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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꽃들의 귀환

숨은 꽃들의 귀환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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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0월 3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460쪽 | 568g | 140*198*27mm
ISBN13 9791190526241
ISBN10 119052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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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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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준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이렇듯 심각한 것이 될 수 없었다. 그는 또한 내세를 믿는 영혼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육체의 기능으로써의 정신을 믿는 정신과 의사로서 주어진 현실에만 충실하려고 애썼다. 그에게 있어서 삶은 열심히 살아야 할 대상이지 회의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현실적 상황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한 사내의 죽음이 그의 무디어진 감성을 자극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어쩌면 자신이 지금 무허가 싸구려 의약품 사건으로 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탓에 심경이 다소 나약해진 것인지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신의 오후」중에서

처선도 알고 있다. 이렇게 더럽고 인간답지 못하게 살기보다는 차라리 떳떳하게 죽는 편이 마음 편하리라는 것을. 그러나 사람의 목숨만큼 더럽고 간사한 것이 있을까. 얽히고설킨 인간의 연을 그렇게 쉽게는 끊을 수가 없었다. 끊어지지가 않았다. 처선으로서는 연산주가 하는 일을 지켜보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무간지옥에서의 고통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김처선전」중에서

“희망요? 그렇지요, 우리들에게 언제나 희망이 없었던 건 아니지요….” 주 여사의 입가에 냉소가 흐르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향한 반문이기나 하듯이 물었다. “희망을 갖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그야 저도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지요. 그러나 살인죄를 저지른 자는 몇 년 살고 나오면 그만이지만 총 맞아 죽은 사람은 어떡하지요? 경제 범죄를 저지른 자들도 몇 년 감옥에 들어가 꾹 참고 있다가 나오면 온갖 나쁜 짓을 해서 벌어 챙겨 놓았던 돈을 가지고 평생 떵떵거리며 잘 사는 현실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희망은 어떤 것이지요? 좋아요, 그건 그렇다 쳐요! 제 자신이 그렇게 국가의 앞날을 심각하게 걱정하는 애국자가 못 된다는 걸 잘 아니까요. 평범한 한 사람의 여자로서 아내로서 제가 소망하는 것은 그렇게 엄청난 것이 아니에요. 제 가정을 온전히 지키고 싶은 거예요. 남편이 다시 옛날의 건강한 남편으로 돌아 갈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남편과 제가 겪은 고통의 세월은 설명하기 어려워요.”

“이해할만 합니다.” “이해하신다구요? 겪는 저 자신도 잘 이해가 안 되는 악몽이었어요. 남편이 며칠인가 어딘가에 갔다 오고 나서 사람이 그렇게 달라질 수가 없었어요. 남편은 아주 말이 없어져버렸어요. 사람의 감정을 짜내는 기계가 있다면 남편은 그 기계에 감정의 한 방울까지도 다 짜내지고 난 깻묵 같았어요. 남편은 말이 없어지고 사람들을 멀리 하더니… 아니, 사람들이 남편을 멀리하기 시작했지요. 남편은 절대 고독 속에서 점점 낯선 사람이 되어갔어요. 학교도 그만 두고 자기만의 단단한 껍질 속으로 들어가더니 거기서 거대한 분노를 만들어가지고 나오더군요. 그 분노는 저의 분노와 슬픔을 더욱 상승시켜 놓았어요. 우선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남편은 그 와중에도 무슨 일이고 돈 버는 일을 해보려고 했지만 부질없는 노력이었어요. 먹고 사는 거 그거 별거 아니다 싶어 제가 이 장사를 시작했지요. 그런데 남편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거예요. 아무래도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할 거 같아요.”
---「그 여자의 겨울」중에서

“아무리 여러 번 생각해 봐도 씨잘 데 없는 짓거리야! 학문이랍시고 허섭쓰레기 같은 씨잘 데 웁는 지식을 걸탐해봐았자, 망상만 지을 뿐이지! 그라고, 시방 경제개혁 오개년 계획이다, 새마을운동이다, 배때기 불리는 일에만 오줌똥 안 가리구 난리들인디. 앞으루 두고 보라고 사람 살 만한 시상이 되능가. 오늘 아침 신문을 봉께, 숙직을 하구 유신 궐기대회에 참석하지 않은 선생님이 긴급조치 일호를 위반했다고 파직을 당하고, 일 년 육 개월씩이나 형을 살게 되구… 얼마 전에는 중학교 윤리 선생님이 체육관 대통령을 뽑는 제도에 대해 바른 말을 하다가 제자가 고자질을 하여 형을 살게 되구. 지식인이라는 것들은 곡학아세하여 권력의 주구노릇을 하기에 혈안이 되야 있고… 것도 그렇지만, 시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은 지금 아는 것만 해도 충분한 것인 게로 나는 이만 하산할라네. 자네들이나 풍진 세상에서 많이 배워 대성들 하시게!”

나는 누구보다도 그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은 나도 대학생활에 많은 회의와 갈등을 겪고 있던 중이었다. 특히 내가 화려하게 꿈꾸어왔던 문학에 대해서 깊은 회의에 빠져들었다. 문학은 당시 내가 꿈꾸었던 것과 달리 그렇게 화려한 것이 아니었다. 남의 집 단칸 셋방을 전전하며 동생들의 학업을 희생시켜가면서 나에게 기대를 모으고 있는 가족들의 염원에 다소라도 부응하기에는 문학은 너무나 나약한 것이었다. 매일이다시피 찾아와서 술이나 먹어가며 생활의 쇠사슬에 묶여 신음하고 있는 저 촉망받는다는 선배 시인이나 작가들… 그것이 그대로 나의 모습이 된다는 것은 솔직히 찬성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강의실의 찬 바닥에서 도둑잠을 자며, 이 원의 버스표 값이 없어서 매일 시오리의 서울 길을 걸어다니며 내가 체득한 것은 생활과의 간교한 타협이었다. 나는 나의 생활의 뒷다리에 살이 오를 때까지 잠시 문학과 결별하고 언제고 때가 오면 다시 문학과 뜨거운 해후를 해야겠다고 내심 갈등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모든 것이 생경하기만 한 서울 생활에 부대끼고 가치관에 혼란을 일으키면서 진지하게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동안, 허무주의에 발목이 잡혀 점점 권태의 수렁에 깊이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매사가 부질없고 시시하다는 생각. 그것은 어쩌면 음영의 비율만 다를 뿐, 조영호의 생각과 동색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곁에 살다 간 나옹 선사」중에서

신경정신과라니. 아니, 내가? 춘일은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상식으로 정신병은 소심하거나 신경이 날카로워 사소한 일에도 과민 반응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스트레스가 쌓여 발병하거나, 그도 아니면 교통사고 같은 돌발사고로 뇌의 손상을 입어서 생기는 정신질환이다. 아무리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점검하고 자신의 성격을 자가진단 해보아도 무엇 하나 그런 사항에 근접해 있는 게 없다. 그는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의지도 강한 편이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세상에 부대끼면서 칠십의 나이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존경까지는 몰라도 모범적인 교사로서, 남편으로서, 2남 1녀의 아버지로서 자식들을 모두 잘 키워 남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다. 평균치의 무난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만하다. 부부관계도 세상이 요지경 속으로 변하여 황혼 이혼과 졸혼이 유행처럼 만연하는 세상에서, 그의 신혼열차는 부속이 낡아 가끔 덜컹거리기는 해도 종착역까지의 운행은 무난할 것 같다.
---「출구 없는 비상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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