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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시를 쓰세요, 나는 고양이 밥을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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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1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252쪽 | 296g | 132*190*16mm
ISBN13 9791162850664
ISBN10 1162850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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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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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만이 산책이 아니다. 몸 산책이 어렵다면, 마음 산책을 하면 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 밤하늘에서 별 하나를 찾아보는 것, 아침 향나무 사이를 오가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봄날 넓어진 나뭇잎을 가만히 매만져보는 것, 울퉁불퉁하게 흘러가는 구름을 오래 들여다보는 것, 그리운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는 것 모두가 마음 산책이다. 또 사랑한다는 말이 들어 있는 한 통의 편지를 쓰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 산책인가. 그것들이 모여 무성한 마음의 숲을 이룬다면, 우리는 그 숲길에서 넉넉해질 수 있으리라.
--- 「그대에게 가는 클래식한 세 가지 방법」 중에서(14p)

어느 해변에 앉아 있는데, 내 그림자가 스윽 일어나더니 가버린다. 저놈이 주인을 버리고 어디를 저리 가는가? 그림자는 밀물과 썰물을 지나 저녁을 한동안 걷더니 바닷가 공원으로 들어간다. 혼자가 아니다. 어디선가 모여든 그림자들과 무대에 오른다. 그리움이 가끔 일어나 내 바깥으로 나갈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그냥 그대로 지켜본다. 그리운 것들끼리 한바탕 놀도록 내버려 두는 거다.
--- 「그리움도 등대가 필요해」 중에서(20p)

가난한 흥부는 놀부 집에 쌀을 얻으러 갔다. 놀부 아내는 밥주걱으로 흥부 귀싸대기를 날리고 내쫓았다. 시 앞에서 시인은 여전히 배가 고픈, 고플 수밖에 없는 흥부이다. 시는 나를 박대한다. 뺨을 후려갈기고 내쫓는다. 돌아서며 볼을 어루만지면 뺨에 붙어 있는 몇 알의 글자. 그것을 입으로 가져간다. 나에게 시란, 뺨에 붙은 밥풀떼기 몇 알이다.
--- 「간절한 마음으로 얻어맞는 뺨」 중에서(34p)

죄책감은 뿌리가 깊고 단단해서 달아날 길이 없다. 이제 나는 그날의 죄책감을 애써 떨쳐버리려 하지 않는다. 친구처럼 손을 내밀어 잡고 남은 삶과 함께 걸어가려고 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깨어 있다면 다시 거듭날 수 있다. 그 일들은 나쁜 일이었지만, 나쁘지만은 않다. 죄책감은 학습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 「마음의 빚은 바래지 않는다」 중에서(180p)

울음은 언어 이전의 언어다. 울음은 만국 공통어이자 모든 생명의 공통어이다. 울음은 태초의 언어이며 최후의 언어이다. 말로는 다 표현할 길이 없을 때, 우리는 바야흐로 울음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낸다. 울음은 가장 순수하고 간절한 소통 신호이다. 울어야 산다. 거짓 울음 말고 진짜로 울어야 산다. 울어야 할 때마다 참으면 우리 속은 결국 썩는다. 웃음보따리를 챙기는 것처럼 울음보따리도 잘 챙겨보자. 울음이 변질되면 세상은 망한다. 눈물이 안 통하는 세상도 망한다. 그러고 보면 바람이 아니었다.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울음이었다.
---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울음이었다」 중에서(2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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