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7월 26일 간도 용정에서 태어났다. 만주의 구산소학교를 졸업하고, 영신소학교에 편입한 후, 1927년 6년제 영신중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에 졸업했다. 중학교 재학중이던 1927년 단편 <적빈>으로 ≪간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했다.
1933년 가을 평양의 예수교회 중앙선도원으로 가, 총무국에서 ≪예수≫지 편집을 하며, 기독교에 관한 글 30여 편을 발표하였다. 1938년 ≪매일신보≫ 장편 현상 모집에 ≪순애보≫를 기고하여 당선되었다. 해방 후에는 김영수·조풍연 등과 함께 출판사 ‘고려문화사’를 차렸고, ≪민성≫ 주간, ≪한성일보≫ 취체역 겸 편집고문, 자유문학가협회 초대 사무국장·중앙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6·25 때 납북 도중 작가 박영준·김용호 등과 탈출한 후 백마고지, 지리산 전투에 종군했다. 1962년 ≪동아일보≫에 소설 ≪여수≫를 연재하던 중, ‘우리나라가 신탁통치를 받았더라면 중립국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언급이 문제 되어 집필을 중단하는 필화사건을 겪었다. 1963년 5월 21일 연탄가스 중독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고생하다가 1966년 4월 7일 밤 세상을 떠났다.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1930년대 후반기 한국문학과 근대성≫과 ≪근대의 첫 경험≫(공저), ≪일제 시기 근대적 일상과 식민지 문화≫(공저)가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소설의 통속성에 대한 연구인 <≪순애보≫에 나타난 관계의 미학으로서의 통속성>, <새로움에 대한 선망과 공포의 불균형-1930년대 통속소설의 한 양상, 방인근의 ≪방랑의 가인≫>, <근대 계몽기 서사의 이국 취향을 통해 본 문화의 재배치 과정> 등과 기행서사에 대한 연구인 <식민지 시대 여행 문화의 향유 실태와 서사적 수용 양상>, <세계의 위계화와 식민지 주민의 자기응시> 등이 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