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망각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지난 몇 년 동안 마르크스는 국제학계의 주목을 다시 받았다. 그의 사상의 가치가 많은 이들에 의해 다시 주창되었으며 …… 이런 재발견의 가장 중요한 예 중의 하나는, 정확히 MEGA2의 지속이다.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학문적 역량의 학자들이 참가하는 완성 계획은 총 4부로 나뉜다. 제1부는 『자본론』을 제외한 모든 저작, 논문, 초고들을, 제2부는 『자본론』과 1857년부터 시작된 자본론 초고들을, 제3부는 서신들을, 제4부는 발췌문, 논평, 방주들을 포함한다. 계획된 114권 중 53권이 출판되었다(1998년 재개 이후 13권). 각 권은 2책, 텍스트 책과 비판적 자료집critical apparatus, 즉 색인들과 방대한 증주들을 포함하는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르크스의 수고들, 방대한 서신들의 주요한 부분들과, 그가 독서하는 동안 습관적으로 작성했던 산더미같이 거대한 발췌들과 주석들이 결코 출간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 사업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p.188
마르크스와 친밀히 관계했던 많은 사람들이 기록했듯이, 그는 책을 사치의 대상이 아니라 작업 도구로 생각했다. 그는 책을 거칠게―지면들의 모서리를 접고 책에 밑줄을 그었다― 다루었다. 마르크스는 책에 관해 “이것들은 나의 노예이며 내 의지에 복종해야 한다”(Lafargue, 1965: 152)고 말했다. 다른 한편 그는 책에 너무 극단적으로 몰입해서, “책들을 배설하기 위해서―역사라는 똥 무더기 위에, 다른 형태로― 걸신들린 듯이 먹도록 저주받은 기계”로 자신을 규정할 정도에 도달했다. 마르크스가 독서한 것들뿐 아니라 이런 독서에 관련된 논평들을 알 수 있다는 것은―그럼에도 그의 장서는 그가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수십 년 동안 수행한 지칠 줄 모르는 작업의 부분적인 횡단면만을 보여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의 연구를 재구성하는 데 소중한 자원이 된다. 이것은 또한 마르크스의 사상을 종종 갑자기 번쩍한 번개의 결실로 표상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잘못된 위인전적 해석을 거부하고 현실대로, 선행자들과 동시대인들로부터 도출한 이론적 자원들로 가득 찬 정교화로서 해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 pp.198-199
엥겔스 사후에 마르크스 저작의 원본 대부분은 베를린에 있는 독일 사민당 문서보관소에 보관되었고 극도로 방치되었다. 당내 정치투쟁이 마르크스가 남긴 수많은 중요한 문서들의 출판을 방해했다. 실제로 그 투쟁들은 수고를 흩어지게 했고, 오랫동안 그의 저작의 완전한 판본을 생산하지 못하게 했다. 아무도 마르크스의 지적 유산의 보고를 책임지지 않았으며, [그룬트리세]가 그의 다른 원고와 같이 묻혀 있게 했다.--- p.266
소외 개념이 혁명적으로 확산된 결정적인 사건은, 이전에 출판되지 않았던 마르크스의 청년기 텍스트인 [1844년 경제학·철학 수고]가 1932년에 출판된 것이었다. 이 책은 순식간에 20세기에서 가장 널리 번역되고 유포되며 토론된 철학 서적의 하나가 되었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경제학 사상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에, 즉 정치경제학의 발견에서 소외 이론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마르크스는 소외된 노동entfremdete Arbeit이라는 범주를 통해 소외 문제를 철학, 종교나 정치 영역으로부터 물질적 생산의 경제 영역으로 넓혔을 뿐 아니라, 또한 경제 영역이 다른 영역에서의 소외를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 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1844년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소외는, 노동 생산물이 ‘생산자와 독립적인 힘으로, 낯선 것으로’ 노동과 대립하는 현상으로 제시되었다.--- pp.279-280
많은 이들이 그랬지만 1844년 수고의 소외 이론이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적 주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서 그의 저작에 대한 무지를 증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한편 마르크스가 새로 출판된 소외에 대한 지면 때문에 다시 한 번 철학 문헌에서 가장 자주 논의되고 인용되는 사람이 되었을 때, 소련의 이 주제 전체와 그와 관련된 논쟁에 대한 침묵은 이 나라가 마르크스의 저술을 어떻게 도구적으로 이용했는지 확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왜냐하면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에서 소외의 실존은 부정되었으며, 이 문제와 관련된 어떠한 텍스트도 의혹을 샀기 때문이다.--- p.290
MEGA2에 의해 출판된 새로운 수고들은 마르크스의 사상의 중요한 국면들을 재건축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작업은 지금까지는 단지 소수의 해석자들만 연구했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예로 들어보자. 이 분야의 학자들 중 거의 대부분은 마르크스의 발전에서 특정 시기들만 고려했다. 종종 [1844년 경제학·철학수고]로부터 바로 건너뛰어 [그룬트리세](1857~1858)로, 그리고 후자에서 『자본론』 제1권으로 가거나 잘해야 『철학의 빈곤』(1847)을 연구하고는 했다. 오늘날, MEGA2 덕분에, 최소한 진지한 마르크스 해석자들 내에서는 사태가 변했다. 새로운 연구용 문헌들을 사용함에 의해,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모든 단계들을 재건축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그래서 마르크스의 사상의 형성에 관해 때로는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설명들―과거에 만들어졌던―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설명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세계를 이해하고 비판하고 변화시키는 데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하고 유용할 것이다.--- p.309
마르크스의 일부 후계자들이나 마르크스의 사상의 자칭 관리인들에 의해 잘못 이해되었거나 완전히 왜곡된 마르크스의 사상들의 목록은 매우 길다. 상이한 시각들에 의해 왜곡되어 상황적·정치적 필요성들의 함수가 되었기 때문에, 그는 이 정치적 필요성들에 의해 흡수되었고 이것들의 이름으로 매도되었다. …… 매우 엄격한 비판가이며 자신의 결론에 결코 안주하지 않았던 마르크스는 가장 완고한 교조주의의 원천이 되어버렸다. 역사의 유물론적 이해의 확고한 신봉자였던 그는 다른 어떤 저자들보다 더 역사적 맥락이 박탈되었다. 그는 ‘노동계급 해방이 노동자들 자신의 과업임’을 확신하는 것으로부터 정반대로 정치적 전위들의 최고 지위와 당이 계급의식의 옹호자와 혁명의 지도자로서 그들의 역할에서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이데올로기에 포획되었다.--- p.311
특히 중요하게도 경제학자들의 이론들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은 이중적 가치를 지녔다. 그 비판은 역사적 성격이 현실을 이해하는 데 필수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불변성이라는 독단을 반격하는 정확히 정치적인 목표를 지닌 것만이 아니었다. ……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 경제는, 고전파 정치경제학자들이 선포했듯이, 어떤 초역사적·몰역사적인 ‘인간 본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역사적 발전의 결과였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인간 역사의 유일한 단계도, 최종 단계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 p.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