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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번의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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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2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153*224*20mm
ISBN13 9788968497537
ISBN10 8968497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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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모탕 미술관과 퓌토

파리에서 첫 밤을 보냈다.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다. 그동안의 여행 습관 때문인 것 같다. 10박 12일간의 발칸 패키지여행을 마친 어제, 함께 했던 일행들과 베네치아 공항에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들은 귀국길에 오르고, 우리 부부는 파리 행 비행기를 탔다. 헤어질 때 김동한 어르신으로부터 받은 커피믹스와 어젯밤 집 앞 슈퍼에서 산 바게트와 요구르트, 바나나 등으로 아침을 먹었다. 호텔에서 먹던 식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 괜찮은 식사였다.
오늘의 첫 행선지는 마르모탕 미술관.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산책 삼아 서서히 걸어갔다. 가는 길에 트로카데로에서 에펠탑을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난 8년 만이고 아내는 13년 만이다.
폴 두메 거리를 따라 걸었다. 라 뮈에트 지하철역을 지나니 조각상 하나가 눈에 띄었다.

“어~ 저것 뭐지?”
“뭔지 가서 한번 볼까?”

가까이 가서 보니 17세기 우화 작가로 잘 알려진 라 퐁텐(1621-1695)과 그의 우화 속에 등장하는 까마귀와 여우가 함께 조각되어 있다. 누가 언제 조각하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미술관 가는 길에 뜻하지 않게 만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파리에서는 종종 뜻하지 않게 길거리에서 예술 작품과 마주치게 된다. 파리가 지닌 매력 중의 하나다. 조그마한 공원을 지나니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미술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마르모탕 미술관(Musee Marmottan Monet)이다.
‘마르모탕’은 기부자(가문)의 이름이다. 폴 마르모탕은 자신과 그의 아버지 쥘 마르모탕이 수집한 회화, 조각, 가구, 도자기 등의 컬렉션을 저택과 함께 프랑스 예술 아카데미에 기증하였고, 아카데미는 1934년 그의 이름을 따서 미술관을 설립하였다. 그 후로는 후원자들의 기부를 통해 지속적으로 컬렉션의 규모를 늘려나갔다. 1957년 인상주의 추종자 중의 한 사람인 조르주 드 벨리오 박사의 컬렉션(마네, 모네, 피사로, 시슬레, 르누아르 등이 그의 환자다)을 그의 딸, 도노 몽쉬로부터 기증받았다. 1966년에는 모네의 둘째 아들 미셸 모네가 그의 아버지의 많은 회화 작품들을 기증하였다. 1980년에는 아트 딜러였던 조르주 윌덴스타인이 수집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희귀 채색 사본 컬렉션을 그의 아들 다니엘 윌덴스타인이, 1990년대에는 19세기 여류 화가였던 베르트 모리조의 후손들이 모리조의 작품과 가구 등을 기부하였다. 그 이전에 모리조도 직접 자신의 작품들을 이 미술관에 기부한 바 있다. 이처럼 마르모탕 미술관은 화가나 화가의 가족, 후원자들의 기부를 통해 컬렉션의 규모를 늘려가면서 자신만의 특성을 구축할 수 있었다.
마르모탕 미술관은 모네와 인상주의 화가들, 모리조의 컬렉션으로 이름이 높다. 이 미술관은 모네와 모리조의 작품을 포함하여 마네, 드가, 시슬리, 피사로, 르누아르 등 300점이 넘는 인상파와 신인상파의 작품들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면 단연 모네의 〈인상, 해돋이〉(1872)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센 강 하구에 있는 노르망디의 항구도시 르아브르에서 그려졌다고 추정된다. 모네는 1874년 4월 15일, 사진작가 나다르가 제공한 그의 스튜디오에서 첫 전시회를 개최하고 이 작품을 출품하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작품을 직접 보고 싶었다. 내가 제일 먼저 마르모탕 미술관을 찾은 이유도 지금까지 화보에서만 보아왔던 모네의 이 그림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미술관에는 모네의 발자취를 순차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수련〉, 〈생라자르 역〉 등과 같은 그의 다른 작품들이 한 공간 안에 배치되어 있는데, 〈인상, 해돋이〉만은 단독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이 작품을 보고, 또 보고, 또 보았다. 서서도 보고, 앉아서도 보며 그림이 마르고 닳도록 마음껏 보았다. 화보에서 보았던 그림보다 실제 그림은 더 밝은 느낌이었다.
모네는 순간의 느낌과 감각을 중요시한 화가였다. 〈인상, 해돋이〉 역시 해가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순간에 나타나는 빛의 변화와 물의 출렁임 등의 인상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던 모네가 재빠른 붓질로 그려낸 그림이다. 해가 뜨는 현장을 포착하고자 자세한 묘사가 생략되어 태양도, 하늘도, 배도, 어부의 모습도 모두 명확하지 않다. 고르지 못하고 듬성듬성한 붓질과 정확하지 않은 묘사 때문에 그때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 그림은 대충 그리다 만 것 같은, 마치 스케치만 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그림이 세상에 첫선을 내보였을 때 비평가인 루이 르루아가 풍자신문 〈르 샤리바리〉 1874년 4월 25일자에 모네의 〈인상, 해돋이〉 작품을 “그 인상만큼은 확실”하지만 “유치한 벽지보다 못하다”라고 악평을 쏟아냈다. 루이 르루아 외에도 많은 평론가들에게 악평을 받았는데, 당시 아무도 훗날 이 그림이 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그림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명화들이 동시대인들의 몰이해와 충격 속에서 탄생되듯 이 그림은 후에 인상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지하층에서는 마리 로랑생(1883-1956)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화가이자 시인이었고, 한때는 아폴리네르의 연인이었던 마리 로랑생. 그림과 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꿈 많고 고독한 삶을 산 여자. 마리 로랑생은 1883년 파리에서 멜라니-폴린 로랑생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1902년 여성들에게는 무료로 개방된 윙베르 아카데미의 오후반에 등록하여 소묘를 배웠고, 그곳에서 피카비아, 르파프, 브라크 등을 만났다. 1906년 브라크의 소개로 피카소를 알게 되었고, 다음해에 피카소의 소개로 몽마르트의 바토-라부아르에서 아폴리네르를 만났다. 두 사람은 이내 사랑에 빠져 서로의 예술 세계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정신적 반려자가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실패로 끝난다. 1915년 6월 30일 마들렌 파제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폴리네르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1907년에 화가인 한 처녀에게 찬탄을 넘어서지 않는 일종의 미학적 호감을 느꼈고, 아직도 여전히 그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 그 상태가 1913년까지 계속되다가 그때부터 그녀는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마리 로랑생이다. 아폴리네르와 6여 년의 사랑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에 내재한 영감과 독창적인 재능을 깨닫게 된 마리는 이 기간 동안 그녀의 그림 중 가장 뛰어난 작품들을 생산하였다. 그녀는 1907년 〈화병 속의 꽃〉이라는 작품을 앙데팡당 전에 출품하였고, 1912년에는 파리에서 들로네와의 공동전시회를 시작으로 바르셀로나(입체파전), 쾰른, 암스테르담(현대예술전) 등에서 전시회를 개최하여 재능을 인정받고 명성을 얻었지만, 사랑은 이루지 못하고 1914년 아폴리네르와 결별을 맞이했다. 그 후 그녀는 돌연 독일 사람인 오토 폰 바트겐과 결혼해 버린다. 얼마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일인으로 국적이 바뀌었던 마리는 더 이상 조국 프랑스에 발붙일 수 없는 신분이 되고 말았다. 그녀가 귀국을 허락받은 때는 1920년, 그녀가 37살 되던 해였다. 아폴리네르는 전쟁 중에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귀국한 이듬해에 마리는 독일에 있는 남편과도 이혼하였다. 이후 세상을 떠나기까지 30년 이상의 세월 동안 그녀는 여러 차례의 만남과 이별을 겪으면서도 변함없이 그림에만 몰두했다. 그녀를 열광시킨 것은 오직 그림밖에 없었다.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던 마리 로랑생. 그녀는 순간을 영원처럼 강렬하게 살았던 당대 최고의 여류 화가였다. 마리 로랑생은 자기가 죽으면 하얀 드레스를 입혀주고, 붉은 장미꽃과 옛 연인의 시집을 가슴에 얹어 묻어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다.
사후 세계에서까지 진정 사랑했던 이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서였을까? 그녀에게 가장 아픈 것은 ‘진통제’(Le Calmant)라는 시에 쓰인 것처럼 연인을 잊고 연인으로부터 잊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진통제

권태보다 더한 것은
슬픔

슬픔보다 더한 것은
불행

불행보다 더한 것은
괴로움

괴로움보다 더한 것은
버림받은 것

버림받은 것보다 더한 것은
외로움

외로움보다 더한 것은
떠도는 것

떠돎보다 더한 것은
죽음

죽음보다 더한 것은
잊히는 것

뜻하지 않게 그녀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 좋았다. 특별전의 매력이다. 찬찬히 음미하며 작품들을 감상했다. 로랑생은 주로 여자, 꽃, 동물 등을 주요 소재로 삼아 그렸는데, 그녀의 작품들은 원근감이 별로 없는 평면적 화폭 구성이 특징이다. 형태가 단순하고 파스텔 톤의 감미로운 색채 배합이 두드러진다. 거기에 우수에 찬 눈매를 가진 인물들, 그 인물들이 꿈꾸는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인간의 애정을 갈구하는 듯한 표정의 동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그녀 작품의 특징이다. 마리 로랑생의 특별전인데 그녀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샤넬의 초상〉은 보이지 않았다. 아쉬웠다.
미술관을 나오니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있었다. 작품을 감상할 땐 배가 고픈 줄도 몰랐는데 밖에 나오니 허기가 확 느껴졌다. 근처 제과점에서 참치 샌드위치와 콜라를 사서 미술관 주변에 있는 파리의 최첨단 패션거리를 걸으며 먹었다. 눈은 보는 즐거움의 호사를 누리고, 입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하니 여행하는 즐거움이 배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파리에서는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는 데 체면치레를 할 필요도 없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좋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길거리 아이쇼핑을 즐기는 사이 어느새 숙소 앞에 다다랐다. 미술관을 관람하느라 피곤함이 몰려들어 잠시 숙소에서 쉬었다. 어느 정도 에너지가 충전되자 다시 힘을 내서 퓌토(Puteaux)에 가보기로 했다.
퓌토는 1986년 9월, 처음 파리에 도착하여 19구 벨빌(Belleville)의 차이나타운에 스튜디오를 구하기 전까지 두어 달을 보낸 곳이다. 지하 1층에, 지상 2층의 아담한 정원이 딸린 전원주택이었다. 집주인이 사는 1층에는 욕실과 세탁실이 있었고, 지하에는 식당이 있었다. 우리가 살던 2층 방에는 세면대가 있어 양치는 할 수 있었지만 샤워를 하려면 1층으로 내려가야 했다. 또 밥을 해먹기 위해서는 온갖 양념과 식기도구를 쟁반에 들고 지하층까지 내려가야만 해서 생활하는 데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방값이 쌌기 때문에 가난한 유학생인 우리는 그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파리 근교에 위치하고 있는 퓌토는 주변 여건이 좋고, 공기까지 좋아 전원주택이 많은 부촌지역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정원이 있는 프랑스 정통의 2층 집에서 집값을 싸게 내며 살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집주인은 70이 넘은 노부부였다. 이분들은 삶이 너무 외로워서 젊은 사람들에게 싼값에 방을 세주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생활하면서 삶의 활기를 얻고 싶어 했다. 돌이켜보면 집주인이었던 노부부와 그들의 가족을 통해 우리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프랑스의 전통과 문화를 접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생활한지 얼마 안 돼서 크게 아팠던 적이 있다. 2년 3개월의 군대 생활이 끝나자마자 진도와 광주, 서울을 오가며 유학 준비로 정신없이 보내다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제대 한 달 만에 프랑스까지 날아온 후유증이었다. 그때 나는 무엇을 먹기만 하면 토해 완전 탈진 상태가 되었다. 집주인이 병원을 소개해 주었지만 아직 의료보험증이 없어 갈 수가 없었다. 1주일 정도를 끙끙 앓다 왠지 한국 음식을 먹으면 나을 것만 같아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한국 식당을 찾아 ‘비싼’ 한국 음식을 먹었다. 1주일의 생활비가 한 끼 식사비로 지불되었다. 그런데 다행히 한국 음식을 먹고 난 후 거짓말처럼 몸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프랑스 체류를 위한 일종의 고된 신고식을 치른 셈이었다. 그 당시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 집에서 빨리 벗어나고만 싶었는데 지금은 시간이 갈수록 가장 그립고 생각나는 곳이 되었다.
16구 숙소 근처 빅토르 위고 광장의 지하철역에서 표를 샀다. 퓌토는 파리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지만 교통이 편리하지는 않다. 전철과 RER가 다니지 않아 라데팡스까지 가서 퓌토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퓌토로 가는 표를 사려고 역에 있는 창구로 가니, 창구의 직원은 안내만 해 줄 뿐 표를 팔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표는 창구 앞에 있는 승차권 발매기에서 사라고 했다. 처음 접하는 기계라 사용법이 낯설어 기계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고 있었다. 우리를 지켜보다 못해 답답했던지 창구 여직원이 나와 직접 승차권 발매기 이용법을 설명해 주면서 표를 끊어주었다. 파리에서 보기 드문 친절한 직원이었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개선문까지 가서 1호선으로 바꿔 타고 종점인 라데팡스에서 퓌토행 기차를 탔다.
1986년 9월 25일. 파리에 처음 도착하던 날, 아내와 퓌토를 간다면서 얼떨결에 행선지가 다른 기차를 타 도중에 되돌아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엉뚱한 방향으로 내달리는 낯선 기차 속에서 행여나 길을 잃어버리진 않을까 얼마나 두려웠던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퓌토에 정착하자마자 난 곧장 파리 3대학 어학연수 과정에 등록했다. 퓌토에서 기차를 타고 라데팡스까지 가서 RER를 타고, 개선문에서 다시 지하철로 바꿔 타며 어학연수를 받으러 다녔다. 퓌토행 기차를 타고 보니 집과 어학원으로 오가는 길에 프랑스어 불규칙 동사나 기본적인 회화 문구를 외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는 프랑스에만 오면 프랑스어는 저절로 잘 터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한 달이 다 가도 나는 벙어리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밤에 퓌토 역에 내리면 저 멀리 아름다운 조명을 반짝이며 황홀한 야경을 뽐내는 에펠탑이 보였다. 그때 전 세계인의 로망이 살아 숨 쉬는 낭만의 에펠탑을 보면서 늘지 않는 내 프랑스어 실력에 나는 얼마나 많은 한숨을 지었는지 모른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7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이제 난 불문과 교수가 되어 이곳을 다시 찾아왔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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