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나는 금방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대신 나른한 관능이 펨버턴에게 내려앉았다. 그는 그녀의 몸과 처음 만난 순간 그를 사로잡았던 눈, 반짝이는 홍채를 황홀하게 쳐다봤다. 백랍처럼 단단하고 짙은, 회색 눈동자 안에 있다기보다는 표면에 떠도는 티끌 같은 황금색 반점을. 그들의 육체가 하나 될 때, 몸뿐만 아니라 시선으로 그를 안으로 끌어당기는, 감지 않는 그 눈을. --- p.35
이후 몇 주 동안 세리나는 매일 새벽 마구간 뒤편의 마방으로 가서 횃대의 독수리를 풀어줬다. 그녀와 새는 하프 에이커 리지 아래, 나무를 벤 평원에서 아침을 보냈다. 처음 나흘 동안 세리나는 독수리 머리에 담요를 뒤집어씌워 말 뒤에 맨 사과 수레에 실어 데리고 나갔다. 닷새째 되는 날, 새는 사형 집행인처럼 머리에 검은 두건을 쓰고, 세리나의 오른쪽 팔꿈치와 새 다리에 채운 가죽 팔찌를 1.5미터 길이의 가죽끈으로 연결한 채 세리나의 오른팔에 앉았다. 캠벨이 Y자 모양의 흰떡갈나무 가지로 팔걸이를 만들어 안장 앞머리에 붙였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독수리가 안장에 올라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멀리서 보면 말과 독수리,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옛 신화에 나오는 다리 여섯 개에 날개가 달린 생물로 변형된 것 같았다. --- p.128
“세상이 몽땅 우리 앞에 있네요, 펨버턴.”
“그래, 우리가 볼 수 있는 곳까지.” 펨버턴이 눈앞의 경치를 바라보며 동의했다.
“그 너머까지. 브라질이에요. 쿠바와 같은 양질의 마호가니 숲이 있죠. 다른 점은 모두가 우리 것이라는 거예요. 그곳에 들어간 목재 회사는 하나도 없어요. 고무 농장들만 있지. (……) 거기엔 길이 없어요. 한 번도 지도에 그려진 적 없는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지죠. 미국만큼 큰 나라가 우리 것이 되는 거예요.” --- pp.199-200
시내는 고요했고 가로등과 상점들, 별로 낡지 않은 말뚝들, 법원 첨탑에 걸린 시계가 보였다. 펨버턴은 묵직한 시곗바늘이 또다시 시간이 흘렀음을 알려주며 앞으로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버드에서 어쩌다 몇 번 물리학 강의에 들어갔을 때, 교수가 오스트리아의 과학자가 내놓은 시간의 상대성에 대해 강연했던 것이 기억났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식이었다. 시간이 활기차고 정확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물결과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를 손쉽게 휩쓸어 가버릴 것만 같았다. --- p.301
그가 승무원 차 옆에서, 그들 사이의 거리를 한 번에 화차 하나씩 좁혀가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달리지도 않았지만 거리를 점점 좁혀왔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다가왔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검지로 훈계하는 손짓을 해보였다. 공포에도 맛이 있다는 걸 몰랐으나, 실제로 느껴보니 그랬다. 분필과 금속의 맛이 났다. 레이철은 제이컵을 객차 안으로 더 깊숙이, 아이의 등이 흔들리는 쇠붙이에 닿을 때까지 밀어 넣었다. 갈비뼈가 심장을 꽉 죄어왔다. --- p.358
“예전에 프랑스가 맡았던 저 땅을 놓고 싸우다가 그만뒀을 때 같군. 느낌이 비슷해.”
“무슨 느낌?” 헨리슨이 물었다.
“너무 많은 것을 죽이고 파괴해서 다시는 살아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말이야. 그 일이 있었을 때 거기 없었던 사람들한테도 그 느낌이 무겁게 짓누르는 거야. 마치 무덤에 사는 것 같지.”
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막 끝나기 시작할 무렵 단 석 달 동안 있었지만, 그 말이 맞아. 사람들이 죽고 땅도 같이 죽어버린 곳에 가면 드는 느낌이 바로 그래.”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