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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에서 한양까지 1

개경에서 한양까지 1

: 권력투쟁으로 본 조선 탄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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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40쪽 | 498g | 152*224*30mm
ISBN13 9791156121787
ISBN10 115612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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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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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시대의 가장 큰 역사적 의미는 새로운 친명사대 관계의 성립이었다. 이는 원 제국과의 사대복속관계를 끝장내는 일로서 충분히 역사적 사건이라 할 만한 일이었다. 또한 이러한 대외관계의 대전환은 국내 정치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쳐 새로운 정치 세력, 신진사대부를 개혁 세력으로 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조선왕조 개창의 단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으니 그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 p.29

북원과 관계 개선을 시도하려는 이인임 정권과 이를 반대하며 친명사대를 고집하는 사대부 측으로 정치 세력을 양분하여 설명하는 것인데, 양 세력 간의 권력 싸움에 주목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인임 정권은 무인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진사대부가 친명사대를 고집했던 것은 무인 기반의 이인임 정권을 견제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한 권력투쟁이라 볼 수 있다
--- p.66

이인임 정권이 이런 식의 방어 전략을 구사한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장수들의 직함만 바꾸어 수시로 여러 사람을 돌려막기 식으로 교체했던 것은 무장들의 정치적 성장을 꺼려 한 때문이었다. 군사를 보유한 장수를 특정 지역에 장기간 주둔케 하면 군사적 기반을 갖춘 무장의 성장은 당연하다. 이는 이인임 정권에 위협적인 일로서 방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왕 대의 왜구 침략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 p.84

이성계가 사병 같은 군대를 기반으로 크게 승첩을 올린 전투가 왜구와 맞서 싸운 1380년(우왕 6) 9월의 운봉(전북 남원)전투였다. …… 운봉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이성계는 고려 중앙 정계에 무장으로서 깊게 각인되었다. 하지만 운봉전투 이후에도 이성계는 크게 주목할 만한 활동이 없었다. 장수로서 이미 명망을 세웠지만 중앙 정계에는 아직 충분한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성계를 동북면 도지휘사에 임명한 것이니 그 의미가 컸다
--- p.155

이성계가 다시 친원적인 외교노선을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기반을 부정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성계는 불가피하게 반원노선으로 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성계가 북원과의 관계 개선을 지향하는 이인임 정권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무장들 거의 대부분이 이인임 정권을 추종했으니 이성계는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이인임 정권에 맞서 친명사대를 주장하다가 유배까지 당했던 정도전과 정몽주는 그런 이성계를 주목했던 것이다
--- p.160

우왕은 왜구의 위협이 지척인데 복술만을 좇을 수 없다고 하면서 천도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마침내 철원(강원)에 관리를 보내 궁궐터를 살펴보게 하였다. 새로운 도읍지로 내륙의 철원을 생각했던 것이다. 새로운 궁궐터를 살핀 후 우왕은 철원에 궁성을 축조하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기어이 천도를 단행하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 p.177

최영은 분명 이인임 정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웬일인지 인사권에는 별로 간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이를 다시 생각해보니, 최영은 이인임 정권으로부터 군사권을 보장받는 대신 이인임의 인사권에는 부러 간섭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인임과 최영 사이에는 서로의 권력을 인정하고 침해하지 않는다는 정치적 묵인이 있었던 것 같다
--- p.196

1382년(우왕 8) 8월, 결국 한양으로 천도할 것을 다시 결정한다. 이때는 이인임과 최영이 수상에서 물러나고 홍영통과 이자송이 새로이 수상을 맡은 직후였는데, 간관들이 천도를 말렸지만 우왕은 한양으로 떠난다. 이게 완전한 천도가 아닐지라도 국왕이 왕도 개경을 장기간 벗어난다는 점에서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다
--- p.214

주원장의 교류 중단 조치가 내려진 직후 명에서는 그해 12월 갑자기 철령 이북의 땅을 자신들이 관할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른바 철령위鐵嶺衛 설치 문제로서 이게 고려에 통보되어 알려진 것은 이듬해 2월이지만, 교류 중단 조치 직후 이런 선언이 나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 p.273

이를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에 제일 큰 도적이 그물에서 빠져나갔다. 정직한 최 공이 개인 사정으로 늙은 도적을 살렸다.’ 최영이 불법적인 치부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올바른 처결은 아니었던 것이다. 최영의 처결에 대한 여론의 불만을 엿볼 수 있으며, 아울러 앞으로 최영의 독주를 충분히 예상할 수도 있다
--- p.288

최영은 문무백관을 불러 철령 이북의 땅을 명에 바칠 것인지 가부를 논의하였다. 당연히 모두 불가하다고 하였다. 불가라고 해서 바로 요동정벌을 찬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곧바로 최영은 우왕과 비밀리에 회동하여 요동을 칠 것을 논의한다. 개경의 군사를 징발하여 한양의 중흥성 수축에 들어간 것은 그 직후였다. 모두 1388년(우왕 14) 2월의 일로 뭔가 급박하게 전쟁 분위기로 몰아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 p.294

임견미?이인임의 정권이 무너진 직후라 우왕에게는 최영의 후원이 절실했다. 최영은 우왕의 이런 처지를 이용하여 요동정벌에 끌어들이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세우는 데 이를 활용한 것이다. 최영과 우왕의 적극적인 결합은, 1388년(우왕 14) 3월 우왕이 최영의 딸을 왕비로 들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 p.297

최영에 의한 요동정벌의 무리한 추진은 전시동원체제를 통해 정권을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본다. 최영이 권력을 장악해나가는 데 가장 큰 경쟁 상대는 이제 이성계였다. 이성계가 소유한 독자적인 군사력 때문이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성계는 요동정벌준비 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되고 있었다
--- p.298

최영의 요동정벌이 대외적으로 명을 직접 자극하여 적대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홍무’ 연호 정지는 대내적으로 신진사대부를 의식하여 친명사대 노선을 부정하려는 선언이었다. 즉 요동정벌은 명과 전쟁을 통해 반드시 승첩을 올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친명사대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이 당면 목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최영의 처지에서는 요동정벌에서 승리하면 더없이 좋았지만 패배한다 해도 크게 나쁠 것이 없었다. 친명사대관계를 끝장낼 수만 있다면 승패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 p.305

“만일 상국(명)의 경계를 범하여 천자께 죄를 얻으면 종묘사직과 백성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내가 순順과 역逆으로써 회군하기를 요청하였으나 국왕은 살피지 못하고 최영 또한 늙고 어두워 듣지 않았다. 그대들과 함께 회군하여 왕을 뵙고 화禍와 복福을 알릴 것이며, 국왕 곁의 악한 자(최영을 가리킴)를 제거하여 백성들을 편안케 할 것이다.” …… 역사적인 위화도 회군이 시작되는데, 1388년(우왕 14) 5월 22, 23일경이었다
--- p.310

회군을 결행하면서 이성계와 조민수는 우왕을 폐하고 왕씨를 세우자고 약속을 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조민수는 창왕을 세우기 위해 이색을 앞장세웠다. 유학자로서 사대부의 중심에 있던 이색에게 자문하니 창왕을 세우는 데 동의했다는 것이었다. 조민수가 이색의 동의를 빙자하여 재빨리 창왕을 내세운 것은 정치적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였다. 공민왕이 죽자 바로 우왕을 내세워 정권을 장악했던 이인임처럼 말이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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