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한국의 세 번째 수출 대상국이자 다섯 번째 수입 대상국. 한국과 베트남에는 교민이 각각 이 십만명 씩 거주. 한베 양국의 관계지표는 그렇게 밀접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들, 베트남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한국 사람들의 모습은 실제와 차이가 있습니다. 베트콩, 미제국주의 용병, 공산주의, 자본주의, 느긋느긋, 빨리빨리, 무사안일, 다혈질, 팔려 가는 베트남 신부, 사가는 한국 신랑. 각종 이미지가 서로의 시야를 색안경처럼 가리고 있어 눈앞에 있는 상대의 본모습이나 진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게 다반사입니다.
---「하재홍, 머리말」중에서
베트남 소설선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역시 수많은 고민과 선택 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탄생한 결과물입니다. 원작을 읽고 이해하고 한국어 어휘와 표현을 골라 다시 쓰고, 또 말끔하게 다듬는 과정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선택해야 했습니다.
---「김주영, 옮긴이의 말」중에서
무언가 방금 온 듯한데, 서늘하고 공포스러운 그것이 무당 몸속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꼬맹이가 붉은 공단천을 갑자기 무당 머리에 뒤집어씌웠다. 그 붉은 천 안에서 무당의 몸이 갑자기 격렬하게 뒤틀렸다. 천이 벗겨졌을 때 누구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당의 찡그린 얼굴은, 만두가 물에 분 것처럼 부어있었다.
---「응웬 빈 프엉, 니에우 남매, 이쪽 꾸인 저쪽 꾸인, 그리고 삼색 고양이」중에서
― 알았어. 자기는 날 잊으면 안 돼.
― 제길 어떻게 잊겠어. 나는 돌아올 거야. 반드시 자기한테 돌아올 거야. 나는 그저 이 천 아홉 걸음만 갈거야.
― 아니야, 이 천 여덟 걸음이지.
---「응웬 빈 프엉, 가다」중에서
“난 절대 죽은 사람을 질투하는 게 아니야. 당신, 기도나 좀 해봐. 넘 형이 돌아오도록 기도 좀 해보라고.” 나는 울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넘 아주버님, 현명하게 살다가 성스럽게 가신 이여, 제 꿈에 나타나 주세요. 저는 탄의 아내예요, 탄의 평생의 연인이죠. 이승과 저승은 너무도 머네요. 아주버님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 아주버님의 가족들을 받아들이고 돌봐 줄게요. 저희에게 돌아와 주세요…
---「보 티 쑤언 하, 숲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납부리새들」중에서
투언 영감은 영안실 근처를 배회했다. 발길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손자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영안실 노인은 머뭇거리다가 아기의 영혼이 따라붙을 수도 있으니 들춰봤으면 어서 가라고 말했다. 다 자라지 못한 아기의 몸을 껴안고서 투언 영감은 재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비를 돌보고 있는 아내와 딸들은 내버려둔 채 그는 가장 경험이 많아 보이는 쌔옴 기사를 불러 그 작은 관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사와 영감은 함께 호아가 정원에 심어놓은 배롱나무 근처에 땅을 파고서 자그마한 아기를 묻었다.
---「투이 즈엉, 이승의 길」중에서
일 년에 제사가 열한 번이에요. 당신 기억하세요. 서랍 안에 넣어둔 종이에 한 분 한 분의 제삿날을 분명히 적어 두었어요. 큰 아주버님의 제삿날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걸 기억하세요. 당신한테 얘기했었는데 당신이 잊을 때가 있더라고요. 딸이랑 여기로 건너오기 이틀 전에 어떤 낯선 여자가 덧 아주버님의 영정과 향로를 전해주러 왔다며 우리 집 문을 두드렸어요. 그 여자가 자기는 더 이상 아주버님의 제사를 지낼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부처님 문전에서 걸식이라도 하라고 덧 아주버님을 절에 모셨는데 계속 아주버님이 눈에 밟혀서 데려오려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는 거였어요.
---「이 반, 그럴 수도 아닐 수도」중에서
얼마 후 마을 사람들은 뚝 누나가 무리에서 떨어진 해오라기처럼 남몰래 떠나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누나가 아무런 말도 없이 오랫동안 멀리멀리 가버린 것이었다. 마을 곳곳에서 여느 때처럼 드문드문 온갖 이야기들이 터져 나왔다. 입이 한가한 자가 수도 없이 많아서 그때마다 소문은 기괴했다. 어떤 사람은 누나가 남자에 목말라서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다고 말했다. 또 어떤 사람은 뚝 누나가 결혼 시즌에 끊이지 않는 폭죽 소리를 견디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서른다섯 살 여자에게 이렇게 차고 건조한 바람이 쌩쌩 부는 계절이라니!
---「따 쥬이 아인, 그 옛날 마을에서 가장 예뻤던 그녀」중에서
할머니는 조용히 앉아, 몸을 앞으로 숙이며 두 손을 합장했다. 깡마른 체구였다. 좌석 테이블엔 제사에 쓰는 꽃, 파란 바나나 다발, 유품이 차려져 있고, 쌀이 담긴 유리컵엔 향 세 개가 꽂혀 있었다. 컵에 담을 수 있는 손바닥 크기의 코팅 사진도 있었다. 여승무원이 급히 왔다. 그녀는 내 옆에 우뚝 서 있었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입도 뻥긋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바오 닌, 여전히 날아가는 흰 구름」중에서
그로부터 사랑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피했다. 나는 종합대 화학과에 시험 보고 합격했다. 히엔은 지원을 포기하고 더이상 종합대 시험은 보지도 않고 다른 학교 시험을 봤다. 심지어 몇 년 후 동창회 때 만났을 때, 우리는 서로의 눈빛을 피했다. 히엔은 억지웃음을 지었다. 나는 급히 눈을 돌렸다. 스스로의 태도가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바오 닌, 딱밤」중에서
한시가 급해 우물쭈물하고 있을 수 없었지만 떠나기 전에 사단장은 문득 무언가를 기억해 내고서는 허겁지겁 나에게 말했다. “쟝이 자네에게 사진을 보냈는데 아뿔싸, 지금 안 가지고 왔네. 다음번에 가져다줄게, 알았지 훙…” 그 ‘다음번’은 없었다. 나에게는 사단장을 다시 만나게 될 기회가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사단의 정찰병으로 진급되었던 다음 건기까지도 내내 전혀 그를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 사단장은 우리 사단이 전투에 임하던 첫해의 건기 막바지에 전사했다. 전쟁, 군인의 삶, 젊음, 모든 것이 그러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그저 그럴 뿐이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해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저 그럴 뿐이었지만 그 후에는 줄곧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아픔이 되었다. 남모르는 상실의 아픔 말이다.
---「바오 닌, 쟝」중에서
한 사람의 작가로서, 그리고 1995년 처음 베트남에 다녀와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을 꾸렸고 이후 꽤 오래 나름대로 활동해 온 나로서는, 두 나라가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학적 교류를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이야말로 서로 다른 문화들을 이어주는 가장 훌륭한 오작교이기 때문이다.
---「김남일, 해설」중에서