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결과 돌봄대화를 비롯한 연구들은, 유급 돌봄 수행자가 사랑노동을 보조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이를 대체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영속적 관계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감정과 헌신은 고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유급 돌봄 수행자가 종종 그런 관계를 발전시키지만, 고용계약으로써 그렇게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유료 돌봄 서비스는 사랑노동을 지탱하는 데 불가결하지만(그런데 돈과 자원은 몹시 부족하다), 사랑노동의 대체재라기보다는 보완재로 인식되었다. 부모들은 다른 사람에게 보수를 지불하면서 자녀를 돌보게 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했다(성인 자녀는 부모에게도 이렇게 했다). 하지만 부모들은, 설사 유급 돌봄 수행자가 자기 아이들과 그들만의 관계를 구축하더라도 부모와의 관계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인식했다.
--- p.29, 「들어가는 글」 중에서
피아제의 영향 아래, 학교교육은 더욱 추상적인 사고능력, 특히 수학적 추론의 발달에 초점을 두고 있다. 추상적 사고능력을 최고로 여기는 경향은, 블룸이 교육목표 분류법(인지적 영역)을 창안한 이후 그대로 이어져왔다. 블룸은 위계적인 등급표 위에 인지 방식을 배열했는데, 이 분류가 2차 세계대전 후 널리 유포되어 평가 및 시험에서 주요한 의제를 설정했다. 그가 똑같이 중요하게 여긴 정동적 영역의 교육목표 분류법은 교육자들이나 각국 정부가 조금도 발전시키지 않았다.
--- p.36, 「1장 어떤 평등이 중요한가? 평등주의적 사유에서 정동적 평등의 위치」 중에서
전반적으로,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과 나눈 대화에서는 성인을 돌보는 사람들이 자주 표현하지 않았던 희망과 열정이 엿보였다. 아이들은 성장하고 발달하기 때문에 돌봄노동은 미래에 긍정적인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로 간주되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아이가 자라는 걸 볼 수만 있어도, 하루하루 새로운 게 있어요. 더 정확히 말해, 매우 단순한 것일 수 있지만, 예를 들어 무언가를 한다는 거죠. 다른 날엔 하지 못했던 걸 어느 날 하는 거예요. 정말로 진가를 느끼고 음미하는 거 같은 아주 작은 일들을 말이죠! _도널, 제럴딘과 결혼, 미취학 아동 한명을 공동으로 돌봄.
--- p.105, 「3장 사랑노동: 돌봄 합리성과 관계적 정체성」 중에서
제럴딘은, 아버지들이 기저귀를 갈아주었다고 칭송하는 미디어에 의해 남성들은 예외적이라는 가정이 강화되었다고 믿었다.
TV에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누군가 인터뷰하는 걸 보셨을 텐데 이런 식이죠. “오~ 예, 일손 돕는 아빠.” “기저귀는 갈아줘요?” 그리고 “예, 저는 기저귀 갈아줘요”. “아 그런 일을 하다니 대단하십니다!” 농담하는 거겠죠? 그러니까 그게 누군가의 역할이라는 걸 인정하듯이. 참담할 뿐이죠. 여자에게는 기저귀 갈아주느냐고 묻지도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오~ 예, 일손 돕는 엄마. 당신이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군요”. ……그런 건 묻지도 않을 거예요! _제럴딘, 도널과 결혼, 미취학 아동 한 명을 공동으로 돌봄.
--- p.158, 「5장 젠더, 사회계급 그리고 홀로 돌보기: 불평등의 상호교차성」 중에서
폴린의 관점은 심각한 경제적 격차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자녀들의 학교교육 요구를 돌보는 데서 어떻게 감정적으로 표출되는지를 나타낸다. 저소득층 어머니는 학교의 요구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1년 내내 저축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렇게 해야 책값의 일부를 보조하는 제도를 활용해서 모자란 금액을 지불할 여유가 생겼다. 여성 유랑민인 브리지드는 학교교육에 들어가는 돈을 모으고 자녀들에게 ‘제대로 된 물건을 갖게’ 하는 데 필요한 감정적 노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년에도 (비용이) 오르겠죠. 교복과 교과서 대금을 지불해야 해요. 딸애가 확실히 그것들을 갖게 하려면 조금씩 저축해야 해요. 유일한 건 제일 큰 애가 거기에 작은 도움을 주는 거예요. 그게 대단한 거죠. 저는 딸애가 제대로 된 물건이 없어도 학교에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면 아이들이 딸애를 비웃을 겁니다. _브리지드, 유랑민, 별거.
--- p.251쪽. _8장 경제자본, 사회자본, 문화자본, 감정자본이 교육에서 어머니의 사랑과 돌봄노동에 미치는 영향
일부 남성은 기든스처럼 ‘여성화된’ 돌봄을 덜 경멸하고, 현대에 일어나는 변화를 아주 좋게 보았다. 패디는 아일랜드 농촌 여성의 지위를 역사적으로 고찰해 돌봄의 다면적인 본질을 인식했다. 여성 돌봄에 대한 남성의 의존성은 여성에게 정의롭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돌봄을 해줄 여성이 가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남성들을 곤경에 처하게 한다고 언급했다.
(남자들은) 그건 여자 일이고 저건 남자 일이라고 (믿어요)…… 특히 아이들에 관한 한. 아이를 기르는 건 오롯이 여자들에게 맡겨졌고 남자들은 아침에 일하러 나갔어요. 특히 농부들이 사는 시골에서 말이죠. 그들은 아침에 일하러 밭에 나갔다가 어두워지면 돌아왔어요. 매우 힘들게 일하고 녹초가 되어 돌아와요. 그리고 여자들은 ‘아 그래, 그는 하루 종일 밭을 갈았어. 지쳤을 거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진 그냥 내버려두죠. 아이를 보살피고, 음식을 만들고, 밥상을 차리고, 집 주위에서 가축 돌보고, 안에서 두 배나 힘들게 일하고 있다는 걸 여자들은 깨닫지 못했어요. 그리고 어쩌면 정말 과분하기 짝이 없는 지위를 남자들에게 주었어요. 그건 이제 모두의 몫이고, 그러니까 남자든 여자든 똑같이 감당해야 할 몫이에요. _패디, 남성노인 그룹.
--- p.292, 「9장 돌봄을 수행하는 남성성: 탐색적 분석」 중에서
성인으로서, 그리고 종종 부모나 조부모로서, 생존자들은 돌봄노동의 중심적 역할을 깨닫고는 어린 시절의 회복할 수 없는 돌봄 결핍을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제인의 경우, 비록 그녀의 자식과 손주들은 성공했지만 그녀의 일차적 학습돌봄 결핍과 잃어버린 기회에 대한 회한이 떨쳐지지 않았다.
손녀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 애가 책을 집어들고 읽었을 때 저는 아주 기뻤어요. 아시죠? 그러면서 (울음을 터뜨리며) 나는 어땠을까 생각하게 돼요. ……정상적인(멈춤) 이렇게 말할게요. 그건 내가 자라고 싶었던 그런 가정이었어요. _제인, 57세 여성, 학교에서 문해욕구를 충족하지 못함.
--- p.309, 「10장 보호시설에서 사랑 없이 살기: 문해학습에서 정동적 불평등의 영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