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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극장 속의 커튼콜

텅 빈 극장 속의 커튼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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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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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년 11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28*208*20mm
ISBN13 9791196855116
ISBN10 1196855110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거리 위에서 빵을 씹다가 어른이 됐다.

빵은 고독만큼 썼고 고독처럼 곧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씹으면 씹을수록 빵의 원형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뜨겁게 부풀어 오르기 전, 무구하고 투명한 날들의 밀가루 반죽을 생각하면 슬픔과는 무관한 눈물이 고였다. 자꾸만 곳곳에 달라붙으며 내 음성을 끈적이게 만들던 것들. 하루 종일 발버둥 치던 기호와 구강 속에 갇힌 진동들. 목이 막혔다.

절대적인 규칙과 법칙이 점령한 도시. 이곳에서는 스스로를 증명한 것만이 제 둥지를 튼다. 쏟아지는 권력들 사이에서 익명의 틈입 하나로 빵은 부풀어야 했다. 체스말을 움직이듯, 단 한 번의 가벼운 손짓만이 있었을 뿐이다.

가끔은 내 손에 붙들린 넋들이 부르르 떨기도 했다. 그때마다 베이킹소다가 빨래에 쓰이기 시작했다는, 어느 슬픈 역사를 떠올렸다. 수차례 뭉개지고 부활하는 수명주기의 패턴을. 설 곳을 찾지 못해 부채꼴의 무덤 앞으로 등 떠밀린 그 내력들을.

빵봉지에 묻은 설탕은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고
부스럭거리는 이불을 덮고 눕는 밤이면
오후 내 반짝이던 가루들과 함께 무언가가 하염없이 내 속에서 들끓고 있었다
---「필름 소보루」중에서

당신 눈꺼풀의 외벽 그 무너지는 해변 속에 내가 있다밀려오는 슬픔도 없이 썰물이 지는 섬. 우리는 우리가 닿지 못한 평평한 미래를 향해 걸었다. 한참을 걷다 보면 뒤따라온 모래들의 중력으로 발걸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바짓단과 함께 간밤의 꿈들을 풀어주는 것으로 우리는 과거와 이별하는 법을 배웠다. 그때만큼은 너의 그림자 너머로 식어가던 노을마저 환한 미래가 되어 손에 곧 닿을 듯했다.?아무리 걸어도 우리는 좀처럼 말이 없었다. 방파제의 쓸쓸함으로 주저앉아 흐느끼던 너의 어깨를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였기 때문에 결코 마주 볼 수 없던 반대의 얼굴이 있다. 둘 중 누구 하나 마른 입술 사이의 쉬운 고백들을 열어보지 못했으므로.당신이 내 세상의 종교이던 때 나는 너무 맹목적인 신앙이었다. 바닷가에 우두커니 한 줄기 구원을 기다리는 어느 이교도의 미련함. 내 심장을 만지던 하얀 손등 대신 철썩이는 파도 앞에 뺨을 번갈아 기대봐도, 뉘우치지 못한 마음들은 여전히 아득한 바닷속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물먹은 심장에서 네가 마를 때까지 달리고?달렸다 입안에선 짠맛이 돌았다.말라붙은 해조류의 몸짓으로, 또는 우울의 주검으로, 그러니까 내가 한 줄의 문장으로 너의 입술에 매달리던 때마저도 우리는 쉽게 포개질 수 없는 다른 시간 속을 지나고 있었을 것이다.이제 나는 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어차피 너는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애인이고, 나는 그저 고쳐 쓰는 일기 같은 것. 훔쳐 온 미래와 반송된 과거들로 더러워진, 이를테면 결코 마주 볼 수 없는 사면四面 방파제의 외로움 같은 것.나의 현재는 당신보다 먼저 살기 위해 쓰여지는 편지다. 네가 살아있는 한 나는 죽어서도 깃들지 못할 넋들의 비유. 흐르는 시간 속으로 나를 띄우는 당신의 어린 손을 본다. 바다가 멎는다. 흐르지 않는 미래 속에 당신은 이제 없다
---「Queen of diamonds」중에서

누나 나는 내가 작년 겨울에 죽을 줄 알았어 거꾸로 들린 고개를 벽장에 여러 번 처박고 가족의 얼굴도 잊은 채 나 이제 그만 죽어도 되지 않을까 수십 번 고민하고 겁에 질린 패잔병의 몸짓으로 안절부절못하다가 신경안정제 항우울제 감정 조절제 뭐 기타 등등 이름도 외우기 힘든 약들 한꺼번에 일곱 알을 불 꺼진 입속으로 털어 넣고 먹은 것도 없이 잿더미로 수북한 검게 그을린 위장을 달고 다시 울분의 힘으로 시를 쓰던 내가 이제는 약 없이도 잠에 들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아침마다 출근을 해 웃기다 그치 내가 살았던 오늘 하루는 눈 딱 감고 죽지 못했던 작년의 그 두려운 마음과 또는 모종의 망설임이 만든 거겠지 아님 제대로 된 시 한 편 쓰지 못했다는 갈 데까지 간 어느 시인들을 향한 동경이었는지도 모르지 아무렴 어때 살아있으면 됐지 그래도 가끔은 죽고 싶은 맘도 더러 드는 거지 새벽마다 목 조르던 그 빌어먹을 자생적 우울과는 무관하게 차라리 위악이나 실컷 떨어볼 걸 그랬나 봐 어디서 위애僞哀 라는 질 좋은 발음 하나 구해와서는

오늘도 나는 너무 많은 곳에 지문을 남겼다 피아노 건반 위를 흐르던 연습실과 박정대 시집을 펼쳐보던 6호선 개찰구 너머에도 내 무덤을 세우고 말았어 내가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곳들이 손쉽게 장지葬地로 굽어지고 있었으니 나는 이제 어디서든 죽을 수 있겠지 누나 누나는 나 죽이고 싶지 않아? 때가 오면 같이 죽자고 해놓고 난 아직 안 죽었잖아 그래도 누나는 나보다 어른이었으니까 잘 알겠지 누나도 결국 무수한 나의 이름들 그 중 하나였다는 거 더 이상 사랑하지도 그립지도 않은 누나가 오로지 한 줄의 문장으로 소비되기 위해 내 흉 걸린 손목 속에 영원으로 살고 있다는 거 이해하지 죽어서도 뜬 눈일 수밖에 없다는 거 단지 나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에
---「0/1」중에서

살아간다는 게 독한 술을 마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설탕을 태워보는 것으로 가끔 쓴맛을 잊기도 하지만 결국 알량함으론 좀처럼 가려지지 않는 본질 앞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얼음 하나 띄웠을 뿐인데 병 속에서 웅크리던 날들과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다. 내가 무슨 수로 다시 태어나겠는가. 삶은 주고받는 주문처럼 간단하지 않다. 지독한 날들이었지만 어떤 것과도 섞을 수 없었다. 투명이 침범한 시대는 더 이상 극적이지 않았으므로.

고개를 기울이면 세상도 기운다. 그렇게 기울어진 채로 시 썼다. 평탄한 길도 오르막으로 걸어야 했다. 경사를 통해 쉽게 미끄러지던 건 못다 전한 슬픔이었을 뿐. 어두운 이면지를 붙잡고 울기만 하던 날들이었다. 그렇게 한 여름의 귀퉁이에 그을음을 남겼다.

일 년도 더 된 일이다. 시간은 많이 흘렀는데, 이제는 고개를 기울이지 않아도 저절로 기우는 시간 속이다. 전송과 수취가 모두 내 앞으로 되어 있으니 나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어디에 주저앉아, 무엇을 위해 희망을 망설여야 하는가. 내 속성은 여태껏 불분명했다. 술 마시지 않아도 취객의 비틀거림으로 아스팔트 위를 흘러왔다. 살아서는 깨지 못할 긴 숙취 속에서 또다시 술병을 열고 마는 것. 시 쓰는 여생이 중독자의 시한부 인생과 다를 바 없다.
---「(ab)생트」중에서

옆 테이블에서는 교리를 따르는 청년들의 간증이 계속됐다. 주관을 초월한 어느 거대한 힘이 지탱하는 삶을 마주할 때마다 문득 생의 바깥으로 바람이 불었다. 나는 소외를 느낀다, 종種을 달리하게 된 생물처럼 어깻죽지가 간지럽기 시작한다. 혐오와 선망. 그 자리에서 나는 두 가지의 쓴맛을 본다.

나를 구속하지 마. 사랑보다 숨 막히는 족쇄는 없다. 아가페니 뭐니 떠들어도 결국 삶 한복판에 자리 잡은 불치의 종양일 뿐. 나 아닌 그 어떤 것에도 감응하는 법 없기로 했으니 이제 옆 테이블의 소란은 마냥 유쾌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홀로 끼니를 때우는 저녁이면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어떤 슬픔 앞에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아침마다 싸구려 캔커피와 함께 털어 넣는, 반쯤 녹은 초코바처럼 흐물거리는 마음으로. 삶과의 체위를 고쳐먹을 때마다 습관처럼 삼키던 진통제 두 알이 가장 간편하고 매력적인 현대식 요깃거리다. 위산과 혀를 섞던 아세트아미노펜처럼 불투명한 날들. 스스로를 향한 연민과 슬픔이 지탱하는 삶. 체념만이 허락된 생애는 더 이상 미래로 통하는 문이 아니었다.

떠들썩하던 고백의 입술들이 점차 굳게 닫히기 시작한다. 신앙 바깥으로 흐르는 긴 침묵 속에서 삶의 좌표가 온통 어지럽다. 지도에서 내 위치가 사라지고 있다. 나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이곳이 소돔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란 말인가.
---「워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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