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한 지 어언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문화관광 해설사가 웃어야 관광객이 행복하다’는 마음으로 관광해설에 임하였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느낀 점 하나는 국내에서 온 여행객이건 국외에서 온 여행객이건 국적을 불문하고 인간의 행복 추구, 인간관계, 자연을 보는 시각, 희로애락을 느끼는 관점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국가에 따라서, 또는 나이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그들이 궁금해 하는 것들은 천차만별로 달랐다. 어떤 사람들은 역사나 유적에 관심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먹거리에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짧은 만남에서 단순 해설이나 안내로 끝나지 않고 좀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자료를 모으고 다듬었다. 가평을 한 번 다녀간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에 꼭 다시 찾고 싶은 관광지로 만들어 보려고 많은 학습을 하였다.
--- 「서문」 중에서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다. 반(?)이란 글자는 나라의 학교라는 뜻으로, 반궁(泮宮)은 성균관의 별칭이다. 반궁을 감싸고 흐르는 물질이 반수(泮水), 그 주변의 마을이 반촌(泮村)이다. 반인(泮人)들은 문묘를 맡아 지키고 유생(儒生)을 보살피는 일에 종사했던 성균관 공노비로서 반촌에 모여 살았다.
--- 「성균관(成均館)과 반촌(泮村)」 중에서
사랑과 인생을 걸었지만 목월의 부인이 다녀간 며칠 후 부산에서 그녀는 목사인 아버지가 찾아와 설득하자 사흘을 버티다가 결국 이별을 선택한다. 그녀(H양)는 부친의 손에 이끌려 제주항으로 떠나는데 그 이별의 장면을 당시 제주 제일중 국어교사였던 양중해가 목격하게 된다. 애인을 떠나보내면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뱃전에서 고개만 떨구고 있던 여인의 모습을 그날 저녁 양중해가 시로 쓰고 같은 학교 음악 교사인 변훈 선생이 작곡을 한 노래가 지금은 제주의 노래로 알려진 가곡 ‘떠나가는 배’이다.
--- 「시인 박목월의 사랑」 중에서
이렇게 옥신각신 하자 금세 서너 명의 러시아 헌병들이 몰려왔다. 안중근에게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팔에 신문기자 완장을 두른 아라이 특파원이 이 광경을 보고 달려와서 안중근을 알아보고는 소리쳤다.
“아니 선생님, 웬일이십니까?”
“이 자들이 몸수색을 한다고 이렇게 난리를 피우는구려. 혹시 이 자들이 그날 밤, 아라이 기자를 폭행했던 놈들이 아니오?”
안중근이 이렇게 말하자 다나카 기자는 대뜸 유창한 러시아 말로 눈을 부라리며 헌병들에게 소리쳤다.
“이봐요, 이 선생님은 내가 보증합니다. 들여보내세요!”
그러고는 주춤거리는 러시아 헌병들 사이를 헤치고 안중근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라이 기자는 며칠 전 밤, 술집에서 자신을 구해 준 안중근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마치고는 서둘러 안쪽으로 사라졌다. 안중근은 일본인들을 헤치고 2열 횡대로 늘어서 있는 러시아 의장대 바로 뒤에까지 왔다.
--- 「이토 히로부미 암살의 일등공신은 일본 기자?」 중에서
반대로 가물치는 ‘효자 물고기’라고 불린다. 이 물고기는 알을 낳은 후 바로 실명을 하여 먹이를 찾을 수 없게 된다. 그저 배 고품을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부화되어 나온 수천 마리의 새끼들은 한 마리씩 자진하여 어미 입속으로 들어가 어미의 굶주린 배를 채워 준다.
--- 「연어와 가물치」 중에서
잠녀들은 기량의 숙달 정도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의 계층이 있다. 물속에서 물위로 솟을 때마다 ‘호오이’하면서 한꺼번에 참았던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이색적인데, 이 과도환기작용(過度換氣作用)을 숨비소리, 숨비질소리, 솜비소리, 솜비질소리라는 다양하게 지칭한다.
--- 「잠녀(潛女)의 역사」 중에서
타르바칸을 처음 본 대상들은 이것들을 잡아 가죽을 벗겨 털옷을 만들어 입었고 폭신폭신하고 따뜻한 이 옷은 곧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옷을 입은 사람 중 하나가 몸 이곳저곳이 부풀어 오르며 악취를 풍기다 죽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뿐 아니라 그와 접촉한 사람이 하나 둘씩 쓰러지다 급기야는 이들이 거쳐 간 곳은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
--- 「미물의 힘 타르바칸」 중에서
인류역사상 가장 장수한 사람은 영국 토마스 파(Thomas Parr 1438~1589)라는 이름의 농부이다. 153세까지 살은 그는 키 155cm, 몸무게 53kg의 단구였다. 80세에 처음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고, 122세에 재혼했다. 당시 영국 국왕이었던 찰스 1세가 그를 왕궁으로 초대하여 생일을 축하해 주기까지 했는데, 그 때의 과식이 원인이 되어 2개월 후 사망했다. 왕궁에 초대했을 때 왕실에서는 당대의 유명한 화가 루벤스를 불러 그에게 이 장수 노인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이 그림이 바로 유명한 위스키 Old Parr의 브랜드가 되어 오늘날까지 그의 모습이 후대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 「153세까지 살자」 중에서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애통해 했으니 소크라테스야 말로 철학자 중의 철학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의 가수 나훈아까지도 ‘테스형’이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겠는가.
--- 「소크라테스의 친구들」 중에서
서울 신랑과 경상도 신부가 깨가 쏟아지는 달콤한 신혼생활을 하던 중 어느 날 국수를 삶아 먹다가 말싸움을 하게 되었다. 신랑은 ‘국수’라 하고 신부는 ‘국시’라 하고 서로 자기가 맞는다고 둘이 한참을 다투다가 결판이 나지 않자 국문학자를 찾아 가서 물어 보기로 하였다.
“박사님, 국수와 국시가 다릅니까?”
“예, 다르지요.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들지요.”
“그럼 밀가루와 밀가리는 차이가 있나요?”
“예, 밀가루는 봉지에 담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담습니다.”
“봉지와 봉다리는 어떻게 다른가요?”
“예, 봉지는 가게에서 팔고, 봉다리는 점방에서 파는 것입니다.”
“그럼, 가게와 점방은 어떻게 다른 가요?”
“예, 가게는 아주머니가 있고, 점방에는 아지메가 있습니다.”
“그럼, 아주머니와 아지메는 어떻게 다른가요?”
“예, 아주머니는 아기를 업고 있고, 아지메는 얼라를 업고 있어요.”
“그럼 아기와 얼라는 어떻게 다른 건가요?”
“예, 아기는 누워 자고 얼라는 디비 잡니다.”
신부와 신랑은 멍~~~~
--- 「국시와 국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