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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와의 자기관리 일주일

신부와의 자기관리 일주일

김리원 | 들녘 | 2020년 11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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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24쪽 | 418g | 130*190*30mm
ISBN13 9791159255908
ISBN10 1159255903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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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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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순 시아 언니의 광고판을 바라보았다. 내 허벅지에 걸려 가냘픈 허리가 부러진 시아 언니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조명들이 내 쪽을 환히 비추며, 땀에 젖어 번들대는 팔다리와 나뒹구는 체리45 음료 캔을 드러냈다. 나는 바닥만 뚫어져라 내려다보았다. 지금 이곳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면 내 수명의 십 년이 깎인다 해도 오케이 할 거야. 그때 갑자기 좋은 냄새가 훅 풍기더니 커다란 손이 눈앞에 불쑥 나타났다. 놀라 올려다보니 재성 씨가 웃고 있었다. “다치지는 않았니?” 나는 재성 씨가 내민 손을 멍하니 보았다. “재성 씨라고 부르렴. 네가 가장 어리긴 하지만, 여기 있는 소녀들 모두와 나는 앞으로 허물없이 지내야 할 사이잖니?” 수십 개의 플래시가 팡팡 터졌다. 나는 나뒹굴고 있는 체리45 음료 캔을 그러모았다. 미쳤나 봐. 도대체 왜 이러고 있어. 나는 급히 말했다. “재성 씨, 이거 제가 다 먹으려고 한 거 아니에요. 보육원 애들한테도 주려고 했어요.” “알겠다. 그럼 같이 음료를 나누어 주러 보육원으로 갈까?” 쉼 없는 플래시 속에서 재성 씨가 웃었다. 재성 씨는 나의 인어공주 동화책에서 빠져나온 검푸른 옷의 왕자님이었다.
---「프롤로그」중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재성 씨는 나를 이 집에 살게 해주고 예쁜 방과 화장품도 주었는데……. 나는 몰래 과자를 사 먹기만 했어. 내가 재성 씨라도 화가 났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저택의 화병 속 꽃대를 닮은 언니들의 몸매를 보면, 뭐라도 먹고 토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비포, 변하겠다고? 지금까지의 너의 행동을 보건대, 나는 믿을 수가 없어.”나는 재성 씨 앞에 무릎을 꿇고 매달렸다. “죄송해요, 뭐든지 할 테니까 용서해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나를 재성 씨가 일으켰다. “그래……. 내가 너를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단다. 비포, 너는 내게 특별해. 날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아이지. 그렇지 않니?” 내가 재성 씨에게 특별하다고? 그렇구나, 재성 씨는 날 좋아하는 거였어.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비포,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지. 그래서 말인데, 부탁 하나 들어주겠니?” “네, 뭐든지 할게요!” 재성 씨가 미소를 보였다. 재성 씨가 멀티비전을 향해 리모컨을 누르자 화면에 ‘재성 씨 In 청춘콘서트’란 플래카드가 나타났다. 사제복을 입은 그 신부님도 보였다. 재성 씨가 말했다. “알아보겠니?”“네. 아까 그 신부……잖아요. 나쁜 사람.”재성 씨가 웃었다. “저자는 사람을 피해 다니는 데다 남자면 이유 불문 만나지 않아. 심지어 십 년 된 성당 벽지를 실크 벽지로 교체하는 지원을 해주겠다고 해도 거절했지. 도무지 성당 안에 사람을 투입할 길이 없어. 그래도 미사가 끝나면 간간이 노인네나 동남아 여자들, 어린애들의 말은 받아주더구나. 그러니 네가 저자의 폰을 빌려 어플 하나만 설치할 수 있겠니?”

“어플이요?” “몰카 어플이야. 저자의 폰을 빌려 인터넷 창에 주소를 입력해 엔터만 치면 설치가 끝난다. 1분도 안 걸릴 거야.” 재성 씨가 메모지를 내밀었다. 아마 불법 촬영 어플의 주소 같은데, 나는 알파벳을 몰랐다. 재성 씨도 그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열 자 내외니 모양대로 외울 수 있을 거다. 설치에 성공하면, 내일이라도 생일 선물로 미리 다이어트 주사를 맞게 해주마. 너는 일주일 만에 인생이 바뀔 거야. 생일에, 너는 완전히 변한 자신을 선물로 받아드는 셈이지.” 45킬로그램이 되면 재성 씨의 팔에 가벼이 안길 수 있을 거야. 재성 씨가 시아 언니를 보듯 나를 사랑해주는 재성 씨만의 뮤즈가 될 수 있어. 그러려면 지금 뭐든 해야 해. 나는 불법 촬영 어플의 주소가 적힌 메모지를 받았다.
---「8월 9일 월요일 막장 드라마와 흰 사제복의 신부」중에서

드디어 미사가 끝났다. 신부님이 우르르 몰려나온 신자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지루하지만 계속 기다리자. 신자들이 다 빠져나간 후 신부님이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나는 골목길에서 빠져나와 성당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나처럼 사람들이 사라지길 기다렸는지, 길쭉한 차가 순간 미끄러지듯 성당 앞에 섰다. 차창이 내려가자 운전석에 앉아 있는 젊은 여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삼십 대 초반, 아니면 이십 대 후반인가? 하얗고 섬세한 얼굴이었다. 긴 생머리에 가냘픈 팔이 비치는 옅은 색 블라우스가 정말 잘 어울렸다. 조폭 아저씨가 신부님에게 말한, 잊어버리라는 여자가 저 사람인가? 조심히 엿보는데 신부님이 차 앞에서 여자와 몇 마디를 나누었다. 뭐라는 거야. 폰을 돌려줘야 하는데 빨리 좀 끝내지. 갑자기 신부님이 화난 얼굴을 하더니 냉큼 차 문을 열고 여자의 옆자리에 탔다. 신부님이 여자랑 같이 차에? 내가 눈을 의심하는 사이 차가 부웅,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8월 10일 화요일 사악한 신부와 자동차 안의 미인」중에서

나는 한숨을 쉬다가 수십 년은 묵어 보이는 낡은 공책을 발견했다. 날짜가 적혀 있는 걸 보니 일기장인 것 같았다. 도로 꽂아 넣으려는데 공책 안쪽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여자 사진이잖아. 신부님의 여자 친구?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나는 허겁지겁 사진을 집어 들었다. 사진 속 여자는 삼십 대 후반 정도로, 헐렁한 환자복이 낄 정도로 비대한 몸집에 아무렇게나 자른 커트 머리의 아줌마였다. 재성 씨에게 이런 여자가 아줌마지 나는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뚱뚱했다. 그렇지만 여자는 살이 쪘어도 이목구비가 오목조목하고, 맑은 눈이 아름다웠다. 살을 빼면 정말 예쁠 것 같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게 미인들은 다 비슷해서 그런가. 신부님이 만난 차 안의 여자와는 다른 타입이지만 매력이 있었다. 이 아줌마도 자기관리를 좀 했다면 달라 보일 텐데. 어쨌거나 신부님은 정말 취향도 가지가지네.
---「8월 11일 수요일 성당 앞 교회의 공짜 커피 맛」중에서

신부님이 찾아가는 노인들은 페인트가 벗겨져 가는 주택의 문간방이나 지하방에서 혼자 살았다. 신부님이 녹슨 주택 철문을 두드리며 마리아 자매님, 하고 부르면 사람이 나오는 대신 들어오소, 라는 낡고 찢어진 외침이 들려왔다. 철문 안에는 엉성하게 묶인 종이박스와 폐지들이 쌓여 있었고 어디서 나는지 모를 기이한 악취가 났다.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나갈 좁은 길을 지나 방에 들어가면, 세탁을 한 건지도 의심스러운 이불을 덮은 할머니들이 반쯤 누워 있다가 신부님을 보고 일어나는 시늉을 했다. 신부님은 끝년이, 말년이, 원남이 같은 이름의 그녀들에게 할머니라는 호칭 대신 마리아 자매님, 로사 자매님, 스텔라 자매님이라고 불렀다. 그녀들이 신부님에게서 동그랗고 햐안 빵 같은 성체를 받아먹는 건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들의 주된 관심사는 성체가 아닌 듯해 보였다.

“신부님. 요즘은 머리도 아프고 몇 십 년 전 다친 다리도 아프답니다. 좀 나으라고, 통증 좀 떨어지라고 안수해주세요.” 신부님이 할머니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었다. 글쎄, 저게 무슨 효력이 있을까? 나아질 거라는 말은 누구라도 다 할 수 있잖아. 그렇지만, 찌푸려져 있던 할머니의 미간이 좀 펴져 있었다. 신부님의 손을 잡은 할머니는 늙은 몸 안에 든 여자애 같이 보였고, 신부님은 어른 남자 같아 보였다. 평소와 달리 어른스런 얼굴의 남자는, 주름지고 흰머리 가득한 어린애가 죽은 남편의 잘못을 일러바치는 것을 들으면서 정말 나빴네요, 하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노인들이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생물이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노인이어서, 할머니에 어울리는 이상하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노약자석을 메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부님이 곁에 있으면, 할머니들은 딱딱한 무표정에서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바뀌었고, 그 얼굴에서 예전의 고운 윤곽이 보이고는 했다. 저 사람들도 젊거나 어렸었구나.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8월 12일 목요일 자기관리를 방해하는 사람」중에서

어떻게 하지. 당신과 걷기 전에는 몰랐어. 내가 얼마나 주변을 경계하고 날이 서 있었는지. 이 풍경들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어. 내 뒤나 앞에 남자애들이 있으면 얼마나 욕을 먹을지, 괴롭힘을 당할지 몰라 언제나 주눅 들고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풍경을 본 적도 없었어. 길을 걷는다는 게 이런 거였나. 사람들이 날 싫어하는 것 같을 때마다, 신부님의 눈빛을 마주하면. 그 생각이 녹아 없어지는걸. 아무렇지도 않아. 두렵지도 않아. 그동안 수없이 길을 걸었던 게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도대체 난, 어떻게 길들을 걸어왔을까.
---「8월 13일 금요일 핍진성의 산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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