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트로트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트로트 가수 팬들의 흥바람 열풍이 분다. 나의 노래 너의 노래가 없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소리 지르고 박수 치고, 때로는 눈물도 흘린다. 기이한 현상, 평세락平世樂, 난세분亂世憤, 망국탄亡國嘆. 평화로운 시대에는 즐거운 노래, 어지러운 시대에는 분통 터지는 노래, 나라가 망한 때는 한탄의 노래가 불린다. 2020년 트로트 열풍, 대중들은 가슴속에 쌓인 분통이 트로트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폭발하고 있다. 어찌하랴, 이 통분痛憤의 열기를.
1930년대 작은 옹달샘에서 졸졸거리던 시냇물 같던 유행가(트로트의 어머니 같은)는 인기가수 중심으로 불렸다. 나라를 빼앗긴 통분과 민족의 처절함을 대신했고, 대중들은 따라 부르면서 울분을 달랬다. 내 나라에 살면서 남의 나라 통치를 받던 식민植民의 통곡痛曲. [나그네 설움], [목포의 눈물], [홍도야 우지 마라]. 이렇게 흘러 1950년까지 잇는다. [가거라 38선], [신라의 달밤],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 정거장], [한 많은 대동강], [꿈에 본 내 고향], [봄날은 간다]. 고복수, 남인수, 이난영, 황금심, 백설희, 백난아, 백년설, 진방남, 현인…. 18번(내가, 혹은 가수가 제일 잘 부르는 노래 대명사) 시대의 시작이다.
1960년대 트로트라는 말이 우리 대중가요, 유행가의 한 갈래를 잡는다. 해방광복·미군정통치·6·25전쟁을 거친 대중들 가슴속의 한과 전쟁의 상흔과 실향과 망향과 이별의 멍 덩어리가 유행가화 된다. 토색土色·왜색倭色·양색洋色이 혼융된 신토색新土色 같은 한류韓流라고 해야 대중문화예술 풍류의 자존심이 살지니라. 회오리 돌풍 같은 정치적인 변화 속에서 히트곡 중심의 시대가 이어졌다.
권위와 낭만의 충돌과 마찰, 그렇게 1980년대까지 이어온다. [동백 아가씨], [마포종점], [배신자], [돌아가는 삼각지], [아침이슬], [고향역], [님과 함께], [왜 불러], [돌아와요 부산항에], [곡예사의 첫사랑], [낭만에 대하여], [창밖의 여자], [잃어버린 삼십년]. 이미자, 은방울자매, 패티김, 배호, 양희은, 나훈아, 남진, 조용필, 송창식, 최백호….
1990년대 보통사람 시대, 전통가요 부활의 꽃이 핀다. 트로트 무풍지대가 펼쳐진다. 금지곡이 완전 해금된다. 역사 속의 인물이 유행가 트로트의 모티브가 된다.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이 깃발을 흔들면서 세대 간의 갈등도 생기고 간극間隙도 벌어진다. 심수봉, 윤수일, 혜은이, 주현미, 김연자, 현철, 송대관, 설운도 등이 박상철, 장윤정, 박구윤, 신유 등과 쌍방의 깃발을 흔든다. [그때 그 사람], [사랑만은 않겠어요], [감수광], [신사동 그 사람], [아모르 파티], [내 마음 별과 같이], [해뜰날], [사랑의 트위스트], [황진이], [어머나], [뿐이고], [시계 바늘]…. 이러한 두 갈래의 깃발은 2012년을 기점으로 한 덩어리로 화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조용필의 [헬로], [바운스]가 분기점이다. 그렇게 2010년대 후반까지 이른다.
2019~2020년 13월의 트로트 꽃이 만발했다. 종편 TV에서 깃발을 흔들어서 지상파 프로그램으로 천이되는 기현상이 연속되고 있다. 열풍시대다. 열풍熱風은 팬덤fandom이다. 특정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과 사람들의 그룹이다. 특정 노래보다 특정 가수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 가수가 부르는 노래가 덩달아 좋은 것이다. 너도 나도 그 가수에게 ‘좋아요’ 표를 찍는다. 재미와 흥미 위주의 프로그램이 연출된다.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까. 유행가 트로트가 오선지五線紙 밖으로 튀어나와서 무대 위에서 광풍을 불러일으킨다. 공연장이나 안방에서나 덩실덩실. 1956년 흑백TV, 1980년 컬러TV 방영 이래 60여 년 만에 트로트가 계절을 가리지 않고 피는 꽃으로 진화되었다. 송가인, 정미애, 홍자, 정다경, 김나희, 임영웅, 영탁, 이찬원, 김호중, 정동원, 장민호, 김희재, 이들이 트로트 르네상스 주인공들이다.
노래는 세상과 통한다. 유행가, 트로트는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삶을 인류학적으로 빚어놓은 막사발이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삶을 씨줄 날줄로 얽은 돛단배다. 유행가는 탄생 시점을 현재로 보전하는 보물, 새로이 탄생하는 유행가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산물. 그리움이 영글면 사랑이 되고, 사랑이 익으면 별이 된다. 이 별은 사랑이 식으면 은하수 물결을 지나 사라지고, 가슴속에는 한이 서린다.
가슴속에 아물린 이 한恨은 무엇으로 화化할까. 그것은 무서리 속에 피어나는, 계절을 잊은 13월의 달맞이꽃 같은 노래로 탄생한다. 그 꽃은 향기香氣를 머금은 감동의 흥기興氣로 세상을 울리고 웃긴다. 유행가의 마력魔力이고 매력魅力이다.
유행가는 작사·작곡·가수·상황·시대·사람·사연을 요소로 하는 1곡7재一曲七材의 종합예술품이다. 한 곡 한 곡이 탄생시대의 융합물이고, 그 곡과 곡을 시대별로 얽어 가면 대하 역사물이 된다. 그래서 대중가요, 유행가를 풀어서 음유하면 역사의 타래가 되고, 그 타래 속에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함의하는 신애국사상도 기氣와 혼魂과 얼?로 혼융된다. 또한 가삼백만인우歌三百萬人友다. 노래 300곡을 음유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의 벗이 될 수 있다.
흘러간 노래, 흘러온 노래, 흘러갈 노래는 역사의 강물 위에 띄워진 방부초목防腐草木으로 얽은 돛단배다. 한 곡조 한 가락이 진흙으로 빚고 유약을 바르지 않은 상태로, 대중들의 인기 온도로 구워낸 투박한 막사발이다. 이 돛배와 막사발 같은 트로트가 대한민국을 덩실거리게 하고 있다. 흘러온 옛 노래·흘러갈 새 노래가 열풍 속에 풍성거린다. 부모세대·자녀세대·손주세대를 아우르는 수중지월水中之月(물속에 잠긴 달)·공중지살空中之?(허공중에 쏘아올린 소리 화살) 같은 히트곡으로.
Miss & Mr 트롯·가요베스트·트롯신·보이스트롯·품바·복면가왕·히든싱어·사랑의 콜센터 등등. 이러한 트로트 마당의 노랫말·멜로디·가창·무대장치·음향효과·통신설비·전파·진행·의상·홍보·마케팅·프로그래밍·안무·율동 등이 대중적인 감흥 온도를 오르내리게 하는 승강昇降의 주요 변수다. 3분 안에, 인생의 기승전결. 10대부터 100대까지 덩실 더덩실~ 신·구세대가 어울려 오랜 세월 흘러온 옛 노래를 리메이크했다. 신·구세대가 같은 무대에 서서 오랜 세월 흘러갈 새 노래를 덩실거린다. 유행가 트로트가 오선지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러한 노래들 한 곡 한 곡을 해설하여,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책 제목은 『곡예사의 첫사랑』으로 정했다. 오늘날은 호모사피엔스를 송사피엔스Song sapiens로 불러도 좋을 듯하다. 그 사람들은 저마다 곡예사다. 첫사랑을 가슴 방에 품고 사는 인생곡예사.
--- 「책머리에: 트로트 르네상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