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련된 사람도 아니고 스스로 건축 재능이 뛰어난지도 모르겠다. 다만 호기심이 많고 그 호기심을 실천하는 데는 꽤 재주가 있다. 그래서 건축은 내게 정말 큰 즐거움을 주는 일이다. 적어도 건축을 하는 동안은, 그것이 실체화되기 이전까지는 기나긴 상상의 시간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빛이 떨어질지, 질감이 어떨지 매우 집요하고 끈질기게 상상한다. 그 상상이 공간으로 실체화되고 삶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야말로 중독성이 있다.
--- p.18, 「사소하지만 진지한 소통의 기술 - 박지현, 우승진, 조성학」 중에서
나는 늘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비유에스의 선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후암동 프로젝트는 외형에서 무채색이 느껴졌거든요. 내게 비유에스는 이미 만족스러운 형태나 이미지를 갖고 있는 팀인데, 그 팀의 건축 작업이 진화하고 있다는 게 너무 대단해 보이는 거예요. 성인의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요? _한승재
--- p.84, 「어떻게 하면 오래도록 함께 일할 수 있을까 - 박지현, 우승진, 조성학+한승재」 중에서
처음에는 피식 웃음을 자아내는 ‘버스’라는 이름은 뭔가 대단한 건축적 야심을 드러내는 듯 거창하고 어려워 보이는 ‘규정되지 않는 스케일로’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두 말은 일맥상통한다. 참 잘 지은 이름이다. 비유에스의 건축이 그들의 이름처럼 묘하게 남았으면, 그리고 더 묘해지면 좋겠다. 그리고 때로는 비유에스의 낯설게 보기가 낯설게 하기의 층위로 넘어가 조금은 더 위험해지면 좋겠다. 일상을 향한 집요한 천착이 가끔은 예술적 야심으로 발현돼 우리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힘을 가지면 좋겠다.
--- p.106, 「‘버스’와 ‘규정되지 않는 스케일로’ 사이 어딘가 - 현명석」 중에서
나는 나의 건축이 고요함과 담담함의 세계 내에 있으면 좋겠다. 설령 지금은 아니어도 다른 이에게 그 세계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건축을 언젠가는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건축이 스스로 깊이를 가지고 폭은 넓어져 다수가 공감하고 그 감각이 선명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 p.116, 「담담함 너머의 것 - 김세진」 중에서
건축을 시작하고 지금도 건축가로 살고 있는데 늘 제자리를 뛰고 있는 느낌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는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 드는 생각은 제자리를 뛰어도 최소한 영리하게는 뛰어 보자는 것입니다. 옷이라도 가볍게 입고……. (웃음)_김수영
--- p.180, 「근본적인 물음으로 닿고자 하는 건축 - 김세진+김수영」 중에서
김세진의 건축은 무심한 듯 무표정하고, 수줍은 듯 무덤덤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절제된 치열함과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 스펙터클의 사회 안에서 섬세하게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기 드보르(Guy Debord)가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자본주의 사회의 중요한 특징을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고 비-참여적인 스펙터클만이 지속되는 현상으로 포착한 것은 김세진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관점과도 연관성을 갖는다. 이미 졸업작품에서부터 나타났던 그의 건축의 중요한 주제는 시간과 삶에 대한 것이다.
--- p.192, 「스펙터클에 저항하는 깊이의 건축 - 장용순」 중에서
나는 주로 통찰, 직관, 직감을 통해 접근하는 방법으로 작업을 해왔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에 등장하는 화가 장승업은 자연을 수없이 관찰하고 탐구하는 수련을 통해 자신만의 화필과 시각을 얻는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다. 자연에 둘러싸인 사무소인지라, 아침 일찍 도착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여러 자연 현상들을 관찰하는 것을 즐긴다. 그 관찰이 작업에 영감을 준다. 〈Y하우스〉는 우리나라 산의 속성을 표현하는 방법에서 출발했고, 〈클리프하우스〉는 나무의 뿌리 시스템에서 영감을 받았다. 〈닫힌집, 열린집〉은 시골 풍경인 볏단을 구성하는 원리에서,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논이 구성되는 방식에서 출발했다.
--- p.202, 「자연의 원리와 시간을 담은 디자인메이드 - 정웅식」 중에서
그의 건축은 과감하다. 전통건축의 미덕 중 하나로 자연 앞에서 웅크려야 한다고 배웠던 우리에게는 너무나 과감하고 과격하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단순하고 과감한 형태로 ‘극적인 균형’을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을 해치지 않는 건축으로 ‘평형’을 지향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 해석이었다면, 정웅식의 ‘균형’은 전통과 환경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이고, 우리가 몰랐던 건축의 한 방법이다.
--- p.276, 「균형의 건축 - 임성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