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문화의 혼종성은 공간적 요인과 시간적 요인이 서로 맞물리며 엮어 낸 거대한 작품이다. 지리적 다양성을 지닌 이베리아 반도라는 공간 위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이민족들이 들어와 그들 방식의 콘비벤시아를 실현함으로써 스페인만의 독특한 ‘문화 파에야’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이러한 스페인 문화의 특질은 근대 초 아메리카로 건너가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p.24
1550년 이후 스페인 문학은 이른바 ‘황금세기’로 접어들게 되며, 그것은 거의 1세기 이상 동안 계속된다. 대항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의 영향으로 외국 서적에 대한 검열이 강화되고, 스페인 학생들의 외국 유학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제국의 광범한 연계망은 스페인이 피레네 산맥 너머에서 나타나고 있던 문화적 흐름을 계속 수용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황금세기의 문화적 창조성의 폭발의 가장 두드러진 산물 가운데는 작자 미상의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 마테오 알레만의 『구스만 데 알파라체』,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의 『부스콘』 같은 피카레스카 소설, 산타 테레사 데 아빌라, 산 후안 데 라 크루스, 루이스 데 레온 등의 신비주의적 저술이 포함되어 있다.---p.49
이상에서 살펴본 스페인의 20세기는 두 스페인이 갈등한 세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낡은 스페인과 새로운 스페인으로 대표되는, 전근대와 근대, 보수와 개혁, 우파와 좌파, 가해자와 피해자가 갈등했다. 이 갈등이 급기야 내전으로 치닫고 독재로 제도화되었다. 하지만 결국 내전의 비극을 교훈 삼아 두 스페인은 타협했고 민주화를 이룩했다. 이른바 “타협에 의한 단절”을 만들어 냈다. 그 이후 사회노동당이 집권했고 국민당의 집권이 이어졌으며 다시 사회노동당이 집권했다가 현재는 국민당이 집권해 있다. 이 모든 정권 교체가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절차 속에 진행되었다. 민주주의가 완전히 정착된 것이다.---p.79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민족주의 운동이 나타난 것은 19세기 후반이었으며, 그것은 이 시기 스페인에서 시작된 산업화 과정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매우 불균등한 모습으로 진행된 스페인의 산업화에서 카탈루냐와 바스크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산업 발전을 이루었으며, 두 지역의 민족주의 운동은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변화, 국내 다른 지역들에서 두 지역으로 유입된 다수의 산업노동자의 존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몇 가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두 지역의 민족주의는 그 성격이나 목표 등에서 판이하게 달랐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바스크 민족주의는 스페인 국가가 추구하는 근대화에 반발하고 저항하는 반근대적 성격을 띤 반면에, 카탈루냐의 민족주의는 근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스페인 국가의 무능함에 대한 산업화 세력의 반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p.90
가톨릭 교회의 절대 신앙과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구교의 엄격한 신앙 통제와 신교의 개인중심주의 등 제도와 가치관에서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극명하게 대립하던 스페인 사회의 정치적 상황이 예술적 상상력에서도 명암을 두드러지게 했을 듯하다. 그렇게 리얼리즘과 이상주의가 첨예한 만큼 명증하게 대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돈키호테』도 바로 경직된 사유의 대립 가운데 더 강렬하게 두드러진 해학적 통찰의 결실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산초와 돈키호테 사이에 리얼리즘과 이상주의idealism의 대립은 스페인 근대사를 관통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남긴 문화와 사유 양식의 궤적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p.121
19세기 나폴레옹의 스페인 점령은 근세 스페인 회화가 유럽 전역에 알려지게 된 계기였다. 1808년부터 1813년까지 조셉 보나파르트 정권은 스페인의 수도원과 성당에 있던 미술품들을 모아 파리로 보냈다. 루브르에 전시된 이 작품들은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미술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테오도르 제리코Theodore Gericault, 1791~1824는 주세페 데 리베라의 작품을 모사했고,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1798~1863는 고야의 『카프리초스』와 수르바란의 성인 그림들, 그리고 당시 프랑스에서 벨라스케스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던 카레뇨의 〈카를로스 2세의 초상〉에 매료되었다.---p.187
20세기 현대미술은 〈아비뇽의 처녀들〉이 그 시발점이었다는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이 작품이 뉴욕 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 알프레드 바Alfred Barr가 구입했다는 점 때문에 더욱 미술사적인 가치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피카소는 이 작품이 “철학적인 사창가Philosophical Bordello”가 되기를 원했다고 설명하며, 바르셀로나의 홍등가에 있는 아비뇽Avinyo Street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p.208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숨결이 살아 움직이는 가우디의 박물관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위용을 자랑하는 독창적인 대성당양식으로 완공까지는 아직도 100년이나 족히 더 걸릴 것으로 추정되는 성가족 대성당은 여전히 가우디에 의해 열정으로 지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것만으로도 스페인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건축물이며 그 위용만으로 가우디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모두 다 둘러보는 데 2시간으론 부족한 대작이지만 작은 디테일에서 거대한 파사드까지 모두 다 조각 작품으로 이루어졌다.---p.281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해외에서 상업적으로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둔 최초의 스페인 영화였다. 물론 부뉴엘, 베를랑가, 사우라 등이 유럽 영화계에서 거장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그들의 영화는 주로 비평가들이나 소수의 시네필로부터 추앙을 받은 것이었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 면에서 알모도바르의 세계적 성공은 알모도바르 개인의 영예를 넘어 민주화 시대 스페인 영화의 전환점이 되었다.---p.312
구체적으로 플라멩코에는 서양 음계에 없는 음과 음 사이를 넘나드는 창법과 더불어 한 음을 중심으로 두고 리듬을 반복하는 특징이 잘 나타난다. 또한 아름다운 목소리보다는 풍부한 표현을 할 수 있는 거친 목소리를 선호하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음악적인 특징을 통해 인간이 가진 감성을 최대한으로 표출하고, 흥분의 절정에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 아픔까지 모두를 예술로 승화시킨다. 특히 삶의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측면을 노래하는 장르를 ‘칸테 혼도cante jondo’라 부르는데, 이는 심오한 노래라는 뜻이다.---p.328
이렇게 지속적으로 이어진 침략과 이주의 물결은 투우에서 반복되는 소의 공격에 견줄 수 있다. 경기 순서에 따라 투우장으로 들여보내는 여섯 마리의 소에 비유된다는 말이 오히려 더 적절할 것이다. 이러한 비유로 본다면, 스페인의 초기 역사는 외지인들의 침입이 너무나 잦아서, 마치 투우사들이 침략해 오는 민족의 수만큼이나 황소의 무수한 공격을 막아내며 치러야 하는 투우 경기에 비유할 수 있겠다.---p.339
우리가 살펴본 스페인 축제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졌고 사랑을 받는 산 페르민 축제는 한 도시에서 열리는 축제가 얼마나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도시의 대외적 이미지를 높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2010년 팜플로나 시 1년 예산은 2억 5,882만 9,565유로(약 4,150억 원)로 시 당국은 축제 준비를 위해 300만 유로(약 48억 원)를 지출하였다. 그런데 축제 기간 중 팜플로나 시를 방문한 관광객은 시의 상주 인구 수보다 많은 20만 명이 넘었고 다양한 행사에 참가한 연 인원은 150만 명에 달한다. 그리고 이들은 일주일간의 축제 기간 중 4,500만 유로(약 720억 원)를 소비하였다. 즉 팜플로나 시는 축제 준비를 위해 소모한 비용의 15배를 벌어들였고 단 일주일 만에 1년 예산의 17%에 해당하는 수익을 올렸다. 더군다나 산 페르민 축제를 취재하기 위해 15개국 126개 언론 기관에서 400명이 넘는 기자들이 방문하여 인구 20만의 중소 도시 팜플로나를 세계적으로 알림으로써 시 당국은 별도의 홍보비용 없이 도시 브랜드 가치 향상의 극대화를 이루었다.---p.385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융합되어 탄생한 찬란한 유산들과 연중 맑은 날이 300일이 넘는 아름다운 지중해 해변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거저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주어진 신과 조상의 선물을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탈바꿈시킨 주체도 스페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p.425
스페인 사람의 음식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여 문호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속에도 음식 이야기는 자주 등장한다. 작품의 주요 배경으로 소개되는 라만차 지역의 요리를 중심으로 약 150여 가지의 음식이 언급되고 있는데 소설의 1부 첫 장면부터 음식 이야기가 등장한다.---p.433
사물의 파편적인 면을 분석하기보다 통찰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보는 직관적 능력이 발달한 스페인 사람들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인문주의적 환경 중의 하나를 놀이와 여유의 미학에서 찾는다. 스페인을 찾는 이에게 가장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충 서너 가지의 답이 나온다. 플라멩코, 투우, 축구, 그리고 미술관, 모두가 스페인을 상징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볼거리이자 스페인의 놀이 문화 코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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