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은 한 채의 건물로 완성되기보다는 안채, 뜰아래채, 사랑채 등 용도에 맞게 조성된 건물들이 안마당을 끼고 자리 잡고 있어서 집마다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한 마을에도 동일한 집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개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22쪽)
우리가 건축 공부를 하는 것은 남의 집을 고스란히 본뜨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각각의 집이 가지고 있는 성향은 어떤가,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성향의 집을 만들고 싶은가를 생각하면서 공부한다면 자기 작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소질을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저런 집을 보면서 “요즘 저런 원시적인 집에서 누가 살아?”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아무것도 없는 산골짜기에서 주변에 있는 자재를 활용해서 공간을 만들려고 어떻게 애를 썼는지 고민하면서 그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면 여러분이 하는 공부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55쪽)
중국의 조각들은 당장 잡아먹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데 우리 것은 하나같이 웃고 있어요. 그러니 한국 문화가 중국 문화를 닮았다는 소리를 함부로 할 게 아닙니다. […] 일본 나라문화재연구소에서 2년 동안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우리나라 유적을 조사한 보고서 원본이 있어서 살펴보았더니 자기네가 찍은 사진에는 그 장면이 있는데, 우리한테 소개할 때는 그것을 빼놓고 하라고 그어 놨어요. 왜냐하면 ‘웃고 있는 것들’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긍지를 느끼게 되고 조선총독부가 기가 죽어서 안 된다고 이것들은 빼라고 원칙을 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의 우리 교과서에는 그런 사진이 한 장도 없어요. (35-37쪽)
공사가 끝나고 한국실을 오픈하는 날 이응로 화백께서 오셔서 저 뒤에 있는 그림이 당신 그림이라고 자랑하시면서, 다음에 프랑스에 있는 자신의 집에 와서 한옥을 하나 지어 달라고 하셨어요. 우리나라에서 한옥 짓는 일을 맡기도 어려운 시기에 프랑스에 한옥을 지을 일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래서 최순우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저녁에 자택으로 오라고 하셨어요. 최순우 선생님 댁이 성북동에 있었는데, 그 양반 댁에 가면 앉기가 무섭게 술을 주셨어요. 술만 마신 게 아니라 그날 수집한 유물을 보여 주시면서 그것의 장점을 물어보셨어요. 앞에 최순우 선생님이 앉아 계시는데 도자기에 대해서 말을 하기 어렵잖아요. 그런데 말을 못하면 “술 한 잔 먹어. 뭐라고 이야기해 봐!” 하고 야단을 치세요. 이렇게 우리 것을 보는 눈을 가르치신 거죠. (25쪽)
현대 건축에서는 건축사, 시공사, 건축주를 3대 주체라고 하고, 여기에 이용자까지 더해서 4대 주체라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현대 건축에서 다루는 역할의 경계를 넘어서 일 전체를 이끌어 나가고 스스로의 영역을 찾아내신 것입니다. 지유의 역할이 얼마나 잘 진행되느냐에 따라 현장에서 일의 질에 굉장히 큰 차이가 납니다. 이 부분에서 선생님께서 새로운 지평을 여셨다고 생각합니다.(87, 89쪽, 전봉희 교수)
한옥은 역대 환경과 호환성도 좋을 뿐만 아니라 건물의 규격 비율도 딱 맞게 되어 있는 설계의 마술입니다. 기둥, 하방, 상방, 대들보 등 각 부품의 규격까지 모든 것들의 균형을 깊이 고려해서, 위에서 아래로 시야가 흘러 내려오도록 부드럽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앉아 있는 사람의 시야 안에서 흉하지 않게 고려한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 건축의 특징인데 사람들이 너무 가볍게 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98쪽, 피터 바돌로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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