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말이야, 네가 만든 거울로만 세상을 바라봐.
넌 타고난 에고이스트야!”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40대 초반의 ‘지하란’이라는 여성으로, 작가이며 독신이다.
그녀의 가슴속에는 뇌졸중을 앓고 있는, 유일한 혈육이자 책임져야 할 절대적인 존재인 엄마가 항상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어렸을 때부터 본처의 자식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자라서는 가난 때문에 가장 믿고 따랐던 사촌에게 움츠러들고, 급기야는 사랑했던 사람과의 결혼마저 출생의 한계 때문에 거부되고 말자 마음을 닫고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혼자가 된다.
하란은 숨어서 고행하는 사람처럼 그림자만 길게 드리워진 어머니의 삶, 아버지 식구들이 적선하듯 가끔 베풀어 주는 객쩍은 관심, 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이유로 이십여 년 간 받아 온 친척들의 측은지심으로부터, 아니 무엇보다도 그러한 모든 것의 중심인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녀는 천성적으로 그럴 수 없는 성격을 가졌다.
그녀에게는 의지할 형제도, 당당하게 내세울 부모도, 여유로운 삶도, 그 어느 것 하나 허락된 것이 없다. 그렇게 40여 년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벤치를 뱅뱅 돌던 작은 학 같던 아이.
왠지 그 아이 머리 위엔 차갑도록 하얀 낮달이 떠 있을 것 같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60대 초반의 ‘지선우’라는 남성으로, 중학교 교장 선생님이다.
형제 많은 가난한 집안의 맏이로 태어난 그는 S대 법대에 진학해 부모님과 동네 사람들의 자랑이 되고, 친구 하수의 아버지인 지정완의 눈에 들어 학비까지 지원받는다. 하지만 사법고시에 대한 압박 때문에 지독한 두통에 시달려 중간에 전과를 하게 되고, 학원 강사를 거쳐 교사의 길을 걷게 된다.
어느새 정년퇴임이 코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고등학교 교사 시절 학생들의 총 동문회가 열리고, 그는 그동안 기억 속에 묻었다고 애써 자위해 온 한 소녀를 기억해 낸다. 하얀 얼굴이 내뿜는 무표정의 강렬함이 마치 낮달을 보는 것 같았던 소녀를…….
그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안녕, 시몬. 내 오빠였고, 내 스승이었으며, 내 아버지였고,
이제는 내 수호천사인 사람!”
한 남자가 죽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지선우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란에게 40년 동안 닫혀 있던 마음을 열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어쩌면 그것이 이승에서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임무였는지도 모른다.
선우와 영혼의 교류로 마음의 안정을 찾은 하란은 선우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깨닫고, 그를 자신의 수호천사라 명명한다. 그리고 하늘 우체국으로 보내는 그들만의 편지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