하는 주문이었다. 그 주문에 충실하느라고 나는 나름의 공부를 했다. 주문은 주술의 언어다. 주문(呪文)이다. 무당의 말로 귓구멍에다가 들어부은 그것을 주문이라고 한다. 공부만 한 결과가 무엇인가? 공부는 일인데, 그게 다른 일을 못 하게 하는 마약과 같은 것이다. 실체는 없고 언어만 남은 내 생애를 위해 어떤 조사도 쓸 용기를 잃었다. 이런 나를 두고, 아마, 불쌍한 아버지는 편히 눈 감고 죽지도 못할 것이다. 내 아들은 나의 죽음을 편한 마음으로, 한 송이 조화를 바치면서 명복을 빌어줄 수 있을까.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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