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법 이론은 공통적으로 다음 두 가지 특성을 공유한다. 바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observation)과 나아가야 할 목표(aspiration)다. 먼저 페미니스트는 현재 남성이 누리는 권력과 특권은 남자들만이 이 세상을 만드는 데 참여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모든 페미니스트 법학자는 남성은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문명의 법을 만드는 데 빠짐없이 참여했다는 (대화 주제로도 다뤄지지 않았지만) 명백한 사실을 재차 강조하면서 미국 역사에서 남자가 만든 법이 남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다음으로 모든 페미니스트는 여성과 남성이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평등의 의미가 무엇이고 어떻게 평등을 달성하는지에 관해 의견을 달리한다.
--- p.28~29, 「1장 페미니스트 법 이론」 중에서
차별을 검토할 때, 페미니스트는 당사자들의 개인사와 사회사, 당사자들 간의 상대적인 인식, 전반적인 맥락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이러한 시각 안에 내포된 것은, 마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씌어 있던 범퍼 스티커처럼, 실제 사람들의 매일의 삶이 중요하다는 신념이다. 마리 마쓰다는 이 아이디어를 포착하여, “누가 아침을 만드는지, 누가 월급을 받는지, 누가 거리에서 캣콜링을 받는지와 같은 ─ 매일의 삶의 모든 경험들은 사회에서 부와 권력의 분배의 일부이다”라고 쓴 바 있다.
--- p.71, 「2장 페미니스트 법학 방법론」 중에서
출산은 배타적으로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경험이지만 육아는 그렇지 않다. 실제로 2010년 기준, 18세 미만의 자녀를 혼자 키우는 한부모의 15%는 남성이었다. 편부가 양육하고 있는 아이들은 건강보험을 보유하고 있을 확률이 더 낮다. 이는 편부가 택할 수 있는 직업 유형 때문이기도 하고, 편부를 대상으로 한 건강 교육 자료 프로그램이 더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미국 내 2백만 명 이상의 아동들을 편부 또는 남·남 커플이 양육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별에 기한 노동시장이 대체로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나 일부 “엄마와 같은” 역할을 하는 남성들 또한 고용 불평등과 저임금으로 인해 곤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편부 사회운동가인 브라이언 테슬러는 미국공영라디오(NPR)와의 인터뷰를 통해 “편부들은 편모와 마찬가지로 차별을 직면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직장 내 차별도 포함된다”고 언급했다. 또한 그는 “엄마가 회사 내에서 회의에 참석 중이다가 갑자기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게 되면 아무도 놀라지 않지만 … 남성이 이러한 전화를 받고 자리를 뜨게 되면 사람들은 이내 ‘당신 부인은 어디 있는 거요?’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p.90~91, 「3장 직장, 임금, 그리고 복지」 중에서
1868년까지 여성은 어떤 로스쿨에도 입학할 수 없었고, 그 이후로 반세기 동안 일 년에 한두 명 입학하는 꼴이었다. 컬럼비아나 듀크 같은 명문 로스쿨은 1920년 후반, 하버드는 1950년, 노틀담은 1969년이었고, 버지니아는 1970년에야 여성 입학을 허용했다. 1972년 마지막 남자 로스쿨이던 워싱턴 & 리 로스쿨마저 공학으로 전환했다. 입학이 허용된 다음에도 1970년대까지 여성 등록률은 3%에 지나지 않았고, 학교 안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하버드를 포함한 일부 로스쿨의 교수들은 여학생들에게 수업 중 지정 질문을 일절 하지 않다가 봄 무렵 “숙녀의 날”이 도래하면 이날에는 여학생들에게만 괴팍한 질문을 던지는 식이었다. 1968년 한 로스쿨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실려 있었다. “어쨌든 모든 토지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소유의 대상이다.”
--- p.134~135, 「4장 교육과 스포츠」 중에서
동성 커플과 이성 커플 간 동등한 대우를 강조하는 동성 결혼 옹호 캠페인은 1970년대의 여권신장운동, 1950, 1960년대의 시민권 운동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캠페인 지지자들은 평등원칙을 강조하며 동성과 이성 커플의 동질성에 초점을 맞춘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안정성, 가족, 반려 관계 등 본질적으로 동일한 대상을 원한다면 결혼이란 울타리 안에 동성 커플이 포함된다고 해서 이성애자들에게 어떤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인종 간 결혼을 허용했지만 결혼 제도에 큰 변화가 없었듯 동성 결혼을 허용해도 결혼 제도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동등한 대우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초기 고용 차별 사건에서 여성은 그 직업의 본질을 바꾸겠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직업을 얻고 싶은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일부 페미니스트는 동성 결혼 속에는 더 급진적인 폭발력이 있다고 본다. 조지타운 대학교의 법학 교수인 낸 헌터(Nan Hunter)는 동성 결혼이 “같은 사회적 지위에 속한 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관계로서 결혼”을 제시하기 때문에 “결혼의 문화적 의미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릴 수 있다”며 그 지지를 밝힌다. 헌터는 동성 파트너들은 상대적으로 지배 및 종속 관계를 전제로 한 성적 역할을 답습할 확률이 적기 때문에 동성 결혼이 더 자유로운 미래 사회상에 가깝다고 본다. 동등한 대우 관점과 달리 헌터는 동성 결혼이 결혼 제도에 대한 과감하고 새로운 개혁을 일으킬 가능성을 암시한다.
--- p.242, 「6장 결혼과 가족」 중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행위(특히 친밀한 파트너에 의해 저질러지는 행위)와 형사처벌 사이의 놀라운 격차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회적 고정관념에서부터 성의 없는 기소까지, 많은 요소들이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기초를 마련한 것은 역사다. 초기 영미법은 여성을 아버지나 남편의 재산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이방인에 의한 강간은 여성에 대한 범죄라기보다는 “‘남성의 남성에 대한 재산죄’”로 간주되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강간당하면, 그 행위는 그녀의 장래 결혼 가치를 파괴한 것이었고, 결혼한 여성이 강간당하면, 그것은 그녀의 남편에게 불명예를 가져다주었다. 강간 법률에서 여성은 본질적으로 제3자였다. 남성은 그들의 소유물, 또는 “동산”을 그들이 원하는 거의 어떤 방식으로든 취급할 수 있었고, 바로 이런 이유로 남편의 아내 강간은 죄가 될 수 없었다. “징벌” 법리(doctrine of “chastisement”)는 심지어 아내가 순종하도록 남편이 아내를 ─ “적당히”(in “moderation”) ─ 때리는 것을 허용했다. 19세기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부정의를 개선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결혼한 여성의 재산에 관한 법률’은 여성들에게 ─ 계약을 체결하고 재산을 소유하는 것과 같은 ─ 몇몇 권리를 부여하면서도 부부 강간과 징벌 법리에 의한 면책은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법원 또한 이를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 p.256~257, 「7장 섹스와 폭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