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탓일까, 취향의 변화 탓일까? 뉴욕식이건, 파리식이건 간에 이제 더 이상 어느 카페에서도 ‘카페 소사이어티’는 작동하지 않는다. 문화예술적으로, 또는 비즈니스적으로 사교계의 핫플레이스로 각광받던 카페들은 이제 자신들의 흔적을 기념하는 셀카족 장소나, 맛집 정보를 찾아 게걸스럽게 이색 음식을 탐하는 ‘먹보’들의 순례지, 또는 시험공부에 집중하는 이른바 ‘카공족’들의 도서관으로 진화했다. ‘소사이어티’가 빠진 카페는 왠지 허전하다. 비록 사이버상이지만, 포털 사이트에 수많은 카페가 생겨나는 것은 현실 속 카페의 결핍 때문일 것이다.
---「‘소사이어티’가 없는 카페의 공허함」중에서
영화 「조커」의 주인공처럼, 우리 사회에 조현병자의 범죄가 빈번하다. 촛불혁명이 시작된 지 3년, 시민들의 바람대로 ‘비정상의 정상화’가 과연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걸까? 이미 청산됐어야 할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정상인으로 군림하며,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 현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적이다. 미쳐가는 비정상적 세상에서 미치지 않은 이가 있다면, 그건 멘탈이 무척 강한 사람이거나 비정상적인 광인일 가능성이 크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고, 미쳐야 할 때 미치는 솔직한 존재감. 어쩌면 21세기의 데카르트는 조커가 아닐까?
---「조커는 21세기의 데카르트?」중에서
이제, 우리 대학들은 더 이상 사상과 철학을 논하며, 사회적 담론을 생산하고, 사유하고, 실천하는 학문의 도량이 아니다. 1등부터 꼴등까지 세세히 서열화한 대학들은 남을 밀어내는 기술을 전수하는 곳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세칭 일류대학마다 재벌이 지어준 삼성관, 포스코관, LG관 등은 화려한 기업 연수원을 방불케 하는 연구실과 강의실을 뽐내고 있다. 대학은 건물을 지어준 기업의 입맛에 맞는 주문형 인재 양성을 위해 ‘친기업적-친자본적 커리큘럼’을 앞다퉈 내놓으며, 대기업 CEO들을 정기적으로 초청해 ‘성공신화’를 듣는다.
---「‘한국판’ 파리8대학은 언제?」중에서
우리 사회에 부유하는 좀비 증후군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그 수가 많아지는 이유는 버스타이넨과 보이텍이 주장하는 것처럼 소뇌와 좌반구 대뇌피질의 기능을 상실한 이들이 많기 때문일까? 스마트폰의 과다사용에 따른 뇌 기능 이상 현상의 경우 스마트 사용을 억제하면 되겠지만, 극우 세력의 좀비 증상은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고 트집을 잡아 비틀며, 자신만이 옳다고 정당화하는 즉 ‘정신승리(情神勝利)’적인 병리 현상이어서 치유가 어려워 보인다.
---「‘죽음의 시간’을 갈망하는 좀비 증후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