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간이 채 안되는 짧은 여정이었지만 고려항공 안에서 복잡한 감회에 젖어들었다. 1990년 첫 방북이 무산된 후 무려 28년만의 여정이었다. 북녘 비행기를 타고 가는 내가 마치 ‘통일 기러기’라도 된듯 생각이 들었다. 고려항공의 상징은 두루미다. 심양에서 평양으로 남하하는 비행기 안에서 겨울이 오기전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가는 철새의 모습이 반추되었다. 기자인생의 후반기를 남북의 화합과 통일을 위해 밀알이 되고픈 생각이 꿈틀거렸다.
--- p.13,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는 평양」 중에서
어떤 이는 북이 보여주고 싶은 것과 좋은 것들만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그들은 남조선 기자의 ‘홍보’를 원치 않았다. 충분히 자랑할만한 것들인데도 취재를 탐탁치 않아 했다. 웃으며 “로선생, 홍보 안해도 됩니다. 편안히 잘 보시고 돌아가세요.”
--- p.24, 「보여주고 싶은것만 보여주는 북한?」 중에서
여성들이 조선춤을 즐긴다면 남성들의 취미 1순위는 단연코 낚시다. 긴 대동강변을 따라 양쪽에 매일 수백명의 낚시꾼들이 아침 낚시에 열공하고 있다. 강변을 오가는 사람들은 산보하는 사람도 있지만 출근길 자전거를 타고 가는 시민과 학생들도 많다.대동강변에 이처럼 사람들이 많은 것은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 p.34, 「아침산책의 즐거움」 중에서
북녘에서 스마트폰은 하나의 혁명이다. 손전화기 보급은 북의 정치 경제 산업 문화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변화를 추동하고 있기때문이다. 불과 1년도 안되는 사이에 남북정상의 만남을 세 차례, ‘철천지원쑤’라는 미국의 대통령과 두번이나 만나는 ‘천지개벽’이 전개되면서 북녘 주민들도 큰 기대감속에 외부 소식에 목말라 하고 있으며 손전화기는 상당 부분 갈증을 풀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 p.52, 「신형휴대폰 사려고 장사진」 중에서
월요일 아침 길을 나서는데 뜻밖의 장면을 보게 되었다. 시내로 들어오는 방향으로 차들이 밀려 있는 것이다. 평양에서 교통체증이 벌어지고 있었다. 최근 수년간 차량이 급격하게 늘어 출퇴근 시간 일부 구간에선 이처럼 교통체증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더욱 놀라운 것은 평양에선 이미 짝홀수 운행을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활한 교통 흐름을 위해 짝홀수제를 시행하고 있다는게 뜻밖이었다. 그럼에도 일부 구간에선 차들이 밀린다는게 신기했다.
--- p.86, 「평양의 교통체증」 중에서
남북정상이 역사적 만남을 가진 남북 경계선이 코 앞에 보인다. 저 선을 넘어 차를 타고 한시간이면 내가 사는 일산에 닿을텐데... 하지만 현실은 돌아가려면 다시 평양으로 올라가 중국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두 번이나 타고 가야 한다. 대체 이게 무슨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수백만의 이산가족들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70년 넘는 세월, 지척(咫尺)에 가족을 두고도 생사를 모른 채 평생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야 했을까.
--- p.101, 「北 판문각에서 본 南 자유의집」 중에서
솔직히 이정도 일줄 몰랐다. 2019 가을철 평양국제상품전람회 개막일 인산인해 물결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어깨를 부딛칠 정도로 많은 사람들 틈에서 이곳이 과연 평양인지 서울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였다. 외국인들은 입장료 5달러를 내면 브로셔를 하나 주는데 평양 시민들은 그보다 훨씬 싼 값이지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 p.148, 「평양국제상품전람화 사람물결」 중에서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가장 인기를 모으는 곳은 1980년대 초 조성된 대규모 야외 촬영거리다. 전통한옥 건물들이 있는 조선거리를 비롯, 초가집들이 정겹게 들어선 농촌마을, 또 중국거리와 일본거리 등 1930~40년대의 거리들이 실제 모습처럼 만들어졌다. 일본 거리 옆에 남조선 거리도 있었는데 일제 치하를 시대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한글과 일본말 간판이 혼용된 것이 이색적이었고 나라 잃은 설움도 느껴졌다.
--- p.161, 「‘북녘 할리우드’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중에서
평양에서 골프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즐길까. 골프연습장을 체험해 보았다. 영업 준비를 하고 있던 아침나절이어서 조금 미안했지만 다행히 이용할 수 있었다. 연습공 60개가 8달러였다. 타석으로 나가보았다. 그물망이 쳐진 서울의 연습장과 달리 앞이 확 터져 그림 같은 풍경이 나온다. 어림잡아 한 250m 길이의 꽤 큰 연습장이었다.
--- p.178, 「평양에서 라운딩 어때요?」 중에서
내가 탈 비행기에 조종사와 두명의 정비사가 점검하고 있었다. 보통 경비행기 하나당 3인이 조를 이루고 있다. 초경량비행기는 상반신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어떤 비행에서도 맛볼 수 없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무서워서 어떻게 타냐고 하지만 사실 경비행기만큼 안전한게 없다. 설사 상공에서 엔진이 꺼져도 글라이더처럼 부드럽게 활강 착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p.182, 「평양상공을 날다」 중에서
극장에 들어갔더니 팝콘과 과자 음료수를 파는 매대가 있다. 대동문 극장에선 여성관객 두명이 김밥을 싸와 영화 시작전 먹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북에선 영화가 시작할 때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과거 우리는 영화가 시작할 때 ‘대한늬우스(뉴스)’가 항상 상영됐고 예고편과 애국가 순으로 시작됐는데 북도 비슷할까?
--- p.185, 「평양 시민들과 영화보기」 중에서
외국인이 북에 들어오면 고려링크를 통해 유심칩을 구입할 수 있다. 고려링크 사무실은 평양 순안공항 1층 입국장에 출장소가 있고 국제통신국 2층이나 고려호텔, 보통강호텔 등 특급 호텔에서도 가입 신청을 하고 유심칩을 살 수 있다.
--- p.211, 「평양에서 서울 카톡하기」 중에서
어디서나 립서비스는 사람을 기분좋게 만든다. 이 여성이 ‘호호호’ 좋아라 웃는다. 보아하니 나를 평양 시민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계속 시침 떼고 있으면 모녀가 나중에 당황할 듯 싶어 슬그머니 신분(?)을 밝혔다.
--- p.214, 「평양시민으로 착각했다구요?」 중에서
방문기를 마무리하며 꼭 이 말을 하고 싶다. 남북 겨레는 차가운 머리보다는 뜨거운 가슴으로 서로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애당초 타의에 의해 헤어진 가족과도 같다. 정부 차원의 교류 못지 않게 민간의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는게 중요하다. 합법적 테두리에서 갈 수만 있다면 북녘을 체험해보라. 한민족의 동질성 회복이야말로 오랜 분단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최상의 치유제라고 믿는다.
--- p.240~241, 「다시 싸는 평양행 가방」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