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이며 여러 종류의 자가 진단 테스트를 했다. 결과들은 앞다투어 우울증이라고 아우성치는 듯했다. 그래도 확신할 수 없어서 계속해서 찾고 또 찾았다. 인정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과대망상일까 봐.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나는 나의 동아줄, 부모님에게 용기 내어 말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비웃음과 함께 “네가 무슨 우울증이야.”라는 말이었다.
--- p.14~17, 「저 우울증인 것 같아요」 중에서
조금의 기다림 끝에, ‘자살 위험군 우울증’이라는 말을 들었다.
오랜 시간 방치된 우울증 환자에게 많이 보이는 유형이라고 했지만, 걱정되기는커녕, 검사 결과에 안도감이 들었다. 험난했지만 이렇게 병원에 왔으니 이제 치료받을 일만 남았구나, 하고.
--- p.67-68, 「검사 결과」 중에서
개 앞에서 우울해하거나,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거나 우는 일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의도치 않아도 개에게 정서적 학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서 마찬가지다.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인 미성년자에게 부모는 주인이나 다름없다. 자식의 삶을 휘두를 수 있는 부모에게 자식은 개다.
--- p.82-83 「개」 중에서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해도 표정을 보면 안다. 거짓말이라고 여긴다는 것을. 때로는 그런 생각을 한다. 내 우울증이 멍으로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적어도 아프다는 말에 그런 표정을 짓지는 않겠지, 하고 말이다.
--- p.93, 「각자의 아픔」중에서
그러나 곧 여러 감정이 물에 잠기는 때가 찾아온다. 분노도, 슬픔도, 기쁨도, 느끼는 건 순간, 물에 잠겨 금방 사그라져 버린다.
--- p.129-131, 「잠긴 감정」 중에서
정말로 뛰어내릴 생각이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옥상 문은 닫혀 있었다. 시끄럽게 돌아가는 승강기 기계실 문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 차가운 바닥이 집보다 더 아늑하고, 따듯하게 느껴졌다.
참 야속했다.
--- p.158-159, 「그날 밤 계단에서」 중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 삼아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살아 있다 보니 새벽 공기를 또 맡고 싶다는 사소한 것부터 원하는 꿈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가지, 죽지 못할 이유가 늘어갔다. 살아 있길 참 잘했다.
--- p.279-280, 「살아 있길 잘했다」 중에서
지금 내가 그때의 나를 본다면 삶은 생각보다 기니까 쉬어가는 걸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화창한 날과 흐린 날은 반복되니까 불행이 너의 종착역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 p.378-379, 「과거의 나에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