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호로 돌아온 관쥐얼이 문을 열고 들어서니 판성메이가 한껏 멋을 부리고 있었다. 기쁜 일이 있으니 활기도 넘쳤다. 관쥐얼이 생기발랄하게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언니, 이렇게 일찍 어디 가? 어쩜 너무 예쁘다.” “오늘 왕바이촨이 집을 계약하러 가는데 같이 가려고. 방금 잉잉 한테 연락받았어. 밤새우고 일출 보러 갔었다며? 정말 로맨틱해. 나도 어렸을 때 그런 로망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못 이뤘어. 진짜 부럽다.” “나도 내가 이렇게 밤을 꼬박 새우고 일출을 보러 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꼭 달걀노른자 같은 태양이 서서히 올라오다가 갑자기뿅 하고 위로 솟아오르는 거 있지. 이른 아침 태양은 눈이 부시지도 않아. 계속 보고 있는데도 눈이 침침해지지 않더라.”
“누구랑 봤는지가 중요하지.” 판성메이가 싱글거렸다. 관쥐얼은 우물쭈물하다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시에빈 씨랑 봤어. 언니도 전에 봤던.” “경찰대학 졸업했다던 그 사람? 경찰대학은 일류 대학보다 합격선이 훨씬 높다던데. 입학하기 꽤 어려운 곳이래. 참 잘됐어. 축하해.” “이제 막… 시작한 사이인걸.” 관쥐얼은 수줍어서 금방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바이촨 오빠가 집을 사다니, 정말 대단해. 인테리어도 해야 하나? 언니랑 오빠도….” “아휴, 아직 몰라. 우린 방 세 칸짜리를 원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 어. 바이촨은 지금 밤새 줄 서고 있어서 얼른 가 봐야 해.” “원하는 대로 될 거야. 미리 축하할게.” “그랬으면 좋겠어. 잉잉한테도 좋은 일이 생겼더라. 언제 모두 한가해지면 다 모여서 같이 밥 먹자. 얼마나 기쁜 일이니. 아 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바이촨이 배가 많이 고플 텐데 먼저 갈게. 쥐얼, 우선 밀린 잠부터 자. 피부를 생각해야지.”
관쥐얼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나가는 판성메이를 배웅하고 현관문을 닫았다.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관쥐얼은 어쩐지 주변이 평소보다 더조용한 것같이 느껴졌다. 지금 22층에는 그녀 혼자뿐이었다. 관쥐얼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무작정 문가로 뛰어갔다. 밖으로 뛰쳐나가다가 22층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문을 잠그고 집안을 뱅뱅 맴돌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그녀는 결국 앤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나 천생연분을 찾은 것 같아. 시에빈 씨는 내가 결혼 상대자로 알맞은 조건을 두루 갖춘 여자라서 접근한 사람이 아니었어. 그사람 눈과 마음에 내가 있다는 게 느껴졌거든. 그 사람한테 나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고 모든 일의 중심은 나였어. 날 행복하게 해줘서 정말 기뻐. 오늘은 같이 일출을 봤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로 다 표현을 못 하겠어. 언니. 나 지금 너무 행복해.’
---「60장」중에서
“난 아직도 네가 왜 큰일 났다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얘기가 더 남았어?” “모르겠어? 그늘이 있잖아. 이렇게 근본 없는 집에서 자란 사람은 마음에 구김살이 있다고. 까딱 잘못해서 좌절을 겪으면 어린 시절의 어두운 그림자가 인생을 와르르 무너뜨릴 수도 있어. 나 같이 막 자란 사람은 그런 상황도 잘 견딜 수 있지만 쥐얼은 온실에서 자란 화초라서 감당 못 해.” 앤디는 정말로 시에빈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감추고 싶었던 자신의 아픈 과거를 뜻하지 않게 취샤오샤오한테 정확히 찔렸다. 사실 강인한 그녀도 아직 어린 시절의 불행한 기억으로 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끌려다니고 있었다. 다만 취샤오샤오가그 사실을 모를 뿐이었다. 앤디는 취샤오샤오가 어릴 적에 생긴 마음의 그늘을 그렇게 심각 하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심지어 결혼의 장애물로 여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앤디처럼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결혼 기피 대상 이라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바오 부인이 염려했던 점이 무엇이었 는지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시에빈 씨한테 잘못은 없어. 샤오샤오, 네가 빅이슈를 건졌고 그 집안이 평범하지 않은 건 분명한데 시에빈씨 인생에 영향을 줄 것 같진 않아.” “영향이 없다고 단정하긴 어렵지. 쥐얼이 그러는데, 두 사람이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적어서 월요일에 서로 교환하기로 했다더 라. 시에빈 오빠가 어떻게 썼는지 보면 알겠지.” “쥐얼이 너한테 보여줄 것 같진 않은데.” “그래서 언니의 역할이 중요해. 언니가 정말로 쥐얼을 아낀다면 걔를 살살 꼬드겨서 확인해 봐. 쥐얼은 언니가 말하면 무조건 보여줄 거야. 글로 적은 내용이랑 내가 들은 얘기를 대조해서 거짓이 없으면 쥐얼의 남자 친구로서 일단은 합격이야.” “쓸데없이 참견하지 마. 넌 맨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성격이 지만 우린 너하고 훌륭하신 자오치핑 선생님이 무척 잘 어울리는 한쌍이라고 생각해. 사람 관계가 완벽할 순 없단 말이야. 나 병실에 도착했어. 어쨌든 나는 시에빈 씨한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
---「60장」중에서
“언니, 아까 언니가 연애는 왜 하냐고 물었을 때 내가 처음에 때가 돼서 하는 거라고 했잖아. 지금 다시 생각해 봤는데 내가 대학교 2학년 1학기 때 갑자기 연애를 하고 싶었거든. 그때 마침, 내 룸메이트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어. 그래서 그런 때가 불쑥 찾아오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지.” 관쥐얼은 방 안에서 기척이 나지 않자 말을 끝맺으며 사과했다. “방해했나 봐. 미안해, 언니.” “응, 아니야. 생각 중이었어. 난들 그런 때가 왜 없었겠니. 초등학교 때부터 남학생들한테 쪽지니 선물이니 받아 버릇해서 알아.” “세상에, 같은 사람인데 어쩜 이렇게 대접이 다를까. 나는 말은 안했지만 대입 시험 끝나고 완전히 해방될 때까지 쪽지 1장 받아본 적이 없었거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우리 반에 커플이 몇 쌍이나 있었더라고. 알았어. 이제 해답을 찾았어.”
판성메이는 우울해서 입맛도 잃었지만 미소만은 여전했다. 확실히 미인한테는 뭐가 달라도 다른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해답이 뭔데?” 판성메이는 일어나 앉으며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댔다. “그때 나랑 룸메이트랑 둘이서 남학생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찾아 가려고 머리를 맞댔거든. 그런데 동아리는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서 마음을 접었고, 들리는 소문에 체육관 한쪽에 있는 카페에 가면 남학 생들이 많다는 거야. 거기는 여학생이 들어오면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친구랑 금요일 저녁 5시에 화장을 아주 진하게 했지. 헤헤. 평소에는 화장을 별로 안 하고 다녔는데 일부러 립스 틱을 새빨갛게 바르고 내 눈에 가장 예뻐 보이는 치마를 입었어. 매점에서 담배도 샀고. 그날 저녁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웠던 때야. 우리는 우리가 엄청 섹시하고 개방적이고 매력이 철철 넘친 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저녁 내내 우리한테 말을 붙인 남학생이 단 1명도 없었어. 바로 얼마 전에 그 룸메이트랑 채팅하다가 당시 얘기가 나와서 우리가 왜 남학생들한테 외면을 당했는지 아직도 모르겠 다고 했었는데 방금 깨달았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린 여자애가 성숙한 척하는 거로 보였던 거야. 그러니까 누가 우리같이 멍청한 계집 애들한테 눈길이나 줬겠냐고.”
판성메이는 관쥐얼의 얘기를 듣다가 자신이 가장 빛났던 시기를 떠올렸다. “그건 너희들 탓이 아니야. 성숙한 척해서도 아니고. 너희처럼 착해 보이는 여학생한테 함부로 접근했다가 거절당하면 창피하니까 용기를 내지 못했을 거야. 그곳을 잘 아는 남학생과 같이 가서 서로 소개하고 떠들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방법이 가장 좋아.” “아, 그렇구나. 하지만 아무래도 예쁘면 남자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접근하겠지. 언니나 앤디 언니처럼.” “가능성이 더 크긴 해. 그래서 그 이후에 또 시도했어?” “한 번 실패하고 나니 충격이 너무 커서 다시는 엄두도 못 냈어. 열심히 성실하게 공부만 했지. 그런데 지금 마음에 둔 사람은 순수하게날 사랑해. 동료로 지내다가 만난 사이도 아니고, 나에 대해 좋은 소문을 듣고 접근한 사람도 아니고, 중매쟁이가 소개한 맞선남도 아니 고, 내 직업이나 수입이나 집안 조건이 결혼 대상자로 적당해서 구애 하는 사람이 아니란 뜻이야. 그래서 그 사람이랑 연애하고 싶어.” 판성메이는 무심결에 한마디 툭 내뱉었다. “난 결혼하고 싶어.” 마주 보는 두 사람의 표정이 복잡했다. 둘 다 진심으로 한 말임을 서로가 잘 알았다.
---「61장」중에서
“우리 아빠하고 잉친 아빠하고 같이 술을 드시면서 얘기가 잘 풀려서 방금 결정했대. 나랑 잉친 결혼이 드디어 확정됐어. 퇴원하면 바로 혼인신고할 거야. 축하해 줘!!!” 세 사람은 복도에서 동시에 발걸음을 멈췄다. 앤디가 웃으며 말했다. “서둘러야겠네. 22층에서 내가 첫 번째로 결혼할 거란 말이야. 잉잉한테 뒤처질 수 없지.” 앤디는 말하면서 추잉잉에게 ‘축하해!’ 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휴, 잉잉이 곧 잉친 아버지하고 만날 텐데 나랑 잉잉 목소리가 완전히 다르잖아. 잉친 아버지가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떡하지? 잉잉이곧 혼인신고를 하면 결혼식도 빨라질 거고, 잉잉 방에는 어떤 사람이 새로 들어올까? 마음이 맞는 사람이 왔으면 좋겠는데.” 판성메이는 웃기만 하다가 추잉잉에게 전화를 걸었다. “잉잉, 축하해. 정말 잘됐어. 지금 쥐얼이랑 앤디랑 모두 같이 있는데 다들 굉장히 기뻐하고 있어.” 추잉잉은 한껏 낮춘 목소리로 흥분해서 말했다.
“드디어 이뤄졌어. 기뻐서 날아갈 거 같아. 지금 우리 엄마랑 잉친 어머니랑 복도에서 다음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상의 중인데 궁금해서 미치겠어. 아빠 말씀이, 양쪽 집에서 혼인신고부터 먼저 하기로 해서 증명서도 떼고 사진도 찍어야 한대. 필요한 서류가 준비되면 나중에 편한 시간에 가서 신고할 거야. 잉친은 방금 실밥 뽑았어. 잉친도 자기 아버지한테 소식 듣고 기뻐서 까무러쳤어. 당장이라도 나한테 달려오고 싶을 텐데 어머니가 말리고 있는 형편이야. 조금 전까지 잉친이랑 계속 통화했는데 일단 좀 기다리라고 했어. 좋은 소식은 친구들한테 먼저 메시지로 보고해야 한다고 타일렀거든. 너무 행복해.” “최고의 굿 뉴스야. 양쪽 부모님이 모두 동의하시고 너희 둘이 이렇게 잘 맞으니 그야말로 천생연분이지. 우리도 정말 기뻐. 어서 잉친한테 전화해. 기다리다가 애간장 녹겠다. 우리도 끊을게. 나중에 보자. 다시 한번 축하해.” 추잉잉은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싱글벙글하며 전화를 끊었다.
---「63장」중에서
“우리 엄마는 말도 못 하게 까다로운 분이에요. 어려서부터 까탈 스러운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자랐죠. 지금은 잔소리가 익숙하고 엄마가 나를 위해서 얼마나 정성을 쏟는지도 잘 알아요. 아빠는 제가 안쓰러워서 늘 엄마 몰래 저를 토닥이고 응원해 주셨고요. 그런데도 여전히 엄마의 간섭이 불편해요. 엄마는 다른 사람의 자존심 같은 건전혀 개의치 않거든요. 아마 시에빈 씨도 예외는 아닐 거예요. 난 그게 염려스러워요. 시에빈 씨가 감당 못 할지도 몰라요. 그래서 내 생각은요, 우리가… 오래 교제한 뒤에 시에빈 씨가 우리 엄마를 소개받 으면 시에빈 씨는 힘들어도 날 위해서 참고 또 참다가 내성이 생길 거예요. 그렇게 되면 여러 가지 걸리는 일이 많아서 헤어지기도 힘들 어지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연애 초반에 그런 일을 겪고 깔끔하게 관계를 끝내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시에빈 씨가 견디기 힘들면 얼마 든지 떠나요. 원망하지 않을게요. 난 특별한 여자가 아니니까 차버리면 기억 속에 묻혀서 조용히 잊힐 거예요.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빨리 겪고 정리해야 시에빈 씨 발목을 잡지 않겠죠. 난 나 자신을 잘알아요. 얘기 끝났어요.”
시에빈은 입을 ‘O’자 모양으로 떡 벌렸다. 한참 뒤에 그가 말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어, 울지 말아요. 잠깐 차를 세울게요. 울지 말아요. 아니, 그래요, 울어요. 울고 싶으면 울어요. 그렇지만 난 쥐얼 씨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쥐얼 씨가 예상한 나의 모습 때문에 우는 거라면 눈물 그쳐요. 어, 울어도 된다니까 진짜로 우네.” 시에빈이 말을 할수록 관쥐얼은 더 속상하고 서러웠다. 그녀는 시에빈이 건넨 티슈 케이스에서 티슈를 1장씩 뽑아서 얼굴을 닦았다. 시에빈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가까스로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우고 얼른 티슈 1장을 꺼내어 관쥐얼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날 믿어요. 난 떠나지 않아요. 어머니가 헤어지라고 하셔도 안 떠날 거예요.”
“그렇지 않을 거예요.” 관쥐얼은 간신히 한마디 꺼냈다. 시에빈은 수많은 범인을 상대로 심리전을 펼친 유능한 형사인데도 관쥐얼에게 만큼은 속수무책이었다. 그가 차분하게 물었다. “그렇지 않다니요? 난 알아요. 쥐얼 씨를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 요. 바로 저 여자다! 하고 생각했거든요. 어떻게 어머니 잔소리 때문에 헤어져요? 하물며 쥐얼 씨도 견디는데 내가 못 견디겠어요? 지금 맹세할게요. 난 절대로 쥐얼 씨를 떠나지 않아요.” 관쥐얼은 목이 메어서 “그렇지 않아요.”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64장」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