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울린다. 발신자 표시에 뜬 ‘엄마’라는 단어에 당황하다가 이내 상황판단을 한다. 엄마! 우리 엄마! 돌아가신 지 어언 육 년이 되어버린 엄마가 가끔 내 휴대폰으로 찾아와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그럴 리가? 실은 생전의 엄마 휴대폰 번호를 그대로 사용하는 우리 올케한테서 온 전화다. 엄마는 돌아가셨지만 나는 휴대폰 연락처에서 엄마라는 단어를 지우기 싫어 그냥 두었고, 어쩌다 걸려오는 올케의 전화에 나는 아직도 목이 멘다. 영문을 모르는 올케는 첫마디로 매번 “형님, 어디 아프세요?”라고 묻는다.
부모님 살아생전, 힘에 부치는 농사일을 그만두라는 자식들 말에, 엄마는 죽으면 썩을 몸 아껴서 뭐 하냐는 대답이셨다. 연로하신 두 분이 걱정된 우리 육 남매는 자주 찾아뵙는 수고를 덜려고 두 분께 휴대전화를 장만해 드렸다.
나는 엄마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한 기억이 없다. 엄마한테 전화를 거는 시간이 내가 한가한 아침이나 저녁 시간이다 보니, 그 시각이면 엄마도 집에 계실 때라 굳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엄마한테 휴대폰을 장만해 드렸던 이유는 논밭에 나가 일을 할 때나 외출해서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연락하시라고 사 드렸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한 번도 휴대폰의 용도에 맞는 시간대에 전화를 걸어 엄마의 안부를 물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언젠가 급한 일이 있어 폰으로 엄마를 찾았는데 불통이었다. 그제야 나는 엄마의 휴대폰은 오래전에 주인으로부터 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찾는 이 없는 전화기를 들고 다닐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그러고 보니 한 달에 서너 번 정도, 내 달콤한 새벽잠을 깨우던 신원 미상의 할머니 전화가 끊긴 지도 한참 되었다. 전화벨 소리에 수화기를 들면 한결같이 들려오는 첫마디는 “절믄이가?”였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로 짐작건대 칠팔십 대 할머니 같았다. 낯선 사람의 전화에 그리 관대하지 않은 내가 2년째 이 할머니의 전화를 친절하게 받아준 이유도 그 “절믄이가?” 때문이다. “절믄이가?”는 경상도 지방의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지칭하는 ‘젊은이냐?’의 사투리다. 고인이 된 엄마가 올케와 통화할 때 맨 먼저 하시던 말씀이다.
처음엔 나도 “절믄이가?”란 전화를 받고 무슨 말인지, 누군지를 확인하느라 “여보세요?”라고 되묻자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가 거듭되면서 거기 포항이 아닌가? 묻기에 이르렀고, 나중에는 집까지 찾아달라 하셨다. 대화는 언제나 미완성인 채로 끝났다. 해를 넘겨서 이어지는 전화였지만 할머니가 사는 곳도 모른다. 몇 마디 오가면 전화는 끊긴다. 발신자 조회를 해 봐도 제대로 된 번호가 뜨지 않았다.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부모님 살아계셨을 적에 자주 전화 드리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고된 농사일에 지쳤을 엄마한테 전화 한 통화 드렸다면 엄마의 농사일이 훨씬 수월했을 테고, 혹여 외출 중에 전화를 받았다면 그 외출이 더 즐겁고 신났을 것이다. 그랬다면 엄마의 휴대전화도 엄마로부터 버림받지도 않았을 테다. 어리석은 사람은 늘 뒷북을 치듯, 나는 내 휴대전화 연락처에서 엄마를 지울 수가 없고, 가끔 걸려오는 엄마 전화에 소용없는 후회로 가슴이 아린다.
몇 달째 전화가 없는 그 할머니는 어찌 된 일일까? 애타게 찾던 아들네로 가신 것일까?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영원한 짝사랑! 그 사랑으로 인류는 영원하리라.
--- p.21~25, 「1부 오늘같이 기쁜 날, ‘엄마 전화’」 중에서
하늘나라, 달나라, 용궁나라, 온갖 천상의 나라를 감상한 흥분도 어둠 속에 스러진 노을처럼 가라앉고, 밀린 숙제를 하려는데 열어놓은 창밖에서 내 귀를 의심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달 좀 봐!”
“…”
“엄마! 달이 절경이지?”
“…”
바깥의 어둠 속에서 들리는 소리로 짐작건대 아직 10대 중반의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분명한데 ‘절경’이라는 단어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베란다로 나가 블라인드를 걷었다. 과연 ‘절경’이란 표현밖에 달리 표현 방법이 없을 절경이었다. 소년이 어머니께 보여주고 싶었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베란다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불빛과 구름으로 인해 달빛이 그리 밝지는 않았지만, 구름은 달에다 묘한 무늬를 넣어서 그야말로 절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를 밖으로 이끈 아이를 찾았다. 어둠 속의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네가 엄마한테 달 보라고 했었니?”
“네….”
“몇 살이니?”
“중학교 1학년인데요?…”
“달이 보이니?”
“…???…”
웬 낯선 아줌마가 뜬금없이 나타나 자신의 나이를 묻고 급기야‘달이 보이느냐’는 생뚱맞은 소리를 하자 아이는 아파트 10층 베란다 열린 창으로 자신의 엄마를 찾았다. 아이를 더 붙잡고 있다간 베란다의 엄마에게 의심을 살 것 같아 딴 곳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달을 볼 수 있는 너는 아마 커서 시인이 될 거야….”
칭찬으로 한 그 말로 아이에게 더욱 이상한 아줌마로 비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또 아이의 엄마가 들었다면 화를 낼지도 모를 일이다. 남의 귀한 자식을 요즘 같은 세상에 돈과 권세와는 거리가 먼 시인이 될 거라고 했으니 말이다.
--- p.73~75, 「2부 인연, ‘달이 보이니?’」 중에서
지난 추석, 삶의 굴곡에서 딸 둘을 데리고 일본에 귀화하여 살고 있는 시누이가 조카랑 다녀갔다. 힘든 시기를 잘도 견딘 큰조카는 어엿한 숙녀가 되어 한국 굴지의 기업 도쿄지사에서 일하고 있다. 작은 조카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3개 국어가 능통하여 다방면에서 활약을 하고 있다.
작은 조카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하나, 일본인으로서 모국어인 한국어 시험을 미국에서 치렀는데, 하필이면 십장생을 설명하는 문제가 나왔고, 조카는 “한국에서 가장 심한 욕”이라고 답을 썼단다.
얼토당토않은 답에 의아해하는 내게,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쌍욕을 대신하여‘이런 십장생!’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는 딸의 부연 설명을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 p.154, 「3부 아름다운 봄날, ‘심장생의 수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