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첫날이니 먼저 내가 생각하는 논술이 무엇인지 정의하겠다. 여러분이 보려는 수시논술, 입시논술은 교수가 쓰라는 대로 쓰는 것, 하라는 대로 하는 것,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교수가 시키는 대로 하면 그 학생은 교수 말을 알아들은 것이 된다. 그럼 수험생과 교수 사이에 의사소통이 이루어진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앉아라, 서라, 가라, 이런 게 시키는 것이다. 그러니 시키는 대로 하려면 질문에서 동사를 잘 봐야 한다. 요약하라, 비교하라, 설명하라, 논술하라, 이런 말을 잘 봐야 한다. 동사를 성분상으로 말하면 서술어다. 서술어가 논술에서는 학생에게 하는 명령어나 지시어가 된다. 교수의 지시를 정확히 이해하고 따르는 것, 그게 논술에서는 제일 중요하다. 이 말을 대부분의 논술 책에서는 ‘출제의도’라고 한다. 논술에서 출제의도대로 안 하면 논점 이탈하고 글은 삼천포로 빠지고 그 학생은 불합격한다. --- pp.20-21
여러분의 답안을 보면 글에 ‘포장’이 많이 보인다. ‘교수들이 좋아하는 답안이 뭘까?’ 그걸 생각하지 못해 안달하는 것 같은 답안. 그러면 글에서 자기 자신이 사라지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을 쓰게 되고 두루뭉술한 답안이 된다. 그래서 ‘솔직하라’는 법칙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라는 말이다. 사람은 남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속일 수 없으니까. 모든 걸 잊고 그림만 보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봐라. 그리고 ‘나는 솔직하게 이걸 무엇이라고 보는가?’ 생각해봐라. 이런 문제에는 정답도 없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모범 답안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끌려가다 시간 다 간다. 그건 모방이고 모방은 영원한 아류다. 좀 부족해도 좋으니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말로 써라. 그러려면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솔직해진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 pp.62-63
고전 읽으면 논술 잘한다는 말에는 논리적인 문제점도 있어. 예를 들까? 서광사에서 나온 플라톤의 『국가』는 700쪽이야. 『국가』를 읽었다고 해도 그 내용 모두 기억 못해. 그런데 논술에선 그중 어느 한 쪽이 제시문으로 나와. 이게 일단 700분의 1이야. 별로 생산적인 독서라고 할 수 없어. 전체의 요지는 기억한다고 쳐도 논술에선 그 한 쪽이 출제자의 의도에 따라 다른 맥락에서 나와. 즉 다른 제시문들과의 연관 관계를 고려해서 그 부분을 읽고 독해해야 한다는 말이야. 그러니 논술 잘하겠다고 고전 읽는 건 시간이 매우 많이 필요한 비생산적인 활동이야. 중요한 건 텍스트의 내용을 읽고 이해하여 연관 관계를 파악하고 이를 오늘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력과 창의력이야. 깊이 생각하는 훈련을 하면 돼. --- p.117
교수들이 논술 문제를 어떻게 출제하는지 생각해보자. 교수들은 논술 시험 보기 일주일이나 열흘 전쯤 모인다. 그리고 토론한다. 올해에는 무슨 주제로 논술 문제를 출제할까 고민한다. 교수들은 다 한국의 교수들이다. 미국 교수 아니고 일본 교수 아니다. 이 땅에서 밥 먹고 잠자고 숨 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 땅의 문제를, ‘한국’의 사회문제를 고민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10년 전이나 100년 전도 아니고 10년 후나 100년 후도 아니고 ‘오늘’의 문제를 고민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올해에는 무슨 주제로 논술 문제를 출제할까 하는 고민은 올해에는 한국에서 무엇이 제일 중요한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이슈였냐 하는 고민이 된다. 그 이슈를 일반화하고 추상화하여 논술 문제로 만든다. --- p.263
논술에서 창의력이 너만의 기발하고 독특한 생각을 말하는 경우는 드물어. 제한된 시간에 남과 다른 독특한 생각을 하기도 힘들고. 그런 거 말고 글을 창의적으로 구성해. 그것도 창의력이야. 글을 어떤 순서로 쓸 건지, 어떤 예를 들 건지, 그 예는 어디에 둘 건지, 어떤 어휘와 문장을 쓸 건지 생각하는 것에서 다 창의력을 볼 수 있어. 논술에서 창의력은 기발한 생각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진실로 솔직한 생각이라고 여기는데. 내가 쓴 예시 답안들에, 그 답안의 어휘, 문장, 표현, 구성 등에 나만의 생각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 기발한 생각보다는 논제에 충실하게 자신에게 솔직하게 글을 쓰려고 하면 그 답안이 창의적인 답안이 될 거라고 생각해.
--- p.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