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입김이 하얗게 허공에서 부서졌다. 은애는 어깨를 부르르 떨면서도 허리를 꼿꼿이 펴고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내 남자이기 때문이에요.”
그 한 마디가 허공에서 얼어붙었다. 승하의 깊은 시선이 은애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은애는 감정이 북받쳐 말을 이었다.
“내가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내가 절대로 당신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당신은 내게 시간을 내줘야 해요. 내 말을 들어야 해요. 얼마나 후회하는지, 얼마나 미안한지, 그리고 얼마나 화가 나고 억울한지, 세상의 그 많은 남자 중에 어째서 당신 하나만 보이는지, 어째서 당신만을 이렇게 원하는지, 내가…….”
말이 끊겼다.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승하가 두 팔로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은애는 입을 반쯤 벌린 채 그의 품에 안겨 눈을 깜박였다. 고인 눈물이 뚝 떨어졌다.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튀어나올 것처럼 힘차게 뛰고 있었다.
“그만. 들어야 할 말은 다 들었으니까, 이제 그만.”
낮고 다정한 그의 음성에 몸이 무너져 내렸다. 틀리지 않았다. 그도 사랑하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만큼, 아니 어쩌면 더한 마음으로 주은애를 사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