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대면의 시간, 타자를 만나고 시공간을 만나는 일이다. 길든 관습에서 벗어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길트기 행위이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타자가 존재하기 때문이고, 타자와의 관계성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보고, 듣고, 즐기고, 사귀기 위하여 인간은 여행이란 채널을 가동하는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민낯을 보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접하면서 나를 객관화시킬 기회이다. 타지에서의 삶은 일상의 가면이 벗겨져 지극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낯익은 사람의 낯선 모습을 본다. 먼발치에서 좋게만 보였던 사람이 그것이 아님을 보았고, 선입견으로 판정한 내 생각이 편견이었음도 알았다.
타인의 행동을 보면서 짐짓 보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므로, 사람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보게 되고 그 상대에 나를 비추어 관찰한다. 그러기에 여행은 눈을 뜨는 발견의 여정이며 생각을 낳는 산파의 시간이라 해야 하겠다. 대립하는 것들을 기쁨으로 연결하려면 이원성, 다원성을 필수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도 새삼 깨닫는다.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듯 타인에 비친 나를 본다. 거울은 외면뿐 아니라 내면의 상태를 비추는 창이기도 하다. 거울을 단순히 사물, 그러니까 물리적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유리막 정도로 간주하면 그 사람은 거울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나 스스로는 제대로 볼 수 없지만, 타인을 거울에 비추어 그 거울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를 성찰하는 작업이다. 외출할 때 거울 앞에서 화장한다. 밖에서도 한두 번은 거울을 본다. 그 봄은 외관의 매무새 확인으로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 내면은 별로 점검하지 않았다. 타인의 거울에 나의 단면을 속속들이 비추어 보자.
--- 「거울속의 거울」 중에서
여행은 박제화된 일상의 탈출이다. 내 안에 물기가 말라갈 무렵 낯선곳의 물기를 빨아들여 목을 축이고 갈증을 달래어야 내일을 또 힘차게 살 수 있다. 짐을 꾸리며 설렘을 가방 안에 하나하나 채워나간다. 손꼽아 하루하루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그 과정도 여행의 한 부분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일상의 권태를 풀기 위한 수단으로 여행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여행은 마음의 잠을 재워주는 행위이다. 우리의 마음도 지칠 때는 잠이 필요하다. 마음속에 잡다한 것들을 하나로 편집하는 일이 잠자는 사이에 이루어진다. 어지럽고 복잡하고 자잘한 것들을 여과시킬 수 있는 여행, 여행 기간에는 내 몸에 침전된 과거나 미래를 끌어내 현재의 시간에 데려다 놓는다. 아무리 복잡한 것도 아무것도 아닌 듯 매듭이 풀리고 단순화되어 즐길 수 있다.
--- 「여행 하마하마 춤춰라」 중에서
몽골에 들어서니 바람이 먼저 마중을 나왔다. 안녕 허둥지둥 인사를 한다. 바람은 무시로 불고 불어가면서 훠이훠이 제 자유를 누리다가 작년에 휭 다녀갔던 내가 아련했던지 격렬하게 껴안는다. 몽골의 바람과 초원과 야생마를 사랑하게 된 나를 기억하고 있었음이다. 나 또한 1년만의 재회에 두 팔 벌려 포옹을 했다. 홀로 절대를 향해 불어가는 바람도 가끔은 멈추어 서서 나 같은 사람을 알은체해주니 고맙기 이를 데 없다.
바람을 만나 바람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바람이 된다. 어느새 새 몸뚱이를 받아 내가 아닌 내가 되어 있다. 바람의 길이 나의 길인 양 바람이 살랑대는 꽃길이 전생의 어느 한 기간 내 영혼이 머문 것처럼 편안하다.
여기 몽골에서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훨훨 날고 싶은 본능이 작동한다. 지금 내게는 무인도에 갇힌 듯 나를 에워싸고 있는 초원, 사막, 꽃, 노을, 별 등등 자연만이 존재한다. 그 속에 낮과 밤도 들어있어 낮의 밝음에서 흡입하여 확장하고, 밤의 어둠 속에 그들을 여과하고 발효시킨다.
--- 「몽골은 왜 나를 유혹하는가」 중에서
철도와 고속도로가 아닌 오솔길이 좋아지고, 어지간한 것은 건너뛸 수 있는 너그러움도 키워졌다. 어두운 터널이 오히려 빨리 도달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고, 직선이 행복의 지름길만은 아니었다. 먹구름 속에 태양이 숨어있었음이다. 오래 걸어온 내 길에는 몇몇 반질반질 윤나는 나만의 길도 만들어졌다. 한데, 방치되어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은 곳도 있다. 서로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 사람의 관계가 소원해지듯 길도 머물러야만 유지되는 것이지 내버려 두면 있던 길도 메워져 버리는 것이 또한 인생길이다.
내가 살아온 삶을 하나하나 이어보니 아름다운 곡선이 그려진다. 점으로 이어진 동그라미와 하트가 사랑스럽다. 곡선의 길은 느림의 길이다. 그 길은 멀지만 나만 아는 쾌감이 있었다. 오르락내리락 좌절하며 성취하며 고통 중에도 인생을 즐기며 곡예사처럼 살아왔다.
--- 「곡선을 그리는 시간」 중에서
결심한다. 인생이라는 노상에서 습관적으로 타인에게 끌려가듯 살지 말자.
시간은 내가 생산하는 것, 나에게 집중하기로 한다. 팔자를 넘어서 쉼표를 찍어 보자. 니체의 말대로라면 지금쯤은 낙타에서 완전히 벗어나 사자를 거쳐 어린아이가 되어 있어야 함에도 아직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뭔가 부단히 움직인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혹사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의무처럼 짐을 지어야 편안한 것은 이 무슨 조화 속인고? 무의식이 작용하는 일상은 마치 짐을 지고 서둘러 사막으로 가는 낙타처럼
--- 「낙타의 짐을 내려놓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