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에서 ‘살맛’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인생이 원하는 대로 펼쳐질 때 ‘살맛 난다’고 한다. 음식에만 맛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살이에도 맛이 있다는 뜻이다. 살맛이란 먼저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것, 여유로운 삶, 자연친화적인 삶, 경제적 여유 등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남자/여자가 보는 세상, 있는 자/없는 자가 보는 세상, 어린아이/어른이 보는 세상에 따라 살맛이 다를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깨끗한 세상 혹은 살맛 나는 세상에 대해 관심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돌아봐야 한다.
그런데 누구는 “재미있어 죽겠다” 하고, 또 누구는 담벼락에 침을 뱉으며 “빌어먹을 세상” 하고 욕을 한다. 이 두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감하지 못하고 갈등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어렵지만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 우리는 진정으로 살맛을 느끼며 살아가는가
우리는 배고플 때 잘 먹고 싶고, 자부심을 고양시키기 위해 멋지게 옷을 입는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을 마실 때도 있다. 이렇게 살맛이란 다차원적이다.
장자는 “무엇을 즐기고 무엇을 싫어하는가”라고 물으면서 좋아하는 것은 몸 편한 것(身安), 맛있는 먹을거리(厚味), 멋있는 옷(美服), 예쁜 여자(好色), 감미로운 음악(音聲)을 꼽았다. 반대로 싫은 것은 몸이 편하지 않고 입맛을 모르고 멋진 옷을 입지 못하고 눈으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귀가 나빠 좋은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디 살맛이 그것뿐일까. 살맛은 우리 생활 속에서 의식(儀式) 과정에 깃들어 있다. 결혼, 생일, 장례 등의 생로병사 과정 대부분이 살맛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는 쾌락, 기쁨, 건강 등 실존적 삶의 양식이 함축되어 있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출근해서 일하는 것, 내가 살 집이 있다는 것, 하루하루 벌어서 먹고사는 것이 힘들지만 그래도 소중한 사람들(가족, 연인, 친구)이 곁에 있으면 살맛 나는 세상이다. 줄여 말하면 휴미락은 인간의 기본 욕구요 사회적 의식이다.
또한 살맛이라는 말은 밥맛과 같은 뜻이다. 세상을 밥맛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보기 싫은 사람을 만나면 “밥맛없는 놈” 하고 욕한다. 그래서 우리는 밥맛이 도는 친구, 밥맛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그래서 세상을 밥맛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사람은 엄마 뱃속에서 나오면서 살맛 나는 세상에 태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살맛은 원초적이라는 뜻이다.
성균관대 박재희 교수는 《3분고전 2》에서 ‘인생팔미(人生八味)’를 소개했다. 그것은 음식미, 직업미, 풍류미, 관계미, 봉사미, 학습미, 건강미, 인간미다. 이 여덟 가지 맛을 제대로 알아야 즐겁게 사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가. 빈곤에서 벗어나 풍요로운 3만불 시대에 접어들었다지만 왜 이렇게 살맛이 나지 않는가. 우리가 불안하고 피로감을 느끼는 건 복잡한 ‘사회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삶의 불균형 때문이다. 겉으로 웃고 있으나 깊은 불안감에 싸여 살아가는 형국이다. 우리 삶을 즐겁게 만드는 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을 텐데 너무나 힘든 갈등 속에서 살아간다. 오늘날 즐겁고 신바람 나는, 그야말로 살맛 나는 세상은 왜 어려운 것일까.
가까운 친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 삶의 과정이 살맛 나지 않니?” 하고 웃으며 말했다. 친구의 살맛이란 쪽팔리게 살지 않겠다는 뜻인 듯했다. 멋진 설명이다. 남에게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내 삶을 선택해 살아가는 것, 이것이 살맛 나는 세상이다. 내가 주체가 되어 살아갈 때 살맛 나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이때의 살맛이란 영어의 ‘안락함(comfort)’과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해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다이몬(daimo^n)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플라톤의 다이몬은 각자의 혼에 따라 그
운명을 지키는 수호신을 가리킨다. 신비한 기운 같은 것이다. 현명한 사람들이 신과 같은 특별한 영감과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하는 ‘신성한 표식’이 다름 아닌 다이몬이다.
살맛이란 사람답게 사람다움으로 사는 것이고, 살맛을 느끼는 사람은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니체는 ‘제대로 된 사람’은 감각적으로 좋은 일을 한다는 점, 육체와 정신이 천성적으로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우며, 동시에 좋은 냄새가 난다고 했다. 이런 사람들은 “웃어라, 즐겨라, 내 인생아” 하고 살맛을 느낀다. 문제는 자신의 자아가 어떠하느냐다.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살다(生きる)’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난 남을 원망하며 살 수 없어, 나한텐 그럴 시간이 없어!”라고. 맞는 말이다. 우리가 남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 눈과 마음만 열면 딴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찾아가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살맛은 생물-심리-사회문화-영성 차원(BPSS, Bio-Psychology-Social
·Culture-Spiritual)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생물학적(건강, 질병)·심리적(불안, 우울증)·사회문화적(지위 역할, 환경)·영적(감사, 사랑, 공감) 차원을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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