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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한 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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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1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448쪽 | 658g | 152*224*30mm
ISBN13 9791185393872
ISBN10 118539387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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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에이다는 잔다이스 선생을 한 번도 못 봤어요. 어릴 적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잔다이스 선생 이야기를 하실 때, 고결하고 관대한 성품이라면서 두 눈에 흘리던 눈물을, 세상에서 누구보다 믿음직한 사람이라고 하신 말씀을 에이다는 똑똑히 기억하고 믿었어요. 잔다이스 선생은 몇 개월 전에 에이다에게 “소박하고 솔직한 편지”를 보내서 우리가 이제 막 새롭게 시작할 생활을 제안하며 “함께 지내다 보면 비참한 대법원 소송으로 받은 상처도 대체로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어요. 에이다는 답장을 보내서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이고요. 리처드도 비슷한 편지를 받고 비슷한 답장을 보낸 거예요. 잔다이스 선생을 만나긴 했지만, 5년 전에 윈체스터 학교에서 딱 한 번 만난 게 전부였어요. 그래서 벽난로 앞 차단막에 기댄 두 사람을 제가 처음 봤을 때, 리처드는 에이다에게 잔다이스 선생을 “솔직하고 낙천적인 사람”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는 거예요. 이게 에이다가 저한테 알려줄 수 있는 전부였어요.

“집주인, 크룩. 마을 사람 사이에서는 대법관이라 불린다오. 고물상은 대법정이고. 괴짜거든. 아주 괴팍해. 아,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저 노인은 정말 괴팍하다오! ” 노파는 고개를 젓고 손가락으로 자기 이마를 톡톡 치면서 우리 모두 노인을 이해해야 한다는 표정으로 “저 노인은 여기가……약간 돌았거든……머리가!”라고 엄숙하게 말하니, 노인이 엿듣다 웃고는 등잔을 들어서 우리를 안내하며 말했어요. “마을 사람들이 나를 대법관이라 부르고, 내 가게를 대법정이라고 한다는 말은 정말이라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나를 대법관이라 부르고 내 가게를 대법정이라 부르는 이유를 아시오?”

-“톰 잔다이스가 자살한 날에 바로 저 문으로 들어왔다오. 결국엔 자살할 게 분명하다고 마을 사람 전체가 몇 달 전부터 염려하던 참에, 바로 그날 저 문으로 들어와서 쭉 걸어와, 저기에 있는 벤치에 털썩 앉더니 포도주 한 병만 사다 달라고 했다오. (당시에는 내가 훨씬 젊었다오.) ‘왜냐하면, 크룩, 지금 나는 기운이 하나도 없거든. 소송이 또 잡혔는데 이번에는 판결이 나올 것 같아’라면서 말이오. 나는 톰 잔다이스를 혼자 놔둘 수 없었다오. 그래서 길 건너 (대법정 거리를 말하는 건데) 선술집으로 가도록 설득했다오. 그리곤 뒤쫓아가다 선술집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벽난로 옆 안락의자에 편히 앉은 데다 술친구까지 있더라고. 그래서 여기로 돌아오자마자, 법학원 건물을 울리는 총소리가 일어났다오. 나는 당장 달려가고, 스무 명이나 되는 마을 사람도 동시에 ‘톰 잔다이스!’라고 소리치며 달려왔다오.”

-하녀장이 목소리를 떨어뜨려서 나지막이 속삭이듯 이어나간다. “원래는 몸매가 좋고 풍채가 당당했거든. 그런데도 불평 한마디 안 했어. 다리를 전다는 말이나 아프다는 얘기 역시 누구한테도 하지 않았어. 그러면서도 테라스를 매일 걸었어, 지팡이를 짚기도 하고 석제 난간을 잡기도 하면서 오르내리고 또 오르내리고 또 오르내렸어, 비가 오나 해가 뜨나, 매일 엄청 힘겹게. 어느 날 오후에 남편은 남쪽 커다란 창문 앞에 서 있다, (그날 밤 이후로 아무리 설득해도 입 한번 안 열던) 부인이 테라스에서 쓰러지는 광경을 봤어. 급히 내려가서 일으키려 했지만, 부인은 자신한테 상체를 숙이는 남편조차 거부하고 차가운 눈으로 뚫어지라 쳐다보며 말했어. ‘나는 매일 걸어 다니던 이 자리에서 죽겠어. 그리고 무덤에 들어가서도 여기를 걸어 다니겠어. 가문의 자부심이 무너질 때까지 걸어 다니겠어. 이 가문에 불행이 달려들 때마다, 불명예가 몰려들 때마다, 내 발소리를 들려주겠어!’”

와트가 쳐다보니, 로사는 무섭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숙인다. “귀부인은 그때 그 자리에서 죽었어. 그날 이후로 유령길이란 이름이 내려오는 거야. 발을 내딛는 소리가 메아리라면, 그 메아리는 어둠이 깔린 다음에 비로소 들리는데, 오랫동안 안 들리기도 해. 그러다 다시 나타나. 누가 아프거나 죽을 때면 더더욱 확실히.”

-“우리 아이들은 아침 여섯 시 반에 나랑 교회에 간답니다. 한겨울을 포함해서 일 년 열두 달을 안 빠지고요. 그 뒤로 온종일 나랑 다닌답니다. 나는 학교 위원회 위원이고, 가정방문 위원회 위원이고, 독서 위원회 위원이고, 배급위원회 위원이며, 지역 차원에서는 아마포 상자 위원회를 비롯한 다양한 위원회에 참가하며, 유세하는 지역도 아주 넓답니다……나보다 넓은 지역을 유세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요. 하지만 어디를 가든 우리 아이들도 함께 가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지식과 자선사업 일반에 대한 능력을 - 한마디로, 그런 일에 대한 취향을 - 갖추니, 나중에 이웃에게 봉사하면서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거지요. 우리 아이들은 경솔하지 않아요. 용돈을 전부 기부하거든요, 내 감독 아래. 게다가 다 자란 어른도 힘들 정도로 많은 공공집회에 참석하고 많은 강연과 연설과 토론을 듣거든요. ‘기쁜 유년단’에 자발적으로 입단했다는 다섯 살짜리 알프레드는 의장님이 두 시간이나 열정적으로 연설한 다음까지 정신을 안 잃은 몇 안 되는 아이 가운데 하나랍니다.”

-교구 관리는 크룩 고물상으로 극빈자를 여러 명 데려와서 ‘친애하는 우리 형제’ 시신을 싣고 좁디좁은 교회 공동묘지로 데려가는데, 이곳이야말로 온갖 병균이 창궐해서 세상에 남은 ‘친애하는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사악한 질병을 옮기는 곳이나, ‘친애하는 우리 형제자매들’은 계단 주변에서 어슬렁댈 뿐, 하늘나라로 가는 건 훨씬 나중 일이라, 하나같이 상냥하고 즐거운 표정이다. 사람들은 ‘친애하는 우리 형제’를 기독교식으로 매장하려고 여기까지 데려와서 더없이 더럽고 좁은 땅뙈기 속에 넣으니, 그 땅은 터키인도 야만적이고 역겹다며 거부하고 아프리카 원주민도 몸서리칠 정도로 더러운 땅이 아닐 수 없구나!

철문에서 오솔길 양쪽으로 쭉 늘어선 묘지가 악취를 풍기고, 살아서 극악한 행위는 죽어서 묻히지만 죽어서 가득한 병균은 살아서 창궐하고, ‘친애하는 우리 형제’는 땅속 3~40㎝ 깊이에 썩을 몸으로 묻혀서 썩을 몸으로 다시 살아나니, 아픈 사람 머리맡에는 죽음의 사신이 가득하고, 오만한 섬나라에는 문명이 야만과 손잡은 부끄러운 증거로 가득하구나. 밤이여 오라, 어둠이여 오라, 너희는 이런 곳에 일찍 와서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괜찮으니! 흔들리는 불빛이여, 추악한 묘지 건물 창문으로 들어가라, 안에는 추악한 짓이 가득해도 밖으로 끔찍하게 흘러나오진 않으니! 가스등이여, 철문 위로 음산하게 타올라라, 감염된 공기가 끈적끈적한 연고처럼 쌓일지니! 그래서 사람이 지날 때마다 “여길 보라”고 소리칠 테니!

-정말이지, 그것 때문에 얼마나 불편했는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머리칼이라도 단정하게 빗고 목깃을 세웠어도 섬뜩할 텐데, 상대가 그토록 멍청한 모습으로 쳐다본다는 사실이, 그것도 언제나 힘이 쭉 빠진 모습으로 쳐다본다는 사실이 더없이 거북해, 연극을 보면서 웃고 싶지도, 울고 싶지도, 움직이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 무엇도 자연스럽지 않았어요. 박스석 뒷좌석으로 가서 거피를 피하는 방법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어요. 리처드와 에이다가 저를 바로 옆에 두어야 안심하고 대화를 즐기는데, 행여나 제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는다면 결코 못 그럴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대로 앉아, 제가 어디를 쳐다보든 거피 역시 제 시선을 쫓아올 게 분명한 터라, 어디를 쳐다볼지도 모른 채, 젊은 사람이 나 때문에 돈을 끔찍하게 많이 쓴다는 생각만 했어요.

거피는 놀라운 인내심을 발휘해, 우리가 들어가는 극장마다 꼭 나타날 뿐 아니라 우리가 나갈 때 인파 사이에서 나타나는 건 물론, 우리 마차 뒤에 올라타기조차 했어요. 사람들이 공짜로 못 올라타도록 섬뜩하게 박아놓은 꼬챙이 사이에서 힘겨워하는 모습을 두세 차례 보았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하숙집에 들어간 다음에는 길 맞은편 기둥에 달라붙었어요. 우리가 묵는 가구점 건물은 두 거리가 만나는 모서리고 제 침실 창문은 기둥 맞은편이라, 행여나 (달빛이 환한 어느 날 밤에 목격한 것처럼) 기둥에 기대서 감기에 걸릴 수밖에 없는 거피랑 마주칠까 두려워서 감히 내 방 창가로 다가갈 수도 없었어요. 낮에는 거피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스러울 뿐이었어요. 그렇지 않다면 한시도 마음 편히 못 쉴 테니까요.

-“잔다이스 선생, 내 사건을 들어보세요. 하늘이 내려다보니 솔직하게 말하리다. 나는 동생이 하나 있어요. 농사짓던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 어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 농장과 가축 모두를 맡으시라고, 그러다 돌아가시면 나한테 물려주고 둘째한테 300파운드를 떼어주라고 유언하셨답니다. 결국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동생은 얼마 뒤에 유산을 요구했고요. 그런데 나를 비롯한 친척들은 동생이 그동안 쓴 비용에 먹고 잔 비용까지 합치면 유산을 이미 받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어요. 잘 들으세요! 바로 이게 문제였어요, 다른 게 아니라. 유언 자체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어요. 딱 하나, 300파운드를 이미 지급했느냐 아니냐만 문제 삼았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동생은 소송을 걸고, 나는 저주받은 대법정에 출두했어요. 내가 출두한 건 법이 다른 곳으로 못 가게 강제했기 때문이에요. 소송은 간단한데, 피고가 열일곱 명이나 나왔어요!

첫 재판은 2년이 지난 다음에 열렸어요. 그러다 2년 동안 재판을 중단했는데, 그 사이에 법원 주사 놈이 (이놈 머리가 썩어 문드러지길!) 나한테 우리 아버지 아들이냐고 물었어요. 이런 논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그러더니 피고가 부족하다고 - 열일곱 명이나 되는데도요! - 빠뜨린 사람이 최소한 한 명은 있을 거라고, 그 사람을 찾아서 재판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즈음에 재판 비용이 -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 유산의 세 배였어요. 동생도 턱없이 큰 비용을 피할 수만 있다면 재판을 기꺼이 포기했을 거예요. 아버지가 유언으로 남긴 재산은 그 비용으로 모두 사라졌어요. 재판은 미해결 상태로 다른 모든 것과 함께 창고로 들어가서 썩어 문드러지고 - 나는 오늘 여기에 이렇게 있답니다! 자, 잔다이스 선생, 귀하 소송에는 수천 명이 관여한 반면, 내 소송에는 수백 명이 관여했어요. 그렇다면 내 소송은 그만큼 견디기 쉽고 선생네 소송은 그만큼 견디기 힘들까요, 내 삶이 여기에 모두 달렸는데, 그래서 모조리 빨려 나갔는데?”

-스몰위드 할아버지가 그 즉시 방석을 던지며 소리친다. “빌어먹을 것아, 조용해!” 갑자기 내던진 방석은 두 가지 결과로 나타난다. 스몰위드 할머니는 머리가 문지기용 의자 옆면으로 꼬꾸라져서 손녀딸이 제대로 앉혀줄 때까지 이상하게 처박히고, 스몰위드 할아버지 자신은 방석을 던진 반동에 뒤로 벌러덩 나뒹구는 모습이 줄 끊어진 꼭두각시 같다. 이럴 때면 훌륭한 할아버지는 세탁물 주머니에 까만 해골을 올려놓은 형상이니, 손녀딸이 두 손으로 커다란 병처럼 붙잡고 흔들면서 덧베개처럼 손으로 찌르고 때리는 과정을 겪은 다음에 비로소 만화처럼 우스꽝스러운 형상에서 벗어난다. 그러면 목이 제대로 돌아오는 징후가 나타나고, 황혼기를 맞이한 동반자와 함께 문지기용 의자에 앉아서 서로를 마주 보니, 죽음을 알리는 저승사자가 보초 한 쌍을 세워놓고 오래전에 깜빡 잊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주디는 인형을 가져본 적도, 신데렐라를 들어본 적도, 어떤 놀이를 해본 적도 없다. 열 살 즈음에 동네 아이들과 한두 차례 어울렸는데, 아이들은 주디와 가까워질 수 없고 주디는 아이들과 가까워질 수 없었다. 인간과 종이 다른 동물 같아, 양측은 서로를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주디가 웃는 법을 아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누가 웃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모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젊은이처럼 싱그럽게 웃는다는 개념은 생각조차 못 할 게 분명하다. 행여나 웃으려 하다가는 이빨이 묘하게 갈리는 게 전부니, 무의식적으로 다양한 표정을 흉내 낼 때 그런 것처럼 웃는 동작을 흉내 내려 하다가는 얼굴에 추악한 노파 형상만 떠오른다. 바로 이게 주디다.

쌍둥이 남동생 역시 인생의 최고봉을 즐길 순 없었다. ‘거인을 죽인 잭’이나 ‘신드바드의 모험’을 외계인 이야기 이상으로 모른다. 개구리 놀이나 귀뚜라미 놀이 역시 자신이 개구리나 귀뚜라미로 변신한 적이 없는 만큼이나 해본 적이 없다. 쌍둥이 누이보다 다행스러운 점은 좁디좁은 세상에서 훨씬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기회가 생긴 데다 거피에게 인정까지 받는다는 사실이니, 화려한 마법사를 숭배하고 흉내 내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거피는 친구가 감언이설에 더는 안 넘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흔히 악용하던 수법대로 친구를 나무라기 시작한다. “위블, 울적한 기분은 충분히 이해해, 그 느낌이 어떤지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나는 짝사랑하는 상대를 가슴에 새긴 채 애달파 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아무런 죄도 없이 분풀이 당하는 데도 한계는 있다고. 분명히 말하는데, 위블, 나는 네가 지금 보여주는 자세는 사람을 반기는 자세도 아니고 신사다운 자세도 아니라고 생각해.” “반발이 강하군, 거피.”“그럴지 모르지만, 내가 이렇게 반발할 때는 기분이 안 좋은 거야.” 거피가 반박하자 위블은 잘못을 인정하고,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하자고 사정한다. 하지만 거피로서는 우위를 차지한 김에 조금 더 몰아치지 않을 수 없다.

-“위블, 그 부분은 명예로운 자네 친구한테 맡기라고. 게다가 이번 일은 마음속에 아픔을 - 지금 언급해서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아픔을 - 담고 사는 자네 친구한테 도움이 되는 일이야. 자네 친구는 바보가 아니잖아. 저게 무슨 소리지?”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열한 시를 알리는 소리. 잘 들어보면 런던 전역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전부 들릴 거야.” 두 친구는 가만히 앉아, 가까이서 멀리서, 높이가 다양한 종탑에서 다양하게 울리는 금속성 소리를 듣는다. 그러다 마침내 멈추자, 모든 게 훨씬 이상하고 고요한 느낌이다. 조그맣게 속삭이다 보면 유난히 나쁜 것 하나는 분위기가 조용하게 변하면서 - 이상하게 삐걱대는 소리와 똑딱이는 소리, 아무런 형체도 감싸지 않은 의상이 부스럭대는 소리, 모래사장이나 겨울철 하얀 눈에 아무런 흔적도 안 남길 것 같은 섬뜩한 발소리 등 - 유령 소리 같은 게 툭하면 일어난다는 점이다. 두 친구는 너무나 민감한 나머지 공중에 유령이 가득하다 느끼고 동시에 어깨너머로 돌아보아서 문이 닫힌 걸 확인한다. 거피는 엄지손톱을 초조하게 깨물며 벽난로 앞으로 다가가서 묻는다.

-“에스더 아가씨가 잔다이스 선생님께 가기 전에 지내던 마님 집에서 하녀로 일하던 사람을 우연히 만났답니다. 그 마님은 바바리 아씨였고요, 마님.” 귀부인 얼굴이 납빛으로 변한 건 손으로 물끄러미 든 채 까마득히 잊은 녹색 비단 가리개 때문일까, 아니면 갑자기 혈색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마님께서도 바바리 아씨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모르겠어요. 들어본 것도 같군요. 그래요, 들어봤어요.” “바바리 아씨는 마님 친정 쪽과 관련이 있나요?” 귀부인이 입술을 움직이지만 아무런 소리도 안 나온다. 그래서 고개를 젓는다. “관련이 없다고요? 아! 마님께서 모르시는 건 아니고요? 아! 하지만 가능성은 있겠지요? 그렇죠?” 거피가 계속 심문하자 귀부인은 고개를 숙인다. “좋습니다! 그런데 바바리 아씨는 입이 극도로 무거웠습니다. 여성은 대체로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법인데, 여성치고 유난히 무거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가 만난 증인은 바바리 아씨한테 친척이 있는지조차 모르더군요. 하지만 한 번, 딱 한 번, 제 증인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여자애는 진짜 이름이 에스더 서머슨이 아니라 에스더 호돈이라는 말을 했으니까요.”

“하느님!” 귀부인이 깜짝 놀라고 거피는 물끄러미 쳐다본다. 데드록 귀부인이 앞에 앉아서 멍하니 쳐다보는데, 얼굴이 납빛이다. 가리개를 든 자세도 똑같고 입술도 살짝 벌리고 이마도 살짝 찡그리지만, 순간적으로 죽었다. 거피는 귀부인이 정신을 차리는 걸 보고, 수면에 이는 잔물결처럼 온몸으로 퍼지는 전율을 보고, 입술이 떨리는 걸 보고, 그런 자신을 가다듬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고, 거피가 앞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려, 거피가 한 말을 떠올리려 애쓰는 모습을 본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지나니, 귀부인의 절규와 죽은 상태 역시 오랫동안 보존한 시신이 무덤을 열어서 공기를 쬐는 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지듯 사라지는 것 같다.

-귀부인 손에 제 손수건이, 죽은 아기를 덮어준 손수건이 있는 걸 보았을 때 제 마음이 어땠는지는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저는 귀부인을 쳐다보았지만, 제대로 볼 수도 없고 제대로 들을 수도 없고 숨을 쉴 수도 없었습니다. 심장이 너무 쿵쾅거렸습니다. 생명이 그 자리에서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를 당신 가슴에 꼭 껴안고 뽀뽀하고 흐느껴 울고 불쌍히 여기면서 조그맣게 부를 때, 무릎을 꿇으며 쓰러져서 “아, 우리 아가, 우리 아가, 바로 내가 사악하고 불행한 엄마란다! 아, 제발 나를 용서하렴!”이라고 울부짖을 때, 끝없이 고통스러워하면서 제 발밑 맨땅에 쓰러질 때, 저는 감정이 북받치는 가운데도 얼굴이 변한 게, 얼굴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귀부인을 불명예스럽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에, 저를 보고 귀부인을 보아도 누구도 비슷한 구석을 찾을 수 없게 한 하느님 섭리가 고마웠습니다.

-“나를 받아들이고 축복하다니, 너무 늦었어. 나는 어두운 길을 혼자 걸어야 해, 그 길이 어떤 길이라도. 하루하루, 어떨 때는 매시간, 죄지은 발을 내디딜 길이 안 보이더라도. 그건 내가 이 세상에서 받아야 할 형벌이야. 자업자득. 혼자 견디고, 숨겨야 해.” 자신이 겪을 형벌을 떠올리는 순간조차, 어머니는 주변에 대한 자부심과 냉정한 자세를 습관처럼 드러내다 곧바로 내던졌습니다. “나는 비밀을 지켜야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는 다른 남자와 결혼한, 비열하고 불명예스러운 존재라고!” 좌절을 억누르며 뱉어내는 소리가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보다 끔찍했습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몸을 움츠리는 모습이 제 손길을 피하려는 것 같을 뿐, 아무리 설득하고 사정해도 어머니를 일으켜 세울 순 없었습니다. 어머니 입에서 나온 말은 안 돼, 안 돼, 안 돼가 전부였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자부심과 오만함이 가득할지언정, 모성애라는 자연스러운 감정 앞에서는 죄책감과 부끄러움만 가득했습니다.

어머니는 더없이 불행한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서 미칠 것 같았다. 자신이 낳은 아기가 살았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예전에는 네가 그 아기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너에게 말하려고 여기까지 일부러 내려왔다. 이 순간 이후로 우리는 서로 만날 수도 편지를 주고받을 수도 말을 주고받을 수도 없다. 그러면서 당신 손으로 쓴 편지를 건네셨습니다. 다 읽고 태워라 - 자신은 바라는 게 없으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편과 너를 위해서 - 앞으로 자신을 죽은 사람으로 여겨라. 딸 앞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어머니가 딸을 사랑하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다면, 제발 그렇게 해달라. 희망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다. 죽을 때까지 비밀을 지키든, 도중에 드러나서 자신이 결혼한 가문에 굴욕과 치욕이 되든 혼자 싸워나가야 한다. 누구도 자신을 사랑할 수 없고, 누구도 자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없다.

-바로 옆은 금방 무너질 것 같은 담벼락인데, ‘익사자 안치소’라는 글씨가 벽보에 또렷했어요. 끔찍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어요. 제가 감정에 휩싸여서 수색을 어렵게 하거나 희망을 줄이거나 시간을 질질 끌려고 따라온 건 아니라고 굳이 다짐할 필요는 없었어요. 그래서 조용히 있었지만, 끔찍한 장소에서 겪은 고통은 영원히 못 잊을 거예요. 악몽에 시달리는 느낌이었어요. 보트에 있던 사내가 물에 젖어서 잔뜩 부풀어 오른 신발과 모자 차림으로 불려 나와 버킷 수사관과 속닥이더니, 물기가 축축한 계단을 나란히 내려가는 게…… 무언가 은밀한 대상을 살피려는 것 같았어요. 무언가 축축한 물체를 뒤지더니, 두 사람이 손을 외투에 닦으며 돌아오는데, 다행히도 제가 두려워하던 사태는 아니었어요!

버킷 수사관은 다시 상의하다, 저만 마차에 남겨둔 채, 문가에 있던 (하나같이 버킷 수사관을 알고 존중하는 것 같은) 사람들과 안으로 들어가고, 마부는 몸을 데우려고 마차 주변을 걸어 다녔어요. 물살이 이는 소리로 판단하건대, 밀물이 들어오는 중으로, 강물이 골목 끝에 부닥치면서 잔물결이 마차로 달려드는 소리까지 들렸어요. 수백 시간이 지난 것 같지만 실제로는 15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내내, 저는 어머니가 마차 옆으로 쓸려오는 공포에 끊임없이 시달렸어요.

-저는 이 말 역시 속으로 되풀이했지만, 아무런 의미도 떠올릴 수 없었어요. 죽은 아이 어머니가 바로 앞에, 계단에 쓰러진 모습만 보였어요. 팔 하나로 철문 쇠창살을 휘감고 껴안듯 쓰러진 모습이었어요. 저를 낳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만난 여인이 그렇게 쓰러져 있었어요. 지칠 대로 지친 모습으로 덮은 것 하나 없이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어요. 어머니가 쓴 편지를 가져온 여인이, 어머니가 있는 곳을 알려줄 유일한 여인이, 우리가 그토록 간절하게 찾는 어머니를 구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여인이, 어머니와 관련된 일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여기까지 온 여인이, 제가 더는 다가가서 도울 수 없는 곳으로 떠난 것 같은 여인이, 그런 여인이 눈앞에 쓰러져 있는데, 두 사람이 저를 막았어요!

저는 우드코트 선생 얼굴에 엄숙하면서도 슬픈 표정이 어린 걸 두 눈으로 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었어요. 우드코트 선생이 한 손을 버킷 수사관 가슴에 대고서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었어요. 우드코트 선생이 가만히 서서 무언가를 슬퍼하며 괴로워하는 표정을 두 눈으로 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었어요. 저는 모든 걸 이해할 능력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소리마저 들렸어요. “아가씨를 보내줄까요?” “그러는 게 좋겠어요. 그 손이 제일 먼저 닿는 게 마땅해요. 그 손이 그럴 권리가 우리 손보다 크니까요.” 저는 철문으로 다가가서 웅크리고 앉았어요. 무거운 머리를 들어서 축축하고 기다란 머리칼을 젖히고 얼굴을 돌렸어요. 어머니였어요, 죽어서 차가운.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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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임새가 탄탄하고 완성도가 높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 Stephen King
‘영국 중산층의 애환을 그린 ‘영문학의 백미!’
- 레프 톨스토이
‘황폐한 집’은 찰스 디킨스가 발표한 가장 훌륭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 [Britannica]
작가로서는 ‘황폐한 집’의 문학적 기교에 감탄하고, 평론가로서는 뜨겁게 분노하는 디킨스의 사회의식에 감동한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라, 이 책에는 뜨거운 가슴도 있다.
- [INDEPEN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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