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 종언 이후 제2세계가 소멸되면서 세계는 전 지구적 북부(the global North)와 전 지구적 남부(the global South)로 재편되고 있다. 전 지구적 북부/남부에서 북부/남부는 지리적 위치가 아니라 정치적 위치이다. 즉, 전 지구적 남부는 자본주의 근대성(capitalist modernity)이 초래한 억압과 배제로 인해 고통 받는 지역/집단을 가리킨다. 북부/남부가 전 지구적이라는 것은 북부에도 남부(colonial North)가 존재하며 남부에도 북부(imperial South)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연합에 속하지만 북부 유럽은 전 지구적 북부이고 남부 유럽은 전 지구적 남부이다. 전 지구적 북부에도 빈민 계급이 존재하며, 전 지구적 남부에도 부유한 자본가 계급이 존재한다. 또한 전 지구적 북부와 전 지구적 남부를 가리지 않고 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 난민, 여성은 전 지구적 남부의 주민이다. 따라서 세계가 전 지구적 북부와 전 지구적 남부로 재편되었다는 것은 자본주의 근대성의 문제가 어느 특정한 지역 혹은 국민국가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시사한다.
--- p.8, 「책머리에 - 다른 세계는 이미 가능하다」 중에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아메리카에 국민국가가 등장하기 시작한 19세기 전반에 우세했던 개념은 ‘라틴’아메리카가 아니라 ‘스페인’아메리카였다. 그러나 피지배 집단이었던 크리오요가 지배 엘리트로 바뀌면서 크리오요는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보다 유럽의 지식인들을 모방했다. 스페인의 과거, 원주민의 과거, 흑인의 과거를 자신의 것으로 주장할 수 없었던 크리오요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다. ‘라틴성(latinidad)’은 유럽에 대한 종속을 끊을 수 없었고 끊고 싶어 하지도 않았던 크리오요의 선택이었다. 라틴아메리카의 라틴성은 두 가지 차원을 내포하고 있었다. 첫째, 라틴성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를 하나로 묶는 초국가적 정체성이었다. 둘째, 라틴성은 1850년 파나마를 둘러싼 앵글로색슨 인종과 라틴 인종 간의 국제적 세력 다툼의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즉 ‘라틴아메리카’라는 개념은 라틴성이라는 통합적 이데올로기를 매개로 스페인과 포르투갈과 연결된 탯줄을 끊어버리고 새롭게 등장한 제국의 일원이 되고자 했던 크리오요의 열망의 표현이었다. 따라서 서인도-신세계-아메리카라는 개념처럼, 라틴아메리카 역시 지리적 실체로서의 아대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크리오요 엘리트의 정치적 기획이었다.
--- p.39, 「제1장 포스트옥시덴탈리즘과 라틴아메리카 ‘이후’」 중에서
파치 파코는 안데스 공동체를 자원의 집단적 소유와 자원으로부터 얻어진 생산물의 사적 이용의 체계로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원주민 사회는 근대 사회와 달리 능력에 따라 차별하지 않으며 사회를 영역(정치 영역, 경제 영역, 문화 영역 등)으로 분리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자면, 원주민 사회는 내적, 외적 환경과 관계를 맺는 유일 체계로 작동한다. 파치 파코가 자유주의 체계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자원의 집단적 소유와 생산물의 사적 이용을 토대로 하는 공동체 체계이다. 공동체의 환경은 자유주의 체계에 탄력적으로 반응하며 자유주의 체계에 전유될 수도 있지만 체계는 변화되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원주민 공동체의 체계가 자유주의의 환경을 전유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체계에는 변화가 없다. 이러한 체계의 지속성이 아이유의 역사적 지속성이며 대안으로 제시되는 사회성의 공간이다. 따라서 아이유 재구축은 사적 소유와 대의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대신에 아이유의 체계에 따라 국가를 재구축하는 것이다.
--- p.184, 「제5장 안데스 코뮤니즘, 도래할 공동체?」 중에서
원주민 운동이 범마야 정체성 구축이라는 측면에서는 일정 부분 성공적이었지만, 내부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야 원주민 내에 존재하는 20개의 언어로 대표되는 차별적인 정체성들을 가지고 있는 각 공동체들 사이의 차이, 마야족의 종족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입장과 계급적인 관점을 강조하는 차이 등이 여전히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분열들이 1970년대 이후 원주민 운동이 얻어 낸 범마야 정체성이라는 성과를 가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테말라 원주민 운동이 에콰도르나 볼리비아 원주민 운동이 보여준 조직적 통합성에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과테말라의 선거 제도가 일정 부분 마야 운동 내의 조직적, 정치적 분열을 결과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정당에 속하지 않은 시민선거위원회의 구성을 허용한 선거법은 시민선거위원회가 무니시피오 단위 선거에서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게 한다. 전국 정당에만 허용되어 있는 전국 단위 후보와 달리, 소규모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선거위원회가 무니시피오 단위에서 시장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선거가 끝나면 자동적으로 해산되기 때문에 조직적 역량을 축적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렇게 되면 원주민 공동체들은 무니시피오 단위에서는 잘 대표되지만,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여전히 주변화되는 것이다.
--- p.253, 「제7장 마야 원주민 운동과 시민선거위원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