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50대 인생이 한국에서 참 격동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살던 시대가 격동이었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어느 시대를 살았든 관계없이 “우리가 살던 시대가 한국사에서 제일 격동이었어” 그렇게 여기며 살고 있고 여러분들도 맞잖아요. 여러분들이 50년대 말이나 60년대 초에 태어났는데 50년대 말이면 1인당 GNP가 60불이 안 되어요. 지금 3만 불 시대에 60불의 삶이 어땠느냐는 상상이 안 되는 거죠. 여러분들도 엄청난 청룡열차 같은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망국, 해방, 4·19, 5·16, IMF 등 온갖 것을 겪었습니다. 이병주가 쓴 소설 ??알렉산드리아??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이데올로기를 알고 사는 사람은 슬프다” 그런 얘기를 하는데 이병주가 당대 청년이었으니 그런 얘기를 했지만, 우리는 아픈 시대를 살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좌익을 얘기할 적에 좌익은 분열에서 망하고 우익은 부패에서 망한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구분이 없어졌어요. 좌익도 부패에 빠질 때가 되었고 그렇다고 우익은 깨끗한가? 우익은 더 부패해 있습니다. 3~4년 전만 해도 한국의 국회의원이 자기 당의 이름이 뭔지 몰랐습니다. 너무 자주 바뀌고 분열하고. 역사적으로 이런 사례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좌익을 향해서 욕할 형편도 아니고, 우익을 향해서 너무 게걸스럽다고 욕할 형편이 아닙니다.
좌우 진영 논할 적에 문제가 되는 것이, 당신은 민족주의자야? 국제주의자야?. 하는 질문입니다. 대부분 다 민족주의자라고 얘기하거든요. 다들 민족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고 말하지요. 그러나 애국자가 없었던 시절도 없었고 애국자가 넘쳤던 시절도 없습니다. 다 애국자예요. 다 조국을 위해서 죽을 거 같애요. 그런데 자식들은 모두 미국으로 유학 가 있어요.
노동자는 조국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노동자는 이웃 나라의 노동자와 연대해야 진정한 맑시스트지요. 요즘 한국의 좌파는 자기들이 민족주의자인 김구를 우파보다 더 숭모하는 것 같습니다. 김구는 extreme rightist요, 임시정부 최강의 우익이었어요. 말이 그렇지 민비(閔妃)를 죽인 사람의 원수를 갚겠다고 부엌칼을 가져와서 창자를 꺼내서…. 이게 소설이지 쉬운 일입니까? 그런 인물이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좌파의 추앙을 받는 거죠.
결국 제 얘기는 뭐냐 하면요, 한국의 좌익은 대단히 비학술적이고, 정제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좌우익에 대해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빵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이념은 공허한 거라는 점입니다. 케임브리지경제학파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마셜(Alfred Marshaii)의 주장(Principles of Economics)에 따르면, 제가 이 책을 참 인상 깊게 읽었어요, “당신이 진실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당신은 지금 가난하지 말았어야 한다.” 이 글을 읽는데 가슴이 찌릿하면서 그럼 난 뭐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대학 교수가 가난하지는 않았어요. 자식들한테 다 못 해주는 거 마음에 걸리고, 고생한 아내가 마음에 걸리는데, “당신이 진실로 지혜로웠다면, 당신은 지금 가난하지 말았어야 해.” 이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에 마지막 챕터가 화식열전(貨殖列傳)이거든요. 화식이라는 건 돈 얘기입니다. 사마천이 ??사기??를 쓰면서 왜 마지막이 돈 얘기였을까? 왜 돈이었을까 이 말입니다. 그 돈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이 나실지 모르겠네요. “당신이 도(道) 닦는 사람도 아니면서 그렇게 가난하게 사는 주제에 인(仁)을 얘기하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가?”라고 써 있습니다.
막스 베버의 말에 의하면, 이 세상은 일주문이래요. 일주문은 기둥이 두 개란 뜻이거든요. 일주문은 기둥이 하나라는 뜻이 아니라 기둥을 두 개 세우면 일주문입니다. 막스 베버가 “이 세상은 일주문이다. 왼쪽 기둥은 경제이고 다른 쪽 기둥은 종교이다. 이 두 기둥이 없었으면 이 세상은 무너졌을 거다.”
제도적으로 얘기하면, 대통령제보단 의회중심, 양당제보단 다당제, 그렇게 해서 좌우의 이념적 편차를 극단화 시키는 게 아니라, 예를 들면 쌍봉낙타가 아니라 단봉낙타 모양으로, 가운데 중도가 크고 양극단이 적어지는 그런 형태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렇게 판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암울하다. 특히 제국적 성격을 띠고 있는 미국이라든지 큰 나라들은 정치가 양극화되어도 어쨌든 치고 받고 끌어갈 수 있고 버틸 수 있지만 선진국에 완전히 진입하지 못한 이런 나라들 입장에서는 그런 식으로 끌고 가면 나라가 사단이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이념적 갈등 충돌 이런 것이 진화를 해왔기 때문에 유교 때보다는 70년대가 나았고, 70년보다는 80년, 90년, 2000년대가 사상적으로 한국 사회가 풍부해졌다고 생각하고, 지금 현재 우리도 강렬한 정치적 대립 대결을 가져왔다고 생각하지만, 2017년 박근혜 탄핵 이후 새로운 정부의 탄생과 새로운 정부의 탄생에 의해서 소위 말하는 지방권력과 국회 권력과 행정부 권력이 한번 다 바뀐 이것이 저는 역사의 진보라고 봅니다. 이후에 새로운 역사가 진행될 거다, 정반합으로 진행될지, 아님 상당기간 진행될지 몰라도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미국의 절대적 영향 아래서 근대를 이룩했기에 미국식 방식에서 많이 배웠고 그것을 떠나 현실을 얘기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물론 다른 점도 뒤섞여 있지만요. 그럼 지금 현재 우리가 이룩한 근대의 조건은 뭐냐? 그랬을 때 저는 우리 사회 젊은 세대들의 특성을 보면서 우리 사회는 이미 아메리칸드림으로 표현되었던 미국식 근대화가 충분할 정도도 진행되었다, 물질적 생산력과 기술수준, 세계화 정도, 교육제도와 지식수준, 정치제도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적어도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미 자유주의적 사상들이 장착이 되어 있는 근대적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근대가 가져야 할 자유의 물질적 토대가 되는 개인적 경제권 확보 측면에서 보면 우린 미국처럼 광활한 신대륙이 아니니까 사회적 협약이나 시스템으로 보장받는 사회보장, 복지제도 이런 것들이 좀 더 보완되어야 하겠죠. 이런 부분들이 보완되어 나간다면, 근대의 조건들을 상당정도 갖춘 성숙한 단계에 와있다고 보고, 이런 것들을 기반으로 해서, 한국사회가 그 다음 단계로 나갈 때가 되었다고 보거든요. 물론 그 출발은 앞에서 말한 근대적 인간관, 곧 관계적 실존으로서 상호 인정과 현실긍정의 위버멘쉬적인 개인의 보편화에 서겠지만 말이지요.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