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화전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휘곤도 얼른 동백꽃이 빨갛게 반짝이는 화전을 먹기 시작했다. 서윤도 얼른 하나를 집었다. 가운데 있던 벚꽃 화전이었다. 참기름 향기에 곱고 달콤한 슈거 파우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꽃잎은 아무 맛도 없었지만, 이렇게 예쁘지 않다면 벚꽃 퀼트는 훨씬 덜 맛있었을 터였다. 맛을 느끼는 건 혀뿐이 아니니까. (…)
“서윤아, 고마워. 넌, 정말 최고야. 내일은 무슨 도시락을 만들 거야?”
체리는 장미꽃을 먹고 있었다. 틴트를 바른 입술에 윤기가 돌았다. 장미꽃 화전의 기름기가 틴트를 다 지운 모양이었다. 접시를 가득 채운 벚꽃 퀼트는 사라지고, 대신 체리와 휘곤의 입술이 립글로스를 바른 것처럼 반짝거렸다.
“민서윤, 네가 도시락도 직접 만들어? 우와, 그거 나도 먹을 수 있어?”
“뭐?”
서윤은 그저 되물었을 뿐인데, 휘곤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휘곤은 우물우물 중얼거렸다.
“나, 유튜브 하거든……. 지금 생각한 건데, 이렇게 멋진 도시락이라면 찍어서 올려도 될 것 같아서. 물론 먹고 싶기도 하지만…….” --- p.32~33
“우린 다 예뻐. 그러니까 예뻐질 필요는 없는 거야.”
큭, 서윤은 손으로 코를 감싸 쥐었다. 갑자기 웃음이 나는 바람에 콧물이 나올 뻔했다.
“설마 진심은 아니지? 난 한 번도 예쁘다는 말 들은 적 없어. 우리가 다 예쁘다니, 남자애들이 웃겠다.”
“남자애들? 민서윤, 너 남자애들한테 잘 보이려고 살 빼려는 거야?”
서윤은 왠지 뜨끔했다. 그리고 자존심이 상했다.
‘너처럼 원래부터 남자애들의 관심을 받는 애가 나 같은 애 마음을 어떻게 아니?’
이렇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참았다. 남자아이들 때문에 다이어트 한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니까. 체리는 한숨을 쉬더니 서윤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서윤, 모든 사람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존재야. 그러니까 살 같은 거 안 빼도 돼.” --- p.54
“우와― 민서윤, 넌 정말 천재야. 이건 정말 돈 주고 팔아도 되겠다. 먹어도 돼?”
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당연히 함께 먹을 줄 알았던 체리는 없고 휘곤이 도시락을 칭찬하고 있는 것이 이상했다.
“내가 멋지게 영상을 찍어 줄게. 이 크로켓은 어떻게 만드는 거야? 어? 민서윤, 너, 울어?”
휘곤의 눈이 동그래졌다. 휘곤의 말에 눈에 동그랗게 맺혀 있던 눈물방울이 톡 떨어졌다.
“고마워, 김휘곤.”
“뭐가? 왜 우는데?”
서윤은 어쩌면 체리의 말이, 체리네 목사님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휘곤은 서윤이 아는 최고로 착한 아이 같았다. 아무리 보아도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우리 사귈래, 김휘곤?” --- p.105
“얘, 다이어트는 그렇게 하는 거 아냐. 휘곤이 말대로 다이어트 안 해도 예쁘지만.”
뜻밖의 말에 서윤은 입술을 비죽였다.
“거짓말.”
“내가 왜 너한테 거짓말을 하겠니? 넌 너 자신이 하나도 안 예쁘니?”
호랑의 말에 서윤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넌 평생 너 자신이 못난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거야? 그러고도 거울 볼 때 괜찮아?”
서윤은 갑자기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예쁜지 못생겼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 p.164~165
휘곤은 쑥스러운 듯 보온병을 들여다보며 숟가락질을 했다. 그 모습을 보던 서윤은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말이야, 너 왜 그동안 유튜브 안 한 거야? 내 말은,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네가 안 한다고 했잖아.”
“……호랑 님 말로는 다른 애랑 같이 할 수도 있었다면서? 미디어 센터에서 만났던 애 중에 너랑 하고 싶다고 한 애들도 있었다던데?”
서윤의 말에 휘곤의 숟가락질이 멈췄다. 휘곤은 서윤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나는 네가 좋아.”
순간 서윤은 심장이 10초 정도 멈췄다고 느꼈다. 숨 쉬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이 생각났을 때는 심장에서 몽글몽글한 기분이 퍼지기 시작했다. 서윤은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저 휘곤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휘곤의 얼굴도 점점 붉어졌다.
“아……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아니, 그게 아니라…….”
그때였다. 후두둑 소리가 요란하더니 나뭇잎에서 미끄러진 빗방울이 휘곤과 서윤의 머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 p.204~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