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제정신을 가진 어떤 이가 다른 국가들이 히틀러를 타도하기 위해 1933년에 군대를 동원하여 개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때는 히틀러가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았고 분명히 독일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1936년 라인란트에서 히틀러를 몰아내기 위해 개입하는 일 말고 히틀러가 독일에서 더욱 인기 있도록 만들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독일인들이 히틀러를 권좌에 올려놓았고, 그들만이 히틀러를 축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 『준비되지 않은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의 본문 중에서
히틀러에게 죄를 뒤집어씌움으로써 나머지 독일인들은 무죄를 주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전에는 전쟁 범죄를 말하는 것에 가장 격렬하게 반대했던 독일인들이 이제 그 굳건한 옹호자가 되었다. 일부 독일인들은 히틀러의 사악함에다 특히 그럴듯한 왜곡을 가하려고 애썼다. 히틀러가 분명히 극악무도한 괴물이었기 때문에 결단코 저지되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히틀러의 죄가 확정된 후 남은 책임은 1936년에 그를 라인란트에서 쫓아내지 못했던 프랑스인들 혹은 1938년 9월에 겁을 먹고 주춤한 체임벌린의 몫이 될 수 있었다.
--- 『준비되지 않은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의 본문 중에서
모든 곳에서 독일인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연합국의 고위급 장교들은 한 달 안, 심지어 삼 주 안에 독일에 입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연합국의 진격은 닷새 동안만 지속되었다. 9월 14일 독일인들이 엔 강에 도달했다. 지쳐 있었고 더는 행군이 불가능했다. …… 독인들은 땅을 긁어 구멍을 파고 기관총을 설치했다. 모두에게 놀랍게도, 연합국은 주저했고, 진격을 멈추었다. 작전이 끝났다. 흙으로 쌓은 둔덕에 몸을 숨기고 기관총으로 사격을 하면, 고작 한 사람으로도 진격하는 대군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참호전이 시작된 것이다.
---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제1차 세계대전』 의 본문 중에서
전략은 실패했지만 교착상태를 타개할 수 있음직한 또 다른 방법이 있었다. 새로운 수단 즉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군들은 이런 대안에 기여하기는커녕 악영향만 일으켰다. 그나마 장군들이 유일하게 내놓은 기발한 계획은 폭격의 강도를 높여 적 방어선에 구멍을 낸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점점 더 많은 포와 포탄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폭격이 땅을 죄다 뒤집어놓아 보병들의 진군 속도를 그 어느 때보다 더 늦춰놓을 수 있다는 현실은 깨닫지 못했다. …… 처음으로 사용된 독가스의 효과는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곧 양측이 방독면을 갖게 되자, 남은 건 보병이 겪어야 할 불편함만 늘었다는 현실이었다.
---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제1차 세계대전』 의 본문 중에서
영국 보병은 의욕이 있었지만 다른 것은 많지 않았다. 이들은 키치너의 부름에 응한 사람들이었고 징집된 이는 거의 없었다. 급하게 아주 기본적인 훈련을 받았을 뿐, 정확히 사격을 하지도 못했고, 흩어져서 작전을 수행하지도 못했다. 배운 것이라곤 오로지 일직선으로 앞을 향해 가는 것뿐이었다. …… 이 대규모의 자원병 군대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엄격한 군대였고, 가장 호된 규율과 가장 심한 처벌이 있는 군대였다. 이들은 이전의 실패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 그 실패를 대규모로 반복할 수 있는지를 배웠을 뿐이었다.
---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제1차 세계대전』 의 본문 중에서
루덴도르프는 즉시 해결책을 내놓았다. “위로부터의 혁명”이 있어야 했다. 독일 국민은 놀랍게도 독일이 최고 사령부의 명령에 의해 민주적인 국가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유주의자 평판을 가진 군주, 바덴의 막스 공이 재상에 임명되었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정부에 참여했다. 물론 루덴도르프 및 다른 장성들은 이 모든 일을 연합국을 기만하기 위한 겉치레라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고, 그 이상은 아니었다. 혁명이 위로부터 시작되었으나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독일 국민들은 갑자기 열띤 정치 토론에 빠져들게 되었다. 언론이 자유화되었고, 전쟁을 반대하는 좌익 인사들이 목소리 내는 것을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제1차 세계대전』 의 본문 중에서
프랑스-독일 국경을 따라 건설된 마지노선은 프랑스에 효과적인 안보를 제공했다. 또한 쉽게 인지되지는 않았지만 독일에도 안보를 가져다주었다. 프랑스인들은 마지노선을 순전히 방어적인 것으로 생각했고, 로마인들이 영국 북부의 방벽을 넘어 나아갔듯이 마지노선을 넘어 진격할 수단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지노선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확신 덕분에 독일인들은 자신들 쪽 국경의 방어를 위해 주의를 거의 기울이지 않았고, 프랑스인들이 배치한 병력의 삼분의 일만 배치해놓았다. 프랑스가 59개 사단을 배치한데 비해 독일은 19개였다. 이렇게 어처구니없게도 마지노선은 독일인들에게 이로움을 주었고 프랑스인들을 약화시켰다.
---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의 본문 중에서
이 시점에서 히틀러는 장기적 논리를 당면 논리로 전환했다. 확실히 러시아는 당시 독일의 필요를 채워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 때때로 히틀러는 스탈린이 살아 있는 동안은 독일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 히틀러는 좀 더 직접적인 위협을 목도했다. 러시아인들이 무력을 증강시키고 있었다. 히틀러는 곧 러시아 침공이 예방전이라고 확신했고 장군들 또한 납득시켰다. 나폴레옹이 한 세기도 전에 내세웠던 것과 똑같은 논리였다.
---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제1차 세계대전』 의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