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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 베토벤 순례

거장이 만난 거장-08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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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12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20쪽 | 240g | 128*188*15mm
ISBN13 9791189716073
ISBN10 118971607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인생 황혼기의 바그너가 베토벤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자신의 예술적 정신적 스승 베토벤에게 바치는 베토벤 전기.
단편소설 ‘베토벤 순례’, ‘교향곡 9번 해설’ 등 관련 글 5편 수록.


“내 머릿속에는 온통 한 가지 소원만 맴돌았다. 베토벤을 만나자!” -13쪽 “타락한 낙원의 황야에서 이 위대한 선구자를 칭송하자! 독일의 용기가 거둔 승리 못지않게 그를 귀하게 칭송하자. 세계의 은인은 세계의 정복자보다 더 높이 있으니!” -197쪽 “1829년 4월, 열여섯 살의 바그너는 라이프치히에서 베토벤의 〈피델리오〉를 관람했다. 그 경험은 그의 인생에서 일대 전환점이 된다. 이를 계기로 그는 음악가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화성학과 바이올린을 배우고 직접 작곡도 하면서 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 그에게 베토벤은 영감과 영향을 주는 음악가였을 뿐만 아니라 음악의 본질, 더 나아가 세계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안내자였다.” -‘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은 바그너의 음악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베토벤의 삶과 베토벤의 음악을 바그너가 어떻게 이해했는지 잘 보여주는 중요한 글 다섯 편을 골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독일에서 음악학을 공부한 전문 번역가 홍은정이 충실한 옮긴이 주와 후기를 통해 다소 난해할 수도 있는 글의 이해를 돕는다. 위대한 음악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탄생 250주년(탄신일은 12월 16일)인 2020년, 두 음악 거장의 만남을 조명해 온 포노 출판사의 ‘거장이 만난 거장’ 시리즈 여덟 번째 책이자 올해 베토벤을 중심에 세운 세 번째 책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베토벤 순례 (1840)
1846년 드레스덴에서 열린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 보고서(내 기억에 따름) (1846)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1851)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 (1852)
베토벤 (1870)
옮긴이의 말
출처
루트비히 판 베토벤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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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달리 뚜렷한 목표가 없던 나는 어느 날 저녁에 처음으로 베토벤 교향곡을 들었고 곧바로 열병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음악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나서 그 열병은 치유되었다. 그 후로 다른 아름다운 음악들을 접하기도 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 누구보다도 베토벤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숭배했다. 오로지 이 천재 음악가에게만 깊이 몰두했고, 결국 내가 그 사람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 이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한 가지 소원만 맴돌았다. 베토벤을 만나자! 선지자의 무덤을 순례하고 싶어 하는 독실한 이슬람교도의 바람이 제아무리 강하다 해도, 베토벤이 거주하는 셋방을 찾아가려는 내 열망만큼 강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p.13~14

내가 대답하려 하자 그는 나를 막고는 종이 한 장과 펜을 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여기에 적으세요, 난 못 들어요!” 베토벤의 청력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마음의 준비도 했다. 그런데도 “난 못 들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거칠고 갈라진 목소리를 듣자 내 심장이 칼에라도 찔린 것 같았다. 그는 이 세상의 즐거움을 모른 채 가련하게 서 있다. 유일하게 그를 즐겁게 한 것은 음향의 힘이었을 텐데,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니. “난 못 들어요!” 그 순간 베토벤의 차림새, 뺨에 맺힌 깊은 슬픔, 눈에 서린 침울한 낙담, 입술에 어린 단호한 고집, 이 모든 것이 다 이해됐다. 그는 듣지 못한다!
--- p.37~38

“난 오페라 작곡가가 아니에요. 이제 이 세상에는 내가 다시 오페라를 작곡하고 싶게 만드는 극본이 없네요! 만약 내가 정말로 원하는 오페라를 만든다면, 아마 사람들은 모두 도망칠 거예요. 왜냐하면 거기서는 아리아, 이중창, 삼중창은 물론이거니와 지금처럼 오페라를 구성하는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을 테니까요. 내가 창작한 것은 어떤 가수도 부르려 하지 않을 거고 어떤 청중도 들으려 하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아는 거라고는 화려한 거짓말, 현란한 허튼소리, 감미로운 지루함밖에 없죠. 진정한 음악 드라마를 쓴 사람은 바보로 여겨질 테고.”
--- p.40~41

“인간의 목소리는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죠. 그것은 오케스트라의 어떤 악기보다도 훨씬 아름답고 고귀한 음향 기관이에요. 악기처럼 목소리도 독립적으로 사용할 순 없을까요? 만약 목소리를 그런 식으로 대한다면 완전히 새로운 결과를 얻을 텐데! 인간의 목소리는 본질적으로 악기의 특성과 확연히 두드러지는 다른 특징을 지녔고, 매우 다채로운 결합이 가능해요. 그에 비해 악기는 창조와 자연의 가장 원초적인 기관을 대표하죠. 악기가 표현하는 바는 명확하게 정의하거나 말로 옮길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혼란스러운 창조의 순간 ? 아직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혼란의 순간 ? 에서 생겨난 원초적 감정 자체를 재현하기 때문이죠. … 자, 이제 이 두 요소를 한데 모으고 하나로 묶어보죠! 악기로 표현되는 거칠고 거리낌 없는 원초적 느낌을, 인간의 목소리가 표현하는 맑고 분명한 감성과 서로 접촉하게 하는 거죠. 이 두 번째 요소의 등장은 원초적 느낌의 갈등을 진정시키고 부드럽게 해서 그 흐름에 확실하며 결집된 항로를 제공할 거예요. 원초적 감정을 자기 걸로 받아들인, 인간의 목소리는 스스로를 강화하고 넓혀 나가면서 신과 같은 의식으로 변화할 것이고 예전엔 확실치 않던 신적 예지를 또렷이 느낄 수 있게 되죠.”
--- p.42~43

베껴 쓰느라 숱한 밤을 하얗게 지새웠던 어린 시절 이후 처음으로 나를 신비한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 비밀스럽기 그지없는 이 악보를 다시 들여다보며 탐구하게 되었을 때, 내 기분이 어땠겠는가! 불확실했던 파리 시절에 탁월한 콘서바토리 오케스트라가 리허설에서 연주하던 첫 세 악장을 들었을 때처럼, 나는 갑자기 지난 몇 년의 시간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강렬한 감동 속으로 빠져들었고, 마법에라도 걸린 듯이 내 안의 열망을 위해 새롭게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에 강렬하게 사로잡혔다. 아주 오래전 내게 신비롭게만 여겨졌던 것을 다시 눈앞에 마주하게 되었을 때, 신기하게도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던 그 음향이 내 안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 친구들에게조차 속이려 했던 이 절망감은 이제 이 교향곡 덕분에 밝은 환호로 바뀌었다.
--- p.53~54

그렇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포디엄의 구조를 새롭게 바꿔서 오케스트라를 중앙으로 집중시킬 수 있게 했다. 대규모 합창단의 좌석은 확실히 높여서 원형극장처럼 오케스트라를 에워싸게 함으로써 웅대한 합창의 독특한 이점을 충분히 살렸고, 반대로 순수한 관현악곡 부분에서는 균형 잡힌 오케스트라가 치밀한 정확성과 큰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게 했다.
--- p.58~59

이제 벅찬 환희와 더불어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보편적인 인류애에 대한 선언이 터져 나오고, 우리는 감격에 겨워 전 인류를 얼싸안고 위대한 자연의 창조주에게로 나아간다. 확신에 차서 행복을 선사하는 창조주의 존재를 부르짖으며 무아지경에 빠져든 순간, 갈라진 창공 사이로 그의 존재를 발견했다고 믿는다.
--- p.74

우선 ‘영웅’이라는 표현은 넓은 의미로 파악해야지 군사적 위인으로만 국한해서 이해하려 들면 안 된다. ‘영웅’을 인간적인 모든 감정, 사랑과 고통과 힘을 지닌 참되고 온전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감동적인 어조로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대상을 제대로 포착한 것이다. 이 작품의 예술적 공간을 채우는 것은, 강하고 완벽한 한 인물에게 깊이 스며든 온갖 다양한 감정이다. 그렇다고 그가 인간적이지 않다는 말은 아니며, 오히려 진정으로 인간적인 모든 면모를 자기 안에 품고 있고, 고귀한 열정을 숨김없이 다 드러내게 함으로써 가장 감성적인 부드러움과 가장 강렬한 활력이 결합된 자기 본성을 완성해 가며 이를 표현하게 한다. 이 완성을 향한 진전이 바로 이 예술 작품의 영웅적 방향이다.
--- p.81~82

평화와 화해! 영웅은 지금까지 조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쏟아부은 모든 힘, 분노에 찬 복수와 증오가 서린 수천 개의 검과 화살을 하나로 묶어 거대한 손으로 자기 심장을 찌른다. 스스로 가한 최후의 일격으로 거인은 쓰러지고 만다. 평화를 간청하는 여인의 발밑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죽어간다. 베토벤은 코리올란을 이렇게 음향으로 표현해 냈다.
--- p.93

음 언어는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이며, 선율은 음악가가 모든 이의 마음에 감정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절대언어다.
--- p.99

쇼펜하우어는 조형 예술이나 시와는 확연히 다른 음악의 본질을 언급하면서 다른 예술과 구별되는 음악의 위상을 철학적으로 명확하게 인식하고 정의했다. 그는 음악이 개념을 전달할 필요 없이 누구나 바로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로 이야기한 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 p.104

음악과 회화의 효과도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후자에는 깊은 침잠이 있고, 전자에는 극대화된 의지의 자극이 있다.
--- p.114

잠 못 드는 어느 날 밤, 나는 베네치아 대운하를 향해 난 창문 발코니에 나선 적이 있다. 마치 깊은 꿈속에라도 있는 듯, 마법과 같은 수상 도시가 내 앞에 그림자를 드리운 채 뻗어 있었다. 깨어 있던 곤돌라 사공이 부르는 묵직하고 거친 탄식의 외침이 고요한 침묵을 뚫고 들려왔다. … 한동안 엄숙한 휴식이 이어지다가 다시 선율의 대화가 되살아나더니 마침내 하나로 어우러졌고, 선율은 가까이에서만이 아니라 멀리서도 다시금 침묵 속으로 사라져갔다. 꿈같은 이 선율의 밤이 내 의식 깊숙이에 직접 각인되지 않았더라면, 낮 동안에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어수선하고 복잡한 베네치아는 내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을까?
--- p.116~117

이렇듯 음악은 평범한 형식과 관습에 자신을 가둬놓았고, 그래서 괴테가 보기에는 시적 개념의 단일화를 위해 이를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 이런 형식을 가지고도 음악의 가장 깊은 본질을 파고든 것, 이를 실현한 것은 우리의 위대한, 진정한 음악가의 전형이라 할 만한 베토벤의 작품이다. 그는 내면을 향하던 빛나는 천리안을 밖으로 향하게 했고,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그 형식이 지닌 내적 의미를 보여줄 수 있었다.
--- p.124

그런 점에서 볼 때 베토벤에게 영향을 가장 적게 미친 것은 오페라이고, 그에 비해 당대의 교회 음악은 그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 베토벤에게 소나타는 그것을 통해 그가 음향 세계를 바라보고 그 세계에서 우리를 이해시키려고 하는 베일과 같았다.
--- p.128

소나타는 에마누엘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에 의해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음악 형식 법칙으로 확립되었다. 이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음악 정신이 만나 타협한 결과였다.
--- p.128

베토벤의 초기작들이 특별히 하이든을 본보기로 삼았다는 판단은 잘못된 게 아니다. 모차르트보다는 하이든이 그의 천재성이 성숙해 가는 과정에 더 깊이 관여했다. … 그는 자신과 하이든의 관계를 성인과 어린아이 같은 노인네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형식 문제에 관한 그의 의견은 스승과 일치했지만, 형식에 발이 묶여 있으면서도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음악을 제어하기 어려운 악마가 그에게 힘을 발휘해 보라고 재촉했다.
--- p.129~130

그에 비해 베토벤은 일찍부터 용감하게 세상에 저항했고, 그런 기질 덕에 그는 평생 세상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대단한 긍지와 용기로 채워진 자부심이 있었기에, 그는 음악으로부터 향락을 원하는 세상의 경박한 요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냈다. 베토벤은 힘을 잃어가는 취향에 맞서 풍요로운 보물을 지켜내야 했다. 또 그는 음악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예술로서만 자기를 드러내는, 그런 형식을 가지고 깊숙한 음향 세계 내면의 진실을 선포해야 했다. 그 때문인지 베토벤은 언제나 진리에 집착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음악가는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최고의 지혜를 이야기한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은, 그런 그에게 딱 들어맞는 것 같다.
--- p.131

한편 인간 베토벤의 원초적 격렬함은, 그가 인습적인 모든 제약에 대해 몸소 느꼈던 대로, 이런 형태들이 그의 천재성에 가하는 제약을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에 대해 그가 보인 유일한 반응은 자기 내면의 천재성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그의 천재성은 그 무엇으로도, 그 어떤 형태로도 억누를 수 없었고 자유롭게 뻗어나갔다. 그는 현존하는 기악 형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지는 않았다. 후기에 쓴 소나타, 사중주, 교향곡 등은 초기에 쓴 작품들과 구조가 같다. 그런데 후기와 전기의 작품, 가령 F장조 교향곡 8번과 D장조 교향곡 2번을 서로 비교해 보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형식은 거의 비슷해 보이는데 우리 앞에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니 말이다!
--- p.133

베토벤도 음악 작업으로 자신의 생계비를 벌어야 했다. 그러나 삶의 안락한 쾌적함을 보장해 주는 그 무엇에도 끌리지 않았고, 그 결과 그에겐 급하게 작업을 해야 한다거나 사람들이 요구하는 취향에 맞춰야 한다는 절박함이 덜했다. 이렇게 외부 세계와의 관계가 점점 느슨해질수록, 내면세계를 응시하는 그의 시선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자기 내면의 풍부한 자산을 운용할 수 있는 자신감이 점점 커질수록, 그의 의식이 외부 세계와 후원자들을 향해 요구하는 수준도 점점 높아졌다. 베토벤의 후원자들은 이제 그의 작업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방해받지 않고 자신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면 되었다. 그리하여 한 음악가의 인생에서 몇몇 호의적인 귀족이 그의 요구대로 그를 독립적인 존재로 지켜주며 헌신하는 사건이 처음으로 생겨났다. 모차르트에게도 이와 유사한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지만, 그는 너무 빨리 지치고 쓰러졌다. 베토벤에게 허락된 이러한 축복이 온전하게 중단 없이 계속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앞으로 대가의 삶에서 펼쳐질 독특한 조화의 기반이 되었다. 그는 승리감을 맛보았고, 자신이 오롯이 자유인으로서 세상에 속해 있음을 깨달았다. 세상은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신분이 높은 그의 후원자들을 그는 폭군 대하듯 했고, 결국 그들은 그가 원하고 내킬 때 말고는 그에게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 p.142~143

이제 그는 숲, 시냇물, 초원, 푸른 하늘, 쾌활한 군중, 사랑하는 연인, 새의 노래, 구름의 흐름, 폭풍의 굉음, 환희에 찬 고요한 흔들림의 마법을 이해한다. 그가 보고 만들어내는 모든 것에는 밝음이 배어 있고, 그것은 오로지 그를 통해서만 음악에 부여될 수 있다. 음향 본연의 비탄조차도 부드러운 미소가 된다. 세상은 어린아이의 순진함을 되찾았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전원 교향곡〉을 들으면서 우리를 부르는 이 구세주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것, 보지도 못하고 경험하지도 못한 것을 형상화하는 힘은 커지고, 그 힘 덕분에 그것을 직접 경험하고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여기서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미학 개념은 숭고다. 밝음의 효과가 모든 미적 충족감을 단번에 앞질러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 본성을 압도하는 마법 앞에서는 자랑스러운 이성의 저항도 소용이 없다.
--- p.145~146

하이든이 젊은 시절의 스승이었다면, 위대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성인 베토벤 앞에 펼쳐질 예술적 삶의 안내자였다.
--- p.149

베토벤의 구상은 거의 언제나 숭고한 낙천적 정신에서 유래하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 구상은 그가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이후 고통의 세계에서 온전히 벗어난 듯 보이는, 성스러운 고립의 시기에 나왔다. 베토벤의 중요한 개별 작품들에서 고통스러운 분위기가 다시 등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의 내면에서 낙천성이 사라진 결과라고 가정할 필요는 없다.
--- p.157

비명을 지르며 무서운 꿈에서 깨어나는 사람처럼, 그가 거듭되는 절망을 달래고 난 뒤에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 부르짖을 때, 우리는 그의 말을 직접 마주한다. 이때 그가 외치는 말의 의미는 다름 아닌 “인간은 여전히 선하다”이다.
--- p.158

베토벤이 성취한 또 하나의 진보가 있는데, 선율의 품격을 결정적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이로써 순수 기악과의 관계에서 성악은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 p.161

음악을 세계의 본질에 대한 가장 내면적인 꿈 이미지의 발현이라고 부른다면, 셰익스피어는 깨어 있으면서 계속 꿈을 꾸는 베토벤으로 간주할 수 있다.
--- p.169

우리는 이 깊은 위기에서의 깨어남을 기악에서 성악으로의 주목할 만한 도약 ?일반적인 미적 비판의 기준에 반하는 도약 ?에서 접할 수 있다. 앞서 진행한 베토벤 교향곡 9번의 광범위한 탐구도 이 도약에 관한 설명으로 시작했다. 여기서는 무언가 과도한 것, 즉 바깥을 향해 폭발하고픈 강한 강박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무서운 꿈에서 깨어나고 싶은 충동에 견줄 만하다.
--- p.173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맨 먼저 실린 글은 바그너가 27세 때인 1840년에 쓴 단편 소설 「베토벤 순례」다. 바그너는 젊은 무명 작곡가가 자신의 우상인 베토벤을 만나는 꿈을 이룬다는 유쾌한 허구의 이야기에 ‘순례’라는 경건한 제목을 붙여, 절치부심하며 지내던 파리에서 잡지에 발표했다. 힘겹던 시절 스스로를 독려하기 위한 자구책이었을까. 성공한 음악가가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을 빌려, 바그너는 새로운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다. 이 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에세이 「베토벤」은 「베토벤 순례」가 발표되고 30년이 지난 1870년에 쓴 묵직한 베토벤 음악 평론 겸 전기다. 그리고 이 두 글 사이에 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 연주 보고서 및 작품 해설(프로그램), 베토벤 교향곡 3번(‘영웅’)과 〈코리올란 서곡〉의 프로그램이 들어가 있다. (글이 수록된 순서는 발표한 연도순이다.)

베토벤 순례(1840)

바그너가 본격적으로 음악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음악은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이었다. 그때 이후로 줄곧 그를 흠모해 온 베토벤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은 상상의 순례 여행을 그린 소설이다. 이 글을 쓸 당시 바그너는 독일에서 큰 빚을 지고 파리로 도피하여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1839년 말부터 1842년 4월까지). 그때 생활을 위해 잡지에 기고했던 글 가운데 하나다. 바그너의 분신인 무명의 작곡가 B씨가 베토벤을 직접 만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는 여정과 빈에서 벌어지는 해프닝, 베토벤과의 만남을 성가시게 방해하는 거만한 영국인 신사와의 얽힘, 베토벤과의 극적인 만남과 작별, 다소 코믹한 결말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에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었을 바그너는 우상과의 상상 속 만남으로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넣지 않았을까? (최초에 수록된 곳은 음악 잡지 〈라 르뷔 에 가제트 뮈지칼 드 파리La Revue et Gazette musicale de Paris〉 1840년 11-12월호.)
실제로 베토벤이 세상을 떠났을 때 바그너의 나이는 열네 살이었고,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비록 허구지만, 바그너와 베토벤이 나누는 상상의 대화 속에는 바그너 음악극의 이론적 핵심이 될 내용이 담겨 있다. 여기서 그는 베토벤의 입을 빌려 “혼란스러운 창조의 순간에서 생겨난 원초적 감정 자체를 재현하는” 기악과 “인간의 마음과 그 안에 담긴 배타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을 대변하는” 성악의 통합을 역설하고 그 과제를 해결한 “합창이 있는 교향곡”을 언급한다.
--- p.203~204, 「옮긴이의 말」

1846년 드레스덴에서 열린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 보고서(1846)
바그너는 1843년 2월에 드레스덴 오페라 극장의 카펠마이스터로 임명되어, 1849년 드레스덴 혁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체포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그곳에서 활동했다. 1846년 4월 5일 성지 주일 음악회에서 그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지휘했는데, 그때의 경험을 기록한 것이 바로 이 보고서다. 여기에는 이 작품에 대한 음악적 해석뿐만 아니라 음악회를 열게 된 동기, 반대자들을 설득하는 문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구성과 배치, 악기 편성, 음악회 준비와 연습 과정, 연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이르기까지 ‘합창 교향곡’의 연주를 둘러싼 모든 과정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당시 바그너가 연주할 곡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1년에 단 한 번이었고 그 기회를 베토벤 교향곡 9번에 할애하려 했으나, 연금 기금을 관리하던 오케스트라 위원회가 수익성 문제로 반대하자 스스로 필요한 비용을 빌리고 이 곡을 처음 듣게 될 드레스덴 청중의 이해를 돕도록 작품 해설(프로그램)을 집필하는 등 온갖 노력을 쏟는다. 이때 쓴 프로그램은 “곡에 대한 비판적 판단이 아니라, 청중의 느낌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작품을 편안하게 이해하게 하는 일종의 지침서 같은 것”으로,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중요 구절들을 가져와 각 악장을 해설한 글이다. 바그너는 이 해설을 당시 드레스덴의 관보에 미리 실어 청중의 이해를 최대한 끌어올리려 애썼는데, 그 노력이 성공을 거두어 연주회 수입이 크게 늘었고 향후 9번 교향곡을 정기적으로 연주하기로 했다고 보고한다. 이 글은 나중에 다른 지역에서 열린 음악회에서도 사용되었고 크게 호응을 얻었다.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1851),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1852)
1849년 드레스덴을 탈출한 바그너는 1860년대 초 독일 추방령이 해제되기 전까지 스위스 취리히에서 망명 생활을 했고, 1850-55년에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다. 그 시기에 그가 주로 선보인 음악은 자신의 음악과 베토벤의 음악이었다. 이 두 글 역시 그 당시 바그너가 연주회를 앞두고 청중을 위해 프로그램 형식으로 작성한 글이다.

베토벤(1870)
1870년 9월 11일 스위스 루체른에서 발표한 글. 1870년은 베토벤 탄생 100주년이 되던 해다. 바그너는 “위대한 베토벤의 탄생 100주년 축하에 어떤 식으로든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소중한 기회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느꼈기에 베토벤 음악이 지닌 의미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적어보기로” 작정한다. 짧은 머리말, 본문, 미발표 결론으로 구성된 상당히 긴 글이다. 바그너는 이 글을 통해 “음악의 본질에 대한 더 깊은 탐구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하고 “음악 철학을 고찰해 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 특히 1854년에 처음 저작을 접한 뒤 그의 음악 이론에 깊은 영향을 끼친 쇼펜하우어의 이론에 기대어 베토벤의 음악을 성찰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베토벤」은 구성이나 체계가 치밀하지 않고 다소 두서없이 서술되어 있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글이다. 개념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 글에는 바그너의 강렬한 창조력과 예술가적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무렵 그는 20여 년 전부터 작업해 온 〈반지〉 4부작을 완성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고, 이 4부작을 한꺼번에 상연할 축제까지 구상하고 그 장소를 물색하던 중이었다.
바그너는 이 글에서 30년 전 「베토벤 순례」에서 언급한 기악과 성악의 결합이라는 아이디어를 한층 더 발전시키고 확장했다. 베토벤의 교향악적 발전을 셰익스피어의 연극적 발전과 융합시켜 음악과 드라마의 합일을 이룬다는 발상이다. 다시 말해 음악과 드라마가 서로 일치하고 서로를 포함하며, 음악 안에 이미 드라마가 담긴 방식이다. 그가 보기에 베토벤 교향곡 9번은 이를 구현해 낸 “가장 완벽한 드라마”였다. 그리고 바그너는 철학자 쇼펜하우어를 안내자로 삼아 그의 이론을 도입하여 음악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했다. 이 이론에 따르자면, 음악의 본질을 가장 깊숙이 파고든 이가 바로 베토벤이고, 삶의 근원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 어법을 발전시킨 이 또한 베토벤이다. 세계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도록 인도함으로써 음악을 최고의 숭고한 예술로 격상시킨 이도 베토벤이고, 더 나아가 깊이 타락한 인간 정신을 구원할 이도 베토벤이다.
--- p.205~206, 「옮긴이의 말」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1770년 12월 16일, 독일 본의 “한 초라한 집에 딸린 보잘것없는 다락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네 살 때, 그를 몇 시간씩 하프시코드 앞에 꼼짝 못하게 잡아두거나 바이올린과 함께 방에 가두고 죽도록 많이 연습시키곤 했다. 하마터면 그는 예술에 지레 질려버릴 뻔했다.” 열일곱 살에 믿고 의지하던 어머니를 여의고 술주정뱅이 테너였던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으로서 두 동생의 교육까지 떠맡아야 했다.” 스물두 살 되던 해에 고향인 본을 떠나 음악의 대도시 빈에 정착했다. 스물다섯 살에 피아니스트로서 공식 데뷔했고 첫 작품을 출판했으며 귀족 후원자가 애호가들이 생겨날 정도로 승승장구하며 이후 어마어마한 작품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제는 정복자라 할 위대한 비르투오소요, 명석한 예술가요, 살롱의 사자요,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는 사람이자, 감정 이입을 불러일으키는 사람, 자신을 필요로 하지만 그 자신은 우아하고 감성적이고 세련된 이 세계를 경멸하는 서른 살 베토벤”(195쪽)에게 시련이 닥쳐온다. 다름 아닌 난청. 서른 살이 되던 1800년 무렵, 이 증상은 한층 악화된다.

1800년에서 1802년 사이에 〈‘전원’ 교향곡〉에 나오는 폭풍처럼 갑자기 밀어닥쳐 그를 괴롭힌 병은 그의 사회생활을, 애정사를, 예술을, 즉 그의 전 존재를 한꺼번에 덮쳤다. 우리는 그가 피워낸 꽃에서 젊은 하늘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 모든 것이 이 병의 영향을 받았다. 그 어느 것도 예외일 수 없었다.
--- p.192~193

누구나 귀가 들리지 않게 되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물며 명민한 청각을 지녔었고 가슴속에 표현하고 싶은 음악이 가득했던 음악가가 말해 무엇 하리. 여기에다 실연의 아픔이 겹치는데, 서른 무렵부터 결혼하려는 의지가 강했지만 역시 난청으로 파생된 문제?순회 연주자로 활동하여 생계를 꾸리기가 불가능해져?로 결혼도 불가능해진다. 절망에 빠진 베토벤은 이른바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작성한다.

오! 얼마나 힘들게 내가 가진 장애라는 서글픈 현실에 부딪히고 또 부딪혀 좌절해야 했는지 몰라!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단다. “좀 더 크게 말해 봐요, 소리쳐 봐요. 난 귀가 먹었으니까요!” 아! 남들보다 내게 더 완벽해야 했던, 전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소유했던 청각, 나처럼 음악 하는 사람들이 거의 가져보지 못한 완벽성에 장애가 생겼음을 어떻게 밖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겠니? … 난 혼자였지. 완전히 혼자였어. … 그러고 나니 절망에 빠졌단다. 하마터면 자살할 뻔했지. 오직 예술, 그것만이 나를 붙들어 주었어. 아! 내가 맡은 과업을 완수하기 전엔 이 세상을 하직할 수 없을 것 같았단다.
--- p.92~95

나중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의 아들인 조카 카를의 양육권 다툼 및 조카의 반발로 크게 상심했고, 만년에는 여러 질병과 경제적 궁핍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완전히 듣지 못하게 된 뒤로는 인간관계도 거의 끊어졌다. 이렇듯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57년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 베토벤은 깊은 절망과 고통에 여러 차례 맞닥뜨린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목덜미를 움켜잡고 바닥으로 곤두박질하게 만들려는 운명의 손아귀에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다. 죽기 직전까지도 그는 내면의 소리에 끝없이 귀 기울이며 그것을 음악에 담아냈다. 그러기에 그의 음악은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 곁에 남을 것이며, 그의 생애는 우리에게 한없는 위안을 줄 것이다.

친애하는 베토벤! 그의 예술적 위대함을 칭송하는 사람이 참 많다. 그렇지만 그는 첫손 꼽히는 음악가 그 이상이다. 그는 근대 음악의 가장 영웅적인 힘이다. 그는 고통 속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의 가장 위대하고 친한 친구다. 우리가 세상의 비참함으로 슬픔에 빠질 때, 그는 자식 잃은 어머니의 피아노 앞에 앉아 체념한 듯 하소연하는 음률로, 흐느끼는 어머니를 위로하듯 말없이 곁에 다가오는 사람이다. 그리고 선과 악의 용렬함을 가지고 쓸데없이 벌이는 끝없는 논쟁으로 피로가 덮쳐올 때, 이 의지와 믿음의 바다에 몸을 담근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좋은 일이다. 그의 곁에 있으면 덩달아 힘이 나고 투쟁의 행복이, 신을 느끼는 의식의 도취 상태가 그대로 전해진다.
--- p.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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